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면 좋을까..
<어찌 하면 좋을까>
언제부터인가 부쩍 큰 까치소리가 우렁차게 집안으로 차고 들어왔다.
그 소리는 유난히 가까웠고 아파트 유리창에 부딪쳐 공명이 되었는지
더 맑게 들려 왔으므로 늘 듣던 까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 집 맞은 편에 넉넉하게 교행할 수 있는 2차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느티나무가 한 그루 늠름하게 서 있다. 730년 수령의 그 느티나무에는
꽤 큰 까치집이 하나 있는데 이른 아침, 까치들이 부지런을 떠는 날은
크게 나무 주위를 원을 그리며 날아 오르곤 한다, 그럴 때 어김 없이 내지르는
까치소리와는 요즘 들려오는 이 소리는 새벽 잠결에도 쉽게 구분이 될 만큼
거리감이 다르다.
마치 베란다 유리창에 붙어 앉아서 소리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베란다 난간에서 두 마리가 화답하듯 이중창으로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오늘도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보다.
오늘 따라 노랫소리가 맑고 우렁찬 걸 보니 분명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그렇게 그날 그날 까치움음소리에 따라 행복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그 일을 잊었나 싶은 어제 아침, 일찍 눈을 뜨고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이유는 이불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작은 기온차로 다소 잦아들었던 기침이 계속될 것 같아서였다. 때 맞추어
커다란 까치 울음소리가 쳐들어 왔다, 그 우렁찬 소리는 나를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앞뒤 생각 않고 베란다 쪽으로 가서 급히 블라인드를
걷어 젖혔다. 남쪽으로 난 작은 애 방앞 외벽에 부착된 에어컨 실외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흔한 조류이긴 해도 도심에 살면서 날개 있는 짐승을 가까이서 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녀석들, 그 동안 여기에 앉아서 울어대고
있었구나. 아무튼 고맙고도 기특한 마음에 잠시 지켜 보노라니 또 한마리의
까치가 힘차게 그 주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입에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있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걸 감지했는지 내려 앉지 않고 비행만
계속하다가 결국 앉아 있던 다른 한마리 마저 데리고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펴보니 에어컨 실외기를 매달아 놓은 받침대 사이 좁은
공간에 어느새 물어다 놓았는지 비숫한 굵기와 고만고만한 길이의 나뭇가지들이
꽤 모여있었다. 집을 지을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그래, 봄이면 모든 것이 눈을 뜨지, 얘네들이라고 새 보금자리에서
새 생명을 양육할 계획이 없을라고..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아, 이렇게 가까이서 얘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게 되겠구나,
집을 짓는 과정이며 새-끼를 낳고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가 커서 첫비행을
하는 장면까지도 소상히 볼 수 있게 되겠구나,
웬 행운인가 하면서 이제부터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나를 족히 행복하게 해줄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생겼구나, 꿈에 부풀었다. 고맙다.. 까치야,
까치 한쌍이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우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 이 얼마나
자신의 삶과 의무에 충실한 모습인가. 어린 생명을 키우기 전에 삶의 터전을
먼저 다지는 그들에게서 자연의 신비감과 미물이지만 생명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 때부터 내 신경은 온통 그 까치집에 쏠렸고 눈만 뜨면 블라인드를 걷고
그들의 새로운 집 신축현장의 공사진행상태를 점검했다. 그 녀석들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면 혹 종일 날아오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다른 곳, 더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다 집을 지어버리면 어쩌나 조바심도 내면서
나뭇가지가 모이는 속도가 더딘 날은 이 집을 언제 다 지을까 안달도 했다.
그러나, 기쁨을 나누면 두 배로 된다고 누가 말했을까, 남편에게 빅 이벤트가
생긴 양 흥분한 어조로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반응은 의외였다.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까치집이 완공되었을 때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얘기하는 거였다.
요약하면 '신문도 안 보느냐' 였다. 까치집이 비나 이슬에 젖게 되면 그대로
전기가 흘러 합선으로 인한 정전사고가 난다는 것. 그래서 어떤 지방에서는
‘100일 까치소탕작전’을 벌여 사냥꾼들로부터 사들인 까치로 박제품을
만들어 팔아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는 둥, 한전 어느 지점의 경우
하루 3백여개의 까치집을 철거한다는 둥, 무척 신빙성 있어 보이는 예를 들어
차근차근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래도..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까치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생태관찰의 훌륭한 자료라거나,
야생조류 한 세대가 자라는 과정을 살핌으로써 생명의 경외심을 깨우치는
멋진 계기가 될 거라 거나, 아침나절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기쁜 소식을
예고해 주는 길조라는, 가슴뛰는 낭만적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까치와 한전 사이의 팽팽한 생존의 대결구도 만이 화두에 올라와
있을뿐 까치는 이미 문명생활에 골칫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이건 타협의
선을 넘어 '인간과 까치와의 전쟁 선포' 바로 그거였다. 특히 산란기인
2-4월에는 한전 직원뿐 아니라 일용직 배전공까지 고용, 배전선로 순시조를
편성해 전신주에 불법으로 지은 까치집 철거활동을 벌인다고.
한전은 갖은 아이디어를 발휘, 전신주 전선시공을 하향식으로 변경,
전력선이 까치집에 닿지 않도록 하고 전신주와 전선의 연결부위에 절연호스를
사용하는 등 ‘조류 공존형 설비’ 라는 이름 아래, 까치로 인한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바람개비, 거울 또는 은박지, 모형뱀·매, 죽은 까치, 빙초산,
나프탈렌, 시너 등 시·후· 촉각을 총동원한 퇴치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배전선로 고장건수 2769건 중 19.8%인 547건이
까치로 인해 발생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월별로는 까치들이 산란을
위해둥지를 트는 시기인 2~4월에 고장사고가 집중되는데 지난해 2월에
50(9.1%), 3월에 208건(38%), 4월에 71건(12.9%)이 발생했다 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까치의 성장과정 관찰이란 매력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포기할 것인가,
처음 발견했을 때 고맙고 기특해 했던 그 며칠간의 까치와의 신의를 저버리고
저 신축공사 현장을 무자비하게 허물어 버릴 것인가,
한전의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이고 운 좋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최고 40%도 안되는 정전사고를 피하느라 그 들의 꿈의 보금자리를
헐어버리는 우를 범할 것인가,
정전이 되면, 사후 조치를 감수하고도 집 짓는 일을 묵과해 줄 것인가.
/김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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