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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례의 시<담배밭을 지나다>

김건일 0 1231
담배 밭을 지나다

이오례



노을은 산등을 휘감으며
시간 속으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제법 옷 끝을 적시는
이슬 묻은 풀잎 서서히 눕히며
밭두렁을 걸어가는데
컬컬한 헛기침이 목에 걸린다



독한 밭이랑마다
노랗게 한 잎, 한 잎, 익어 가는
아버지의 체취가 끈적이며 묻어나는
밭머리에 잠시 발걸음을 고정 시켰다



노릿한 잎을 차곡차곡 포개는 아버지
손금 사이사이 굳은살은
이미 오래전에 터를 잡고
고집스런 지독한 담배 진은
아버지의 가슴에 까맣게 얹어 놓은 채
무거운 기침을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디스크로 휘어진 통증,
아버지의 쓴 내 나는 아픈 세월이
담배 밭을 지나다 한꺼번에 울컥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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