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경북 영양 문학 기행기 -이문열 문학관-
<이문열 문학관>
제게 있어서 이번 여행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이문열” 작가님의 문학관 견학이었습니다. 젊은 날 저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자리에서건 만약 대한민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이문열씨라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이 작가님이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말들에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책 장사를 지내느니 어떠느니 할 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번 기행을 위해 예전에 읽었던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테의 연가”등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그 말 많던 <호모엑세쿠탄스>(처형자)도 대충 봤습니다. 분량도 엄청난 3권입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그건 정치 소설이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어느 불평 불만자의 걸러지지 않은 시선이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망국병과도 같은 지역주의와 또 다른 두 축,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그걸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소설은 김대중 정권 말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정권의 탄핵 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신성민-(신성한 백성), 박성근-(문성근), 박계남-(명계남), 유종석-(이종석) 이름이 이게 뭡니까? 이건 너무 한거 아닌가요?
그런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내면도 그만큼 피폐해졌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묻지 못했습니다. ...그를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이 책은 한 때나마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을 생각해서 거두어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작가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호모엑세쿠탄스>에 대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비판의 글조차 올라오지 않아서 속이 쓰렸다고 하더군요. "이것 보십시요, 작가님만 속이 쓰린게 아니라 열렬한 팬이었던 이 사람도 속이 쓰라립니다"
이 작가님의 문학관은 이름이 “광산문학연구소”였습니다. “두들”마을에는 광산문학연구소뿐만 아니라 이작가님 “선택”의 실제 주인공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예절관과 주변의 집들 까지도 보기 드문 모양새를 갖춘 한옥들로써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영양의 명소로 여겨졌습니다.
누구 안내자 한명 없이, 이 작가님을 만난다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광산문학연구소”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크고 견고하고 대단한 위용이 느껴지는 그 집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만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관리인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이 작가님은 평소에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문학관에 기거하며 이곳은 아주 가끔 들르는 곳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집은 모든 문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는 그 곳엔 시원한 정자도 있었고 정자 곁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습니다. 고여 있는 물에는 샛노란 붓꽃이 드문드문 피어있었습니다. 뭔가 허전함을 안고 기웃거리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정부인 안동장씨 예절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선택”을 읽지 않았던 저는 알지 못하는 “안동장씨”에 관한 여러 유품들이 있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쓰셨다는 필체도 유려한 “음식 미디방”이라는 요리책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합니다. 비디오로 촬영한 요리하는 법이 자세한 소개한 함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잘 가꾸어진 마을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훈선생님 생가가 있는 주곡리도 그랬지만 특히나 두들 마을은 거의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사람들이라고는 무리지어 다니는 파라솔 족들 뿐 그리고 그 관광객을 실은 승용차가 이따금 드나들 뿐입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아주 따가웠습니다. 이럴 땐 감상에 젖어 있을 게 아니라,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버스 안으로 피하는 게 최곱니다. 후다닥 버스로 올라탔습니다.
제게 있어서 이번 여행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이문열” 작가님의 문학관 견학이었습니다. 젊은 날 저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자리에서건 만약 대한민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이문열씨라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이 작가님이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말들에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책 장사를 지내느니 어떠느니 할 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번 기행을 위해 예전에 읽었던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테의 연가”등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그 말 많던 <호모엑세쿠탄스>(처형자)도 대충 봤습니다. 분량도 엄청난 3권입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그건 정치 소설이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어느 불평 불만자의 걸러지지 않은 시선이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망국병과도 같은 지역주의와 또 다른 두 축,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그걸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소설은 김대중 정권 말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정권의 탄핵 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신성민-(신성한 백성), 박성근-(문성근), 박계남-(명계남), 유종석-(이종석) 이름이 이게 뭡니까? 이건 너무 한거 아닌가요?
그런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내면도 그만큼 피폐해졌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묻지 못했습니다. ...그를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이 책은 한 때나마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을 생각해서 거두어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작가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호모엑세쿠탄스>에 대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비판의 글조차 올라오지 않아서 속이 쓰렸다고 하더군요. "이것 보십시요, 작가님만 속이 쓰린게 아니라 열렬한 팬이었던 이 사람도 속이 쓰라립니다"
이 작가님의 문학관은 이름이 “광산문학연구소”였습니다. “두들”마을에는 광산문학연구소뿐만 아니라 이작가님 “선택”의 실제 주인공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예절관과 주변의 집들 까지도 보기 드문 모양새를 갖춘 한옥들로써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영양의 명소로 여겨졌습니다.
누구 안내자 한명 없이, 이 작가님을 만난다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광산문학연구소”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크고 견고하고 대단한 위용이 느껴지는 그 집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만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관리인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이 작가님은 평소에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문학관에 기거하며 이곳은 아주 가끔 들르는 곳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집은 모든 문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는 그 곳엔 시원한 정자도 있었고 정자 곁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습니다. 고여 있는 물에는 샛노란 붓꽃이 드문드문 피어있었습니다. 뭔가 허전함을 안고 기웃거리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정부인 안동장씨 예절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선택”을 읽지 않았던 저는 알지 못하는 “안동장씨”에 관한 여러 유품들이 있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쓰셨다는 필체도 유려한 “음식 미디방”이라는 요리책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합니다. 비디오로 촬영한 요리하는 법이 자세한 소개한 함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잘 가꾸어진 마을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훈선생님 생가가 있는 주곡리도 그랬지만 특히나 두들 마을은 거의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사람들이라고는 무리지어 다니는 파라솔 족들 뿐 그리고 그 관광객을 실은 승용차가 이따금 드나들 뿐입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아주 따가웠습니다. 이럴 땐 감상에 젖어 있을 게 아니라,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버스 안으로 피하는 게 최곱니다. 후다닥 버스로 올라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