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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수리산

이종균 2 1862
미리 가 본 수리산

내가 안산에서 일하던 일곱 해 동안 공휴일이 있을 때만 서울 집으로 퇴근을 했으니 적어도 왕복 8백번 이상은 더 이 산 밑을 지나다녔다.
  나지막한 구릉을 눌러앉은 잘 생긴 모습이 볼수록 높게만 느껴지는데 그 위에 솟은 성난 남근 같은 둥글 지붕 하나가 군사통시설이려니 여겨져 오르고픈 충동을 접곤 했다.
  옛날 천지개벽이 일어날 때 이곳 모두가 바다에 잠겼는데 이 봉우리만 남아있어 독수리가 거기 앉았다기도 하고, 정수리의 바위가 독수리를 닮았다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조선조 때 왕손 한 분이 여기서 도를 닦아 수리산(修李山)이라 한 다기도 하고, 신라 옛 절 수리사(修理寺 )가 있어 산 이름도 수리산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군포시청 자료에 의하면 산 이름이 그 모형(物形)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견불산(見佛山)이라 한걸 보면 불교와의 인연이 있을 법도하다.
  어쨌든 지금은 수리산이라 하면 한남정맥의 긴한목으로 안양 군포 안산의 살피를 이루며 뻗어나간 관모봉(426m), 태을봉(489m), 슬기봉(451m), 그리고 수암봉(935m)에 이르는 거대한 U자형 산줄기를 통틀어 일컫는다.
  수원과 인천 산업도로상에 있는 안산동, 본래는 시흥시였으나 안산으로 편입된 곳으로 옛날엔 안산현관아가 있었던 수암동에서 오르기 시작했다.
  안산시사(安山市史)에 의하면 “수암봉(修巖峰)은 수리산자락 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봉우리로 서울을 등지고 있다하여 역적산(逆賊山)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험하여 그야말로 악산이다.”고 하였다. 절대왕권주의시대 임금이 있는 한양을 등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산길 들목에 현판이 서 있다.
  “봉우리의 바위가 독수리의 부리를 닮아서 취암(聚巖)이라 했으나 그 바위가 너무 수려해서 조선 말기부터는 수암봉(秀巖峰)이라 부른다”는 내용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鷲巖으로, 안산 시사에는 修巖峰으로 표기되어 있어 한자가 서로 다름은 어떤 연유인가. 글자 한 둘 틀리는 것쯤 예사로 여기는 요즘 풍토가 아쉽기만 하다.
  여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수암봉 오른쪽에 한 장사가 호랑이와 같이 살던 웅덩이가 있었다. 때론 걷고, 때론 날기도 하던 장사는 호랑이와 공기놀이를 했다는데 수암봉, 수리산, 관악산, 안양산의 바위가 바로 그 공기였다니 얼마나 힘이 세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장사가 사라지면 웅덩이에서 또 다른 장사가 태어나곤 했다는데 일제가 다시는 장사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이를 메우고 쇠말뚝을 박았다니 지금쯤 복원하여 장사가 다시 태어나는 대로 독도수비대로 보내면 어떨까.
  수암봉 남쪽 안부에 있는 헬기장을 넘어 오르니 튼실한 울타리가 앞을 가로 막는데 철조망을 머리에 이고 있어 잠시 가시면류관을 쓴 성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왼편 길을 따라 330봉을 넘어 수리사로 넘어갔다.
  신라 진흥왕(540~576년) 때 처음 지었다는 전통사찰인 이 절은 조선조  이전까지는 36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 암자를 거느렸다는데 임란 때 파괴되어 다시 지었다는 대웅전과 그 뒤 삼성각, 왼편의 나한전 그리고 바른편의 요사 채가 더없이 한가롭다.
  수리산 서남쪽 중간지점, 짙은 녹음에 둘러싸인 유현한 계곡, 이곳이 바로 군포8경 중 제2경이다.
  물매 급한 산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 부대 정문에 다가서며 왼편 길로 에돌아가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슬기봉에 이른다.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결코 설지 않는 친근한 이름, 또한 철망으로 둘러싸인 정수리를 흘기듯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태을봉으로 향했다.
  수리산의 알짬은 여기서부터 이다.
  간담을 죄어오는 깎아지른 칼날 등성이, 여기저기 솟아오른 기암괴석, 그 틈새에서 뒤틀리며 자란 늙은 소나무, 그리고 툭 트인 공간을 통하여 신도시 아파트촌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산의 정수리인 태을봉에 이르렀다.
  태을이란 천지만물의 본체와 근원을 뜻하고, 또 하늘의 북쪽에 있다는 신령스런 별의 이름이기도 하다는데 정상석에 「太乙峰」이라 휘둘러 새긴 명필에도 깊은 뜻이 잠긴 듯하다.
  “태을봉의 해돋이(太乙日出)”가 군포8경 중 제1경이라 했는데 표석이 서있는 정점에서는 나무에 가려 동쪽 하늘이 보이지 않고 그 앞 헬기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그냥 평범할 뿐이다. 그러나 해 돋는 모습이야 어디서 봐도 다 경건하고 아름답지 않으랴. 
  이 헬기장을 지나 마지막 관모봉으로 향했다.
  서쪽으로 안양화창초교 앞에서 수암봉과 슬기봉 틈새로 파고드는 동이점골 계곡이 아스라이 깊다.
  산 아래선 정수리에 마음이 가지만 정수리에선 마음도 깊은 계곡으로 흐르나보다.
  나는 관모봉을 넘어 명학역으로 가 전철을 탔다.
  올 새봄(新春), 짙은 는개에 촉촉이 젖으며 올랐던 수리산이 잊히지 않아 첫여름(初夏) 무성한 녹음에 덮인 산길을 다시 찾았는데 마음은 새봄보다 더  싱그럽다.
  이제 늦가을(晩秋)에 다시 찾는다면 느낌 또한 한결 더 깊어지지 않으랴···.
2 Comments
자 연 2007.06.18 15:59  
  태을봉 빗어내는 퉁소소리 그리운데

아 벌써 하산하셔 요기한단 소문이니

담담이 나누는 정담  조화로운 耆老花세


길일 맞아요
이어질 장마마음
그 빗속 산행 번개천둥 치심이면...

고맙습니다...
달마 2007.06.18 16:41  
  커밍불루    수정  삭제
 
그홀로 하산인가 걱정을 하였더니
천지건 줄을잡는 거문고 귀에익어
청산에 안거를하던 청산거사 뵈옵고        200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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