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
조병화 시인 2주기 맞아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출간
![052005021803300_1.jpg](http://photo-media.hanmail.net/yonhap_m/200502/20/052005021803300_1.jpg)
조병화(1921-2003) 시인의 2주기를 맞아 3월 8일 오후 6시 '문학의 집 서울'(이사장 김후란)에서 추모행사와 함께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동문선) 출간기념회가 열린다.
'넘을 수 없는 세월'은 제자와 후배 문인들이 엮은 조 시인의 53번째 시집. 조 시인은 투병 중이던 2002년 11월 16일 쓴 '서문'에 "일생을 시를 쓰며 시를 살아 왔지만/두뇌에 약간 고장이 나서 더 이상/창작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따라서 이 시집(53)으로 끝을 맺으려/하는 겁니다. 좀 섭섭하지만 그러나/만족을 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김종길 시인의 추도사를 비롯해 원로시인 김남조 홍윤숙 황금찬 박태진 씨의 헌화 등이 진행된다. 김후란 성춘복 유경환 시인은 유작시를 낭송하고, 성악가 오현명 씨는 최영섭 씨가 작곡한 '추억'을 부른다. 조 시인의 육성을 듣는 시간도 마련한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시인은
85세까지 살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1998년 7월 30일부터 2002년 7월15일까지 쓴 편지를 모은 서간집에서
'이젠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120신에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
마지막 가시는 길에 시인이 느낀 심경을 그대로 옮겨 놓으신 듯
가슴 저미게 시인을 느끼게 하는 한 편의 시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를 적어 봅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조병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자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믿어야 했습니다.
<2005. 3. 10. >
![052005021803300_1.jpg](http://photo-media.hanmail.net/yonhap_m/200502/20/052005021803300_1.jpg)
조병화(1921-2003) 시인의 2주기를 맞아 3월 8일 오후 6시 '문학의 집 서울'(이사장 김후란)에서 추모행사와 함께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동문선) 출간기념회가 열린다.
'넘을 수 없는 세월'은 제자와 후배 문인들이 엮은 조 시인의 53번째 시집. 조 시인은 투병 중이던 2002년 11월 16일 쓴 '서문'에 "일생을 시를 쓰며 시를 살아 왔지만/두뇌에 약간 고장이 나서 더 이상/창작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따라서 이 시집(53)으로 끝을 맺으려/하는 겁니다. 좀 섭섭하지만 그러나/만족을 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김종길 시인의 추도사를 비롯해 원로시인 김남조 홍윤숙 황금찬 박태진 씨의 헌화 등이 진행된다. 김후란 성춘복 유경환 시인은 유작시를 낭송하고, 성악가 오현명 씨는 최영섭 씨가 작곡한 '추억'을 부른다. 조 시인의 육성을 듣는 시간도 마련한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시인은
85세까지 살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1998년 7월 30일부터 2002년 7월15일까지 쓴 편지를 모은 서간집에서
'이젠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120신에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
마지막 가시는 길에 시인이 느낀 심경을 그대로 옮겨 놓으신 듯
가슴 저미게 시인을 느끼게 하는 한 편의 시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를 적어 봅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조병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자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믿어야 했습니다.
<2005. 3.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