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창은 왜 끝을 생략할까요?
우리음악에의 작은 관심이 어쩌다가 시조창을 듣는 중에
남구만의 <동창이 밝았느냐>와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종장의 끝자락의
서너자가 노래되지 않고 버려짐을 이상하게 여겨 오다, 이 후로도 여러 차례
같은 의문에 부닥치게 되어 내가 인터넷과 이런 저런 사람에게 알아본 내용
을 실어 함께 토론하며 그 정확한 답을 알아내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에서 "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나누
어지는데 종장의 끝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등은 생략하여 부르지 않고, 장단
은 삼점오박 장단과 오점팔박 장단이 교차되어 연주된다." 한 대목에서 확인
되었다시피, 나의 질문은 정당하지만 그 생략에 대한 이유와 설명은 이런데나
저런 사람에게서 듣지 못하고 막연히 전통적 관행으로 생략하여 왔으며 그것
에는 아마도 어떤 美學的 이유ㅡ절제생략의 미, 상상의 미 또는 여백의 미ㅡ
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답변을 들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음악은 정악과 민속악으로 분류되는데
정악은 궁중음악과 제례악인 아악과 (가곡, 가사, 시조등) 풍류악으로
나뉘며 이 음악은 궁중이나 지식 계급층에서 주로 연주되는 음악이며
민속악은 농악, 시나위, 무악, 산조, 민요, 잡가, 판소리 등으로 평민이나
천민사회에서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음악으로서의 향악이란 말은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
에서 기원된 이후 향가, 향비파라는 용어처럼 외래 것에 대한 한국 것
또는 우리 것의 뜻이 향악이란 용어 속에 뚜렷이 함축되어 있어 우리나라
의 전통적인 음악문화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며
반면에 중국의 당송(唐宋)으로부터 이입된 외래음악으로서의 唐樂은 주로
궁중의 제례와 의식에 관련된 음악인 아악(雅樂)을 가리켰습니다.
이중의 시조창은 3행 형식의 시조시로서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우리 조상들의 양반 사회에 널리 퍼졌던 곡으로 시절단가, 시절가, 시조창
으로 불려져 왔습니다. 이 시조창의 발원은 고려시대 말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최고 문헌은 석북 신광수(1712~1775년)의 "석북집" '관서악부'로 조선조
영조때의 가객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최초의 악보는 서유구(1764~1845년)의 "임원 경제지" "유예지"와 이규경
(1788~?)의 " 철 자보"가 있습니다. 이를 보면 시조창은 조선시대 후기에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평시조처럼 황종, 중려, 임종의 3음부로 이루
어졌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경로로 시조가 음악으로 널리 퍼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시조창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경제와
지방으로 확산된 경제가 지역 특성에 맞게 발달 한 향제로 나누어 집니다.
다시 세분하여 보면 서울·경기 지역의 경제(京制)와
향제로는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도의 내포제(內浦
制)로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습니다.
경제시조는 속청을 쓰고 장단이 잘 정립되었으며 피리와 대금 등 여러 반주
형태를 갖고 있으며, 완제시조는 전라도 토속의 언어와 발음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과 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현행 시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평시조(평거)를 비롯하여 중허리시조(중
거), 지름시조 (두거), 사설지름시조(농), 수잡가(반시조반잡가), 여창지름시조,
우조시조, 우조지름시조 등이 경제에 속합니다.
향제는 악기가 없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연주하여 초장과 종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든 점이 경제와 다릅니다. 전라도의 완제, 경상도의 영제, 충청
도의 내포제 등으로 나누어 지며, 평시조와 서설시조(또는 엮음시조, 편시조)
가 중심을 이루는데 엇시조, 반사설시조 등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다양한
시조들이 있습니다. 영제의 평시조는 경제와 비슷하며 사설시조는 경제의 엮
음시조와 비슷합니다. 완제는 주로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연주되는데 영제와
비슷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나누어지는데 종장의 끝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등은 생략하여 부르지 않고, 장단은 삼점오박 장단과 오점
팔박 장단이 교차되어 연주됩니다. 음계는 3음계(경제의 평시조, 중허리시조,
향제의 평시조, 사설시조)와 4음계(경제의 지름 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가,
여창지름시조), 3.4음계 계면조와 5음계인 평조와의 혼합음계(경제의 우조
시조, 우조지름시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음에서 변화무쌍한 모음의 변
화가 있어 단산한 듯 하지만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조창은 가곡의 영향을 받아 시조곡조가 발생·보급됨에 따라 서울·경기 지
역의 경제(京制),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도의 내포
제(內浦制)로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습니다.
완제시조는 전라도 토속의 언어와 발음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과 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경제는 평시조에서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
가, 휘모리잡가 등 변화곡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장단이 잘 정립되었으며, 피리
와 대금 등 여러 반주 형태를 갖고 있고, 속청을 올려가며 아름답게 부릅니다.
완제·영제·내포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중심이 됩니다. 악기가 없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연주하여 초장과 중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듭니다.
완제는 연결성이 발달하여 소리가 윤택하고,
영제는 뚝뚝 끊어지게 부르며,
내포제는 경제와 영제의 중간 성격을 지닙니다.
