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동 선생님 운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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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을 부르는 현장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니시며 내마음의노래를 알리며 즐거워하시던
진정한 가곡사랑의 실천자 신요 정우동 선생께서 오늘 1월 24일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
지난 1월 20일 수요일 자정 무렵 지방 가곡 부르기 모임에 다녀오신 후 귀가길에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강북 삼성병원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가곡은 물론이고 정치.경제.문학.예술 등 다방면에서 백과사전으로 불릴 정도의 박식한 분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셔서 내마노사이트 커뮤니티 신요칼럼에 864편의 글을 남기셨으며
게시판의 모든 회원의 글에 매번 첫번째로 공감을 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셨는지 돌아가시기 몇일전 신요칼럼에는 "사자의 서" 라는 두편의 죽음에 관한 글을 마지막으로 남겨놓으셨네요.
어디서나 환하게 웃으시며 어린애 같은 몸짓으로 즐거워하시던 그 모습을 이제 다시는 뵐 수가 없겠군요.
선생님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빈소 :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 1월 26일 (화) 아침
상주 : 정미미, 정은주 (사위 오현택)
*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댓글 많이 남겨 주세요..
가곡을 부르는 현장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니시며 내마음의노래를 알리며 즐거워하시던
진정한 가곡사랑의 실천자 신요 정우동 선생께서 오늘 1월 24일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
지난 1월 20일 수요일 자정 무렵 지방 가곡 부르기 모임에 다녀오신 후 귀가길에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강북 삼성병원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가곡은 물론이고 정치.경제.문학.예술 등 다방면에서 백과사전으로 불릴 정도의 박식한 분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셔서 내마노사이트 커뮤니티 신요칼럼에 864편의 글을 남기셨으며
게시판의 모든 회원의 글에 매번 첫번째로 공감을 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셨는지 돌아가시기 몇일전 신요칼럼에는 "사자의 서" 라는 두편의 죽음에 관한 글을 마지막으로 남겨놓으셨네요.
어디서나 환하게 웃으시며 어린애 같은 몸짓으로 즐거워하시던 그 모습을 이제 다시는 뵐 수가 없겠군요.
선생님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빈소 :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 1월 26일 (화) 아침
상주 : 정미미, 정은주 (사위 오현택)
*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댓글 많이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