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수필)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나는 강가를 돌아 자작나무 우거진 호젓한 오솔길을 걷는다. 살랑대는 바람은 잔잔한 강물과 파릇파릇한 자작나무 잎을 흔들어 깨운다. 한적한 자작나무 오솔길에 들어서면 나는 스스로 사색의 늪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눈처럼 하얀 껍질과 시원스럽게 뻗은 훤칠한 키가 무척이나 정겹다. 푸른 숲 속에 학이 날아와 긴 목을 뻗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 듯, 애타게 그리던 다정한 미인이 날씬한 각선미를 드러내며 마주 대하듯 정감과 그리움이 샘솟는다. 껍질이 여러 겹 얇게 벗겨지면 아름다운 몸매를 살포시 드러내는 듯 신비롭기만 하다.
봄이 오면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하얀 껍질 뚫고서 새 잎을 내밀고 연초록의 잎 사이로 이삭 모양의 꽃에서 그윽한 향기를 드리운다.
바이칼 호숫가의 자작나무숲이나 광활하게 펼쳐진 시베리아 설원, 수많은 호수로 끝없이 이어지는 핀란드의 대자연 속에 우거진 자작나무숲이 아니라도 좋다.
무더운 여름, 초록의 숲 속에 들어서면 자작나무는 풀물에 배인 치마를 끌고 오는 다정한 연인처럼 다소곳이 미소 지으며 내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작나무 하얀 얇은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그대의 치마폭을 장식하고 싶다. 눈부신 그녀의 자태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나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발걸음. 한 잎의 그리움을 주워 올리는 풀벌레 소리, 이 고요함은 사랑의 이슬방울처럼 풀잎에 아롱진다.
숲 속에 어두운 적막이 스며들면, 환한 달빛을 깨우며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붙여 함께 작은 음악회나 무도회라도 가졌으면 싶다. 그래서 하늘 바람이 출렁이는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었으면 한다. 중국의 시인 소식이 '그대를 보내는 숲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밝히는데, 타는 불꽃 향기 더욱 아름답다.'며, 이별의 슬픔을 나누면서 화촉을 밝혔다는 시를 읊조리지 않으리.
자작나무 껍질은 좀처럼 좀도 슬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수천 년의 긴 세월 땅 속에 깊이 파묻혔던 자작나무 껍질은 생생하게 남아 숨쉰다. 심마니들이 깊은 산 속에서 귀한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보관한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눈보라가 치고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도 자작나무는 왜 얇은 하얀 옷을 입으며, 새하얀 껍질까지 벗어버리려 하는지. 차디찬 대지에 굳건한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서 있는 자작나무의 떳떳한 기상을 거울삼으려고 하는 것일까.
순수성과 결백을 널리 세상에 알리고 악과 위선의 허울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이 순백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면 스스로 터득할 일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작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른 봄이면, 물오른 자작나무에서 뽑아낸 풋풋한 향을 담은 수액이 좋은 약수라고 사람들은 자작나무 숲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그 곳에는 찝찔한 자작나무의 뿌연 눈물이 고여 있다.
명상의 하얀 종이를 푸른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에 띄워본다.
<수필문학 7월호>
눈처럼 하얀 껍질과 시원스럽게 뻗은 훤칠한 키가 무척이나 정겹다. 푸른 숲 속에 학이 날아와 긴 목을 뻗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 듯, 애타게 그리던 다정한 미인이 날씬한 각선미를 드러내며 마주 대하듯 정감과 그리움이 샘솟는다. 껍질이 여러 겹 얇게 벗겨지면 아름다운 몸매를 살포시 드러내는 듯 신비롭기만 하다.
봄이 오면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하얀 껍질 뚫고서 새 잎을 내밀고 연초록의 잎 사이로 이삭 모양의 꽃에서 그윽한 향기를 드리운다.
바이칼 호숫가의 자작나무숲이나 광활하게 펼쳐진 시베리아 설원, 수많은 호수로 끝없이 이어지는 핀란드의 대자연 속에 우거진 자작나무숲이 아니라도 좋다.
무더운 여름, 초록의 숲 속에 들어서면 자작나무는 풀물에 배인 치마를 끌고 오는 다정한 연인처럼 다소곳이 미소 지으며 내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작나무 하얀 얇은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그대의 치마폭을 장식하고 싶다. 눈부신 그녀의 자태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나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발걸음. 한 잎의 그리움을 주워 올리는 풀벌레 소리, 이 고요함은 사랑의 이슬방울처럼 풀잎에 아롱진다.
숲 속에 어두운 적막이 스며들면, 환한 달빛을 깨우며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붙여 함께 작은 음악회나 무도회라도 가졌으면 싶다. 그래서 하늘 바람이 출렁이는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었으면 한다. 중국의 시인 소식이 '그대를 보내는 숲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밝히는데, 타는 불꽃 향기 더욱 아름답다.'며, 이별의 슬픔을 나누면서 화촉을 밝혔다는 시를 읊조리지 않으리.
자작나무 껍질은 좀처럼 좀도 슬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수천 년의 긴 세월 땅 속에 깊이 파묻혔던 자작나무 껍질은 생생하게 남아 숨쉰다. 심마니들이 깊은 산 속에서 귀한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보관한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눈보라가 치고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도 자작나무는 왜 얇은 하얀 옷을 입으며, 새하얀 껍질까지 벗어버리려 하는지. 차디찬 대지에 굳건한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서 있는 자작나무의 떳떳한 기상을 거울삼으려고 하는 것일까.
순수성과 결백을 널리 세상에 알리고 악과 위선의 허울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이 순백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면 스스로 터득할 일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작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른 봄이면, 물오른 자작나무에서 뽑아낸 풋풋한 향을 담은 수액이 좋은 약수라고 사람들은 자작나무 숲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그 곳에는 찝찔한 자작나무의 뿌연 눈물이 고여 있다.
명상의 하얀 종이를 푸른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에 띄워본다.
<수필문학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