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 정해종
내가 읽어 온 책들의 활자를 풀어 벽촌의 싸락눈으로 내리게 하
고 만남과 이별의 숱한 사연들을 가랑비로 내리게 한다면, 그리
고 속이 텅 빈 가을벌판의 허수아비가 된다면,
주저하다 보내지 못했던 수많은 편지의 허리굽은 글씨들을 바로
펴 삼천리 금수강산을 그릴 수 있다면 북어 대가리같은 사유의
흔적만 남더라도 한결 가벼워진 몸을 쉽게 눕힐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누워 썩을 수 있다면,
제 영혼은요 거름이 되고 공기가 되어서 우울에 지친 그대 어깨
위에 잠시 머물고, 잠시 머물며 썩어 거름이 되는 것들의 아름다
움과 썩기 위해 우울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없
이 깊은 어느곳으로 스며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