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의 횡설수설(3) – 노래에 빠지다
집안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형은 고등학교만 마쳤고, 집에서는 나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가정 형편은 나의 고등학교 진학에도 영향을 미쳐서, 나는 지방 명문인 같은 계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장학생이 되기 위해서 다른 학교를 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외톨이가 돼버렸다. 게다가 학교 환경은 열악한 편이어서, 널빤지로 지은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는가 하면, 선생님이 부족하여 일부 과목은 비 전공 선생님이 가르치기도 했다.
나를 과보호하는 우리 집에서는 나를 또다시 작은 할아버지 댁에 기숙을 시켜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나는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 기숙하는 것 보다 집에서 십 리 길을 걸어 나와 기차로 통학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게 몸은 고되지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당시 우리들에게 그 정도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나를 외톨이 신세에서 면하도록 따뜻하게 대해준 친구 중의 하나인 C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데다가 미성을 가지고 있어서, 소풍이라든가 학교 행사가 있으면 노래자랑에서 항상 J와 1, 2위를 다투었다. – C는 가곡을, J는 요즈음 말로 크로스오버를 선호했는데 C보다는 J가 보다 대중성이 있었다. 나는 C의 노래가 항상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다고 생각했었지… –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C로부터 많은 노래를 배우게 되었고, 탈리아비니 주연의 물망초라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외국의 유명한 성악가 이야기도 자주 들으면서 점점 노래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배운 우리 가곡으로는 가고파, 수선화, 내 마음,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 무척 많았다. – 훗날 행정학 박사가 된 C를 만나 가고파 후편을 들려주면서 옛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가 훨씬 더 많은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
이렇게 해서 simon은 우리 가곡을 너무 너무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외톨이가 돼버렸다. 게다가 학교 환경은 열악한 편이어서, 널빤지로 지은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는가 하면, 선생님이 부족하여 일부 과목은 비 전공 선생님이 가르치기도 했다.
나를 과보호하는 우리 집에서는 나를 또다시 작은 할아버지 댁에 기숙을 시켜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나는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 기숙하는 것 보다 집에서 십 리 길을 걸어 나와 기차로 통학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게 몸은 고되지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당시 우리들에게 그 정도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나를 외톨이 신세에서 면하도록 따뜻하게 대해준 친구 중의 하나인 C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데다가 미성을 가지고 있어서, 소풍이라든가 학교 행사가 있으면 노래자랑에서 항상 J와 1, 2위를 다투었다. – C는 가곡을, J는 요즈음 말로 크로스오버를 선호했는데 C보다는 J가 보다 대중성이 있었다. 나는 C의 노래가 항상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다고 생각했었지… –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C로부터 많은 노래를 배우게 되었고, 탈리아비니 주연의 물망초라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외국의 유명한 성악가 이야기도 자주 들으면서 점점 노래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배운 우리 가곡으로는 가고파, 수선화, 내 마음,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 무척 많았다. – 훗날 행정학 박사가 된 C를 만나 가고파 후편을 들려주면서 옛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가 훨씬 더 많은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
이렇게 해서 simon은 우리 가곡을 너무 너무 좋아하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