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緣이 있고 機가 있어야 이루워 집니다.
나는 김춘수시인의 "꽃"시를 세상의 어느 시보다 더 사랑합니다.
시인의 허락 없이도 사랑할수 있습니다.
나는 또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잘은 몰라도 그의 노래를 사랑합니다.
악성의 허락 없이도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의 사랑이란
주고 싶다고 다 줄 수 있는 것도, 받고 싶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 "꽃" 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Ich iiebe dich"의 선률에 실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습니다.
나의 좀 엉뚱한 소원이 어쩜 이번에 이루워 질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 꽃 *
ㅡ 김춘수 (1922~2004 ) ㅡ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註] 옛날에는 마지막 구절은 " 눈짓이=>의미가" 로 되어 있었습니다.
" 의미가" 로 읽는 것이 나 같은 문외한들에게는 더 직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