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Man'이 탄생시킨 희극과 비극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Yes'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업무 관계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경우에는
잘못된 것도 그저 좋게 말하고 마는 경우가 흔이 있다.
별로 깊은 관계에 있지 않은데 굳이 싫은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늘 'Yes Man'이 되면 안된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잘 했다', '잘 했다'라고만 하면 그 자녀는 좋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수가 있다.
부모가 그저 '오냐, 오냐!'했다고 그런 자녀가 감사할 까닭이 없다.
잘 못했을 때는 '잘 못했다',
잘 했을 때에는 '잘 했다'하고 말해 주고,
보다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마음과 정성을 보태주고 좋은 모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No!'하기를 두려워 하는 이는
그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되겠다.
허나 'Yes!'해야 할 때는 'Yes!'라 하고,
'No!'해야 할 때는 'No!'라고 답해 주는 것이
비록 그 당시에는 쓴 약 처럼 맛이 없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Yes man'만을 친구로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 다른 이들이, 특히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No!'했을 때 큰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때론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의 잘 모르는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서 무심코 한 말에도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다.
허나 그러한 경험들이 나를 보다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고,
나에게 남을 더욱 더 배려하는 훈련을 하게 만들고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에 부담을 주지만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들은 늘 'yes, yes!'하는 이들보다 보다 훌륭한 선생이 되어 주었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펴보고, 우리 모두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Yes!'라는 긍정적인 답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자꾸 'Yes!'라는 답만 듣기를 원하다간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심과 애정을 가진 자만이
사랑의 마음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대방의 처지도 모르면서, 전혀 가깝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마음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 'No!'하는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허나 겉으론 친한 척하고, 사랑하는 척하고,
관심있는 척하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잘 했어! 잘 했어!'하면서 환심만을 사려고
사탕발림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더 큰 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자야!
지혜를 얻으라.
지혜에게 상의하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려 줄 것이다.
'Yes man'에게 무엇을 기대하려고 하는가.
그저 업무 관계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경우에는
잘못된 것도 그저 좋게 말하고 마는 경우가 흔이 있다.
별로 깊은 관계에 있지 않은데 굳이 싫은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늘 'Yes Man'이 되면 안된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잘 했다', '잘 했다'라고만 하면 그 자녀는 좋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수가 있다.
부모가 그저 '오냐, 오냐!'했다고 그런 자녀가 감사할 까닭이 없다.
잘 못했을 때는 '잘 못했다',
잘 했을 때에는 '잘 했다'하고 말해 주고,
보다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마음과 정성을 보태주고 좋은 모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No!'하기를 두려워 하는 이는
그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되겠다.
허나 'Yes!'해야 할 때는 'Yes!'라 하고,
'No!'해야 할 때는 'No!'라고 답해 주는 것이
비록 그 당시에는 쓴 약 처럼 맛이 없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Yes man'만을 친구로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 다른 이들이, 특히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No!'했을 때 큰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때론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의 잘 모르는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서 무심코 한 말에도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다.
허나 그러한 경험들이 나를 보다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고,
나에게 남을 더욱 더 배려하는 훈련을 하게 만들고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에 부담을 주지만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들은 늘 'yes, yes!'하는 이들보다 보다 훌륭한 선생이 되어 주었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펴보고, 우리 모두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Yes!'라는 긍정적인 답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자꾸 'Yes!'라는 답만 듣기를 원하다간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심과 애정을 가진 자만이
사랑의 마음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대방의 처지도 모르면서, 전혀 가깝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마음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 'No!'하는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허나 겉으론 친한 척하고, 사랑하는 척하고,
관심있는 척하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잘 했어! 잘 했어!'하면서 환심만을 사려고
사탕발림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더 큰 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자야!
지혜를 얻으라.
지혜에게 상의하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려 줄 것이다.
'Yes man'에게 무엇을 기대하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