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음악이라 부르지 못하고(음악 칼럼)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교과서에「집 떠나는 홍길동」이라는 단원이 있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홍길동의 총명함이 뛰어났다.
그러나 서자 출신이라서 호부호형(呼父呼兄)하는 것도 함부로 못하고 결국은 집을 떠나게 된다는 줄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악이 딱 그런 것 같다. 음악 혈통은 엄연히 한국인데, 어찌된 셈인지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
반면에, 서양음악인 클래식음악은 온갖 과분한 적자 대우를 받고 있다.
홍길동이 자기 생부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꾸짖음을 받았듯이, 국악도 그러하다.
그냥 ‘음악’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국악’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한국 전통음악’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냥 음악이라고 하면, 서양(클래식)음악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 또한 서양음악 전공자이다 보니, 주위에서 나를 ‘음악인’이라고 부르지, ‘국악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서양 식민지도 아닌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땅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명칭적 차별뿐만 아니다. 국악인들은 보수와 사회적 신분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에 있을 때, 연봉이 대략 20 억 정도였다.
그런데 같은 서울시 산하 연주단체인 서울시립국악관현단 지휘자 연봉은 5천5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정명훈 마니아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클래식음악과 국악이 같은 수준의 음악이냐고?
그러면 영어교사가 국어보다 어려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국어교사보다 월급을 몇 배 더 주는 것도 이치적으로 맞는 것인지?
물론, 클래식음악의 우수성은 인정한다. 그리고 클래식음악이 언어로 말하면 마치 표준어 같은 개념의 음악으로 통용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부터 탈(脫)서양중심의 음악학이라고 할 수 있는「종족음악학」이라는 학문이 대두되면서,
이제는 클래식의 본고장 서양에서조차 음악학자들은 모든 나라의 음악을 대등한 관점에서 보고 있다.
최근에는 국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음악교과서에 국악비중이 무척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음악환경은 여전히 서양음악 중심이다. 음악교사들부터가 거의 서양음악 전공자들이다.
내가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 강원도내 공립학교 음악교사들 중 국악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악특별활동반이 있던 사립학교 강릉 강일여고와 영월 석정여고에만 국악전공 음악교사가 1명씩 있었다.
그래서 도(道)교육청 주최 예능실기 대회 국악 부문 심사위원을 맡을 음악교사가 없어서 고민이었다.
비전공자인 내가 다년간, 부득이 심사를 하였었다. 그나마 내가 국악을 조금 안다고….
그 때 나에게 심사를 받았던 국악 꿈나무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국어교사와 영어교사가 있듯이, 음악교사도 국악교사와 양악교사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음악은 ‘실기’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어학보다 전공의 의미가 더욱 크다.
자국(自國)의 음악보다 서양음악을 먼저 가르치고, 또 중요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라고 한다.
같은 아시아 나라이지만, 중국·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등 그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서양음악 중심으로 음악교육을 하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서양음악이 거의 발도 못 붙이고 있다고 한다. 클래식음악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가 바로 인도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내마노 회원분들이라도 이런 음악 상황을 알고, 자녀들의 음악교육에 참고 하셨으면 한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홍길동의 총명함이 뛰어났다.
그러나 서자 출신이라서 호부호형(呼父呼兄)하는 것도 함부로 못하고 결국은 집을 떠나게 된다는 줄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악이 딱 그런 것 같다. 음악 혈통은 엄연히 한국인데, 어찌된 셈인지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
반면에, 서양음악인 클래식음악은 온갖 과분한 적자 대우를 받고 있다.
홍길동이 자기 생부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꾸짖음을 받았듯이, 국악도 그러하다.
그냥 ‘음악’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국악’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한국 전통음악’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냥 음악이라고 하면, 서양(클래식)음악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 또한 서양음악 전공자이다 보니, 주위에서 나를 ‘음악인’이라고 부르지, ‘국악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서양 식민지도 아닌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땅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명칭적 차별뿐만 아니다. 국악인들은 보수와 사회적 신분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에 있을 때, 연봉이 대략 20 억 정도였다.
그런데 같은 서울시 산하 연주단체인 서울시립국악관현단 지휘자 연봉은 5천5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정명훈 마니아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클래식음악과 국악이 같은 수준의 음악이냐고?
그러면 영어교사가 국어보다 어려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국어교사보다 월급을 몇 배 더 주는 것도 이치적으로 맞는 것인지?
물론, 클래식음악의 우수성은 인정한다. 그리고 클래식음악이 언어로 말하면 마치 표준어 같은 개념의 음악으로 통용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부터 탈(脫)서양중심의 음악학이라고 할 수 있는「종족음악학」이라는 학문이 대두되면서,
이제는 클래식의 본고장 서양에서조차 음악학자들은 모든 나라의 음악을 대등한 관점에서 보고 있다.
최근에는 국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음악교과서에 국악비중이 무척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음악환경은 여전히 서양음악 중심이다. 음악교사들부터가 거의 서양음악 전공자들이다.
내가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 강원도내 공립학교 음악교사들 중 국악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악특별활동반이 있던 사립학교 강릉 강일여고와 영월 석정여고에만 국악전공 음악교사가 1명씩 있었다.
그래서 도(道)교육청 주최 예능실기 대회 국악 부문 심사위원을 맡을 음악교사가 없어서 고민이었다.
비전공자인 내가 다년간, 부득이 심사를 하였었다. 그나마 내가 국악을 조금 안다고….
그 때 나에게 심사를 받았던 국악 꿈나무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국어교사와 영어교사가 있듯이, 음악교사도 국악교사와 양악교사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음악은 ‘실기’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어학보다 전공의 의미가 더욱 크다.
자국(自國)의 음악보다 서양음악을 먼저 가르치고, 또 중요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라고 한다.
같은 아시아 나라이지만, 중국·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등 그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서양음악 중심으로 음악교육을 하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서양음악이 거의 발도 못 붙이고 있다고 한다. 클래식음악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가 바로 인도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내마노 회원분들이라도 이런 음악 상황을 알고, 자녀들의 음악교육에 참고 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