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일들
왜 그때는 그랬을까?
여고 시절, 처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친구들과 명동나들이를 했다.
국립극장 앞길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인파에 우선 놀랐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을까?
나부터도 그곳에 있었으니 할 말이 없건마는 그런 의문부터 앞섰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마다 종이로 만든 가면도 쓰고
필름으로 된 뿔피리를 하나씩 들고 빽빽 소리를 내며
아무 얼굴에나 대고 불어대는 모습이었다. 말려있던 피리는 바람이 들어가면
확 펴지면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낄낄대고 떠들며 어디론가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다.
사진이라도 찍힌 듯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그 정경이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곤 한다.
모두 가난하던 그 시절, 즐거운 일이라고는 없었기에 용서가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하필이면 앞 자크 바지를...
초딩 시절(하, 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초딩 시절이 있었다니...)
주일학교에서는 성탄 감사예배 준비가 한참이었다.
시골 교회여서 인재가 드문 탓에 무용에도 뽑히고 합창에도 뽑히고 연극에도 뽑혔다.
연극에서는 ‘연희’라는 극중 인물을 맡았다.
그래도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어서 예배당에서도 따로따로 앉던 까까중들이
같이 어울려 연습을 하다보니 마음이 요상스러워 졌던지 길에서 만나면
멀리서 돌도 던지고 ‘연희야~ ’ 부르곤 쏜살같이 도망을 치기도 했다.
어느 날 율동을 지도하던 선생님께서 자기 집에 가서 연습을 더 하자고 했다.
그 선생님 집에 가서 외투를 벗고 연습을 시작하자 ‘연희야’를 불러대던
개구쟁이들 중 제일 꾸러기 같던 녀석 하나가 들어와 턱 앉더니 구경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아이가 그 선생님의 동생일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빤히 쳐다보는 그 눈초리 앞에서 나는 도무지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 자크가 달린 내 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 시절엔 앞 자크 바지는 남자애들 전용이었고 여자는 옆 자크를 달아 입었다.
나는 영락없이 남자 바지를 입은 꼴이 되었다.
여자 나이 서른이 지나면 여자가 아니라는 옛 어른의 말씀을 신봉하며
패션감각하고는 전연 무관하게 덤덤하고 조촐하게 살아오신 나의 모친께서
무슨 선견지명이 있으셨던지 바지 하나에 앞 자크를 달아 만들어 주셨기에
그날따라 입고 갔던 바지가 내게는 죽을 맛이 되었던 것이다.
연습을 어떻게 마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저 애가 아무개는 남자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 하며 소문을 낼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소문이 났는지 안 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요즘엔 오히려 옆 자크 달린 바지를 찾아볼 수 없다.
바지를 입을 때마다 문득 문득 실소케 하던 그 바지의 기억이 이맘때면 엄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때 이미 엄마는 우리 여자들 바지의 운명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여고 시절, 처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친구들과 명동나들이를 했다.
국립극장 앞길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인파에 우선 놀랐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을까?
나부터도 그곳에 있었으니 할 말이 없건마는 그런 의문부터 앞섰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마다 종이로 만든 가면도 쓰고
필름으로 된 뿔피리를 하나씩 들고 빽빽 소리를 내며
아무 얼굴에나 대고 불어대는 모습이었다. 말려있던 피리는 바람이 들어가면
확 펴지면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낄낄대고 떠들며 어디론가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다.
사진이라도 찍힌 듯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그 정경이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곤 한다.
모두 가난하던 그 시절, 즐거운 일이라고는 없었기에 용서가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하필이면 앞 자크 바지를...
초딩 시절(하, 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초딩 시절이 있었다니...)
주일학교에서는 성탄 감사예배 준비가 한참이었다.
시골 교회여서 인재가 드문 탓에 무용에도 뽑히고 합창에도 뽑히고 연극에도 뽑혔다.
연극에서는 ‘연희’라는 극중 인물을 맡았다.
그래도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어서 예배당에서도 따로따로 앉던 까까중들이
같이 어울려 연습을 하다보니 마음이 요상스러워 졌던지 길에서 만나면
멀리서 돌도 던지고 ‘연희야~ ’ 부르곤 쏜살같이 도망을 치기도 했다.
어느 날 율동을 지도하던 선생님께서 자기 집에 가서 연습을 더 하자고 했다.
그 선생님 집에 가서 외투를 벗고 연습을 시작하자 ‘연희야’를 불러대던
개구쟁이들 중 제일 꾸러기 같던 녀석 하나가 들어와 턱 앉더니 구경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아이가 그 선생님의 동생일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빤히 쳐다보는 그 눈초리 앞에서 나는 도무지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 자크가 달린 내 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 시절엔 앞 자크 바지는 남자애들 전용이었고 여자는 옆 자크를 달아 입었다.
나는 영락없이 남자 바지를 입은 꼴이 되었다.
여자 나이 서른이 지나면 여자가 아니라는 옛 어른의 말씀을 신봉하며
패션감각하고는 전연 무관하게 덤덤하고 조촐하게 살아오신 나의 모친께서
무슨 선견지명이 있으셨던지 바지 하나에 앞 자크를 달아 만들어 주셨기에
그날따라 입고 갔던 바지가 내게는 죽을 맛이 되었던 것이다.
연습을 어떻게 마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저 애가 아무개는 남자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 하며 소문을 낼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소문이 났는지 안 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요즘엔 오히려 옆 자크 달린 바지를 찾아볼 수 없다.
바지를 입을 때마다 문득 문득 실소케 하던 그 바지의 기억이 이맘때면 엄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때 이미 엄마는 우리 여자들 바지의 운명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