시조창의 형식은 3장형식이고, 음계는 3음·4음의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
을 주는 음조)와 5음의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되어 있습니
다. 시조창은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창법에 따라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어서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남구만의 <동창이 밝았느냐>와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종장의 끝자락의
서너자가 노래되지 않고 버려짐을 이상하게 여겨 오다, 이 후로도 여러 차례
같은 의문에 부닥치게 되어 내가 인터넷과 이런 저런 사람에게 알아본 내용
을 실어 함께 토론하며 그 정확한 답을 알아내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에서 "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나누
어지는데 종장의 끝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등은 생략하여 부르지 않고, 장단
은 삼점오박 장단과 오점팔박 장단이 교차되어 연주된다." 한 대목에서 확인
되었다시피, 나의 질문은 정당하지만 그 생략에 대한 이유와 설명은 이런데나
저런 사람에게서 듣지 못하고 막연히 전통적 관행으로 생략하여 왔으며 그것
에는 아마도 어떤 美學的 이유ㅡ절제생략의 미, 상상의 미 또는 여백의 미ㅡ
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답변을 들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음악은 정악과 민속악으로 분류되는데
정악은 궁중음악과 제례악인 아악과 (가곡, 가사, 시조등) 풍류악으로
나뉘며 이 음악은 궁중이나 지식 계급층에서 주로 연주되는 음악이며
민속악은 농악, 시나위, 무악, 산조, 민요, 잡가, 판소리 등으로 평민이나
천민사회에서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음악으로서의 향악이란 말은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
에서 기원된 이후 향가, 향비파라는 용어처럼 외래 것에 대한 한국 것
또는 우리 것의 뜻이 향악이란 용어 속에 뚜렷이 함축되어 있어 우리나라
의 전통적인 음악문화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며
반면에 중국의 당송(唐宋)으로부터 이입된 외래음악으로서의 唐樂은 주로
궁중의 제례와 의식에 관련된 음악인 아악(雅樂)을 가리켰습니다.
이중의 시조창은 3행 형식의 시조시로서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우리 조상들의 양반 사회에 널리 퍼졌던 곡으로 시절단가, 시절가, 시조창
으로 불려져 왔습니다. 이 시조창의 발원은 고려시대 말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최고 문헌은 석북 신광수(1712~1775년)의 "석북집" '관서악부'로 조선조
영조때의 가객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최초의 악보는 서유구(1764~1845년)의 "임원 경제지" "유예지"와 이규경
(1788~?)의 " 철 자보"가 있습니다. 이를 보면 시조창은 조선시대 후기에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평시조처럼 황종, 중려, 임종의 3음부로 이루
어졌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경로로 시조가 음악으로 널리 퍼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시조창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경제와
지방으로 확산된 경제가 지역 특성에 맞게 발달 한 향제로 나누어 집니다.
다시 세분하여 보면 서울·경기 지역의 경제(京制)와
향제로는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도의 내포제(內浦
制)로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습니다.
경제시조는 속청을 쓰고 장단이 잘 정립되었으며 피리와 대금 등 여러 반주
형태를 갖고 있으며, 완제시조는 전라도 토속의 언어와 발음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과 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현행 시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평시조(평거)를 비롯하여 중허리시조(중
거), 지름시조 (두거), 사설지름시조(농), 수잡가(반시조반잡가), 여창지름시조,
우조시조, 우조지름시조 등이 경제에 속합니다.
향제는 악기가 없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연주하여 초장과 종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든 점이 경제와 다릅니다. 전라도의 완제, 경상도의 영제, 충청
도의 내포제 등으로 나누어 지며, 평시조와 서설시조(또는 엮음시조, 편시조)
가 중심을 이루는데 엇시조, 반사설시조 등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다양한
시조들이 있습니다. 영제의 평시조는 경제와 비슷하며 사설시조는 경제의 엮
음시조와 비슷합니다. 완제는 주로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연주되는데 영제와
비슷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나누어지는데 종장의 끝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등은 생략하여 부르지 않고, 장단은 삼점오박 장단과 오점
팔박 장단이 교차되어 연주됩니다. 음계는 3음계(경제의 평시조, 중허리시조,
향제의 평시조, 사설시조)와 4음계(경제의 지름 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가,
여창지름시조), 3.4음계 계면조와 5음계인 평조와의 혼합음계(경제의 우조
시조, 우조지름시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음에서 변화무쌍한 모음의 변
화가 있어 단산한 듯 하지만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조창은 가곡의 영향을 받아 시조곡조가 발생·보급됨에 따라 서울·경기 지
역의 경제(京制),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도의 내포
제(內浦制)로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습니다.
완제시조는 전라도 토속의 언어와 발음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과 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경제는 평시조에서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
가, 휘모리잡가 등 변화곡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장단이 잘 정립되었으며, 피리
와 대금 등 여러 반주 형태를 갖고 있고, 속청을 올려가며 아름답게 부릅니다.
완제·영제·내포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중심이 됩니다. 악기가 없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연주하여 초장과 중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듭니다.
완제는 연결성이 발달하여 소리가 윤택하고,
영제는 뚝뚝 끊어지게 부르며,
내포제는 경제와 영제의 중간 성격을 지닙니다.
시조창의 형식은 3장형식이고, 음계는 3음·4음의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
을 주는 음조)와 5음의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되어 있습니
다. 시조창은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창법에 따라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어서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귀중한 문화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