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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일들

노을 5 725
왜 그때는 그랬을까?


여고 시절, 처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친구들과 명동나들이를 했다.

국립극장 앞길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인파에 우선 놀랐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을까?

나부터도 그곳에 있었으니 할 말이 없건마는 그런 의문부터 앞섰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마다 종이로 만든 가면도 쓰고

필름으로 된 뿔피리를 하나씩 들고 빽빽 소리를 내며

아무 얼굴에나 대고 불어대는 모습이었다. 말려있던 피리는 바람이 들어가면

확 펴지면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낄낄대고 떠들며 어디론가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다.

사진이라도 찍힌 듯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그 정경이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곤 한다. 

모두 가난하던 그 시절, 즐거운 일이라고는 없었기에 용서가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하필이면 앞 자크 바지를...


초딩 시절(하, 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초딩 시절이 있었다니...)

주일학교에서는 성탄 감사예배 준비가 한참이었다.

시골 교회여서 인재가 드문 탓에 무용에도 뽑히고 합창에도 뽑히고 연극에도 뽑혔다.

연극에서는 ‘연희’라는 극중 인물을 맡았다.

그래도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어서 예배당에서도 따로따로 앉던 까까중들이

같이 어울려 연습을 하다보니 마음이 요상스러워 졌던지 길에서 만나면

멀리서 돌도 던지고 ‘연희야~ ’ 부르곤 쏜살같이 도망을 치기도 했다.

어느 날 율동을 지도하던 선생님께서 자기 집에 가서 연습을 더 하자고 했다.

그 선생님 집에 가서 외투를 벗고 연습을 시작하자 ‘연희야’를 불러대던

개구쟁이들 중 제일 꾸러기 같던 녀석 하나가 들어와 턱 앉더니 구경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아이가 그 선생님의 동생일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빤히 쳐다보는 그 눈초리 앞에서 나는 도무지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 자크가 달린 내 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 시절엔 앞 자크 바지는 남자애들 전용이었고 여자는 옆 자크를 달아 입었다.

나는 영락없이 남자 바지를 입은 꼴이 되었다.

여자 나이 서른이 지나면 여자가 아니라는 옛 어른의 말씀을 신봉하며

패션감각하고는 전연 무관하게 덤덤하고 조촐하게 살아오신 나의 모친께서

무슨 선견지명이 있으셨던지 바지 하나에 앞 자크를 달아 만들어 주셨기에

그날따라 입고 갔던 바지가 내게는 죽을 맛이 되었던 것이다.

연습을 어떻게 마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저 애가 아무개는 남자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 하며 소문을 낼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소문이 났는지 안 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요즘엔 오히려 옆 자크 달린 바지를 찾아볼 수 없다.

바지를 입을 때마다 문득 문득 실소케 하던 그 바지의 기억이 이맘때면 엄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때 이미 엄마는 우리 여자들 바지의 운명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5 Comments
김경선 2006.12.19 16:30  
  앞자크는 남자바지?
그것이 그리 걱정이었던 어린시절이었군요.
저는 그리 잘 살지 못 하던 시절에
초등시절 청바지를 양잠점에서 맞춰 주셨는데
차장바지 입었다고 어찌 놀리던지...
산처녀 2006.12.19 21:22  
  제가 어릴적 ? 하마 언제적 얘길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교도이건 비교도이건 교회를 가 보는게
이곳 시골 교회의 풍경이죠.
저도 그 구경꾼의 일원이 되여서 교회에 갔던 24일이브날 ,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그때는 교회에서 연극발표도 하곤 했어요.
동방박사 세사람이 별을 보고 찾아 가는길을 보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지요.
초가집 지붕에서 흘러 내린 물이 얼어서 뒤깐 앞은 유리알 같았는데
연세 드신 권사님이 그 앞에서 쭐쩍 미끄러 지시는거예요 .
순간 그 권사님 "오 주여 " 하니 어린 저는 왜 그리 웃읍던지
소리 내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 "칫 주님이 봐 주실려면 넘어지지 않게 봐 주시지 넘어지기는 왜 넘어저 . 오주여 그거 다 사기야 "하던
쓸데 없는 오기가 발동 했던 생각이 납니다.
성년이 되어서 부흥회에 오라는 이웃의 군에 나가보니 부흥 목사님이
교회나오는 사람의 잘못된 습관에 대해서 말씀 하시면서
그들은 " 신"이 아닙니다 . 신을 믿으려는 인간이기에 시행착오도 하고 잘못도 합니다 "하는 말씀을 듣고 나혼자 정말 저 솔직한 고백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본 생각도 나는군요.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축복 받으십시요 .나의 모든 이웃들 에게 ^^**^^
Schuthopin 2006.12.20 02:45  
  저도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예전엔 크리스마스때면 어김없이 눈이 많이 내린걸로 기억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벽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불렀던 새벽송....

그 축억속으로 안내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을님 새해에도 건안하시고 소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박성숙 2006.12.20 11:12  
  지금처럼 모든것이 풍성한 시절은 아니었어도 옛날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낭만이 있었는데...
유랑인 2006.12.21 12:55  
  군용 담요 잘라서 만들어준 반바지 생각이 납니다~~  ㅎㅎㅎ
초딩 때 안양유원지 소풍가서 누가 그걸 감추는 바람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난 구멍난 팬티 바람에 몇몇 아이들과 여기 저기 찾으러 다니던 기억~~~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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