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절
남도천리!
내 고향 전라도 영광.....!
파란 들이 비단 같이 펼쳐져 서해까지 닿은 너른 곡창지대의 한 쪽 끝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의 안존한 품 속에 우리 고향마을이 들어 앉아 있다.
그 들판을 흥건히 적시며 서해로 흘러 들어 가는 강이 하나 있다.
그 것은 일제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 강폭이 100m가 넘을 정도로 커서
우리들의 갖은 놀이의 터전이 되었다.
초.중학교시절 학교에서 돌아 오면
으례 동네 친구들 여남은 명과 꼴 지게지고 소를 몰고 그 강으로 간다.
소는 고삐를 풀어 마음껏 풀을 뜯게 해두고 우리들은 꼴 빨리 베기 시합을
시작한다.
얼른 꼴을 베어 지게를 채워 놓고 가능하면 빨리 함께 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 정도면 다들 자기 지게를 채우는데 그러면 곧 우리는 백사장에다
금을 그어 놓고 양편을 갈라 놀이들을 시작한다.
그 놀이를 우리네 방언으로 '가이생'이라 했는데 그 게 일본말 같기도 한데
그 표준말은 모른다. 삼년고개, 8자, 사다리, 남자심볼 가이생등을 하다
보면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게를 챙기고 소 고삐를 잡고 줄을 이루어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때면 들판 건너편에 있는 극장에서 가요를 황혼 빛에 실어
들판을 은은히 적셔주곤 했다.
구식 호객행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 날밤 상영되는 영화의 장르에 맞춰 노래가 흐르긴 했지만 주로 이미자
노래들이 많이 흘러 나왔었다.
빙점, 기러기 아빠, 꽃 한 송이, 한번준 마음인데, 홍콩의 왼손잡이,
울어라 열풍아,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여자의 일생, 황혼부르스,
잊을 수 없는 연인, 비에 젖은 여인, 정동대감, 황포 돛대, 재일교포,
임이라 부르리까, 서귀포 칠십리, 지평선은 말이 없다...등
이런 노래 들이 모두 그 때 배운 것 들이다.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나 아파트 유리창에
비친 아름다운 노을 빛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그 모습들이 머리에 떠올라
혼자 이미자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도시 사람이 된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이미자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 가슴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옛시절을 그리며 사는 영원한 촌놈인가 보다.
내 고향 전라도 영광.....!
파란 들이 비단 같이 펼쳐져 서해까지 닿은 너른 곡창지대의 한 쪽 끝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의 안존한 품 속에 우리 고향마을이 들어 앉아 있다.
그 들판을 흥건히 적시며 서해로 흘러 들어 가는 강이 하나 있다.
그 것은 일제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 강폭이 100m가 넘을 정도로 커서
우리들의 갖은 놀이의 터전이 되었다.
초.중학교시절 학교에서 돌아 오면
으례 동네 친구들 여남은 명과 꼴 지게지고 소를 몰고 그 강으로 간다.
소는 고삐를 풀어 마음껏 풀을 뜯게 해두고 우리들은 꼴 빨리 베기 시합을
시작한다.
얼른 꼴을 베어 지게를 채워 놓고 가능하면 빨리 함께 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 정도면 다들 자기 지게를 채우는데 그러면 곧 우리는 백사장에다
금을 그어 놓고 양편을 갈라 놀이들을 시작한다.
그 놀이를 우리네 방언으로 '가이생'이라 했는데 그 게 일본말 같기도 한데
그 표준말은 모른다. 삼년고개, 8자, 사다리, 남자심볼 가이생등을 하다
보면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게를 챙기고 소 고삐를 잡고 줄을 이루어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때면 들판 건너편에 있는 극장에서 가요를 황혼 빛에 실어
들판을 은은히 적셔주곤 했다.
구식 호객행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 날밤 상영되는 영화의 장르에 맞춰 노래가 흐르긴 했지만 주로 이미자
노래들이 많이 흘러 나왔었다.
빙점, 기러기 아빠, 꽃 한 송이, 한번준 마음인데, 홍콩의 왼손잡이,
울어라 열풍아,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여자의 일생, 황혼부르스,
잊을 수 없는 연인, 비에 젖은 여인, 정동대감, 황포 돛대, 재일교포,
임이라 부르리까, 서귀포 칠십리, 지평선은 말이 없다...등
이런 노래 들이 모두 그 때 배운 것 들이다.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나 아파트 유리창에
비친 아름다운 노을 빛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그 모습들이 머리에 떠올라
혼자 이미자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도시 사람이 된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이미자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 가슴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옛시절을 그리며 사는 영원한 촌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