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기록의 애매성

鄭宇東 0 1,365 2014.03.24 09:00
최초라는 기록의 애매성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곡들>이라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최초의 가요곡이라면 1곡이어야 맞는 말인데, 다수 복수의 가요곡들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최고 최저 최처 최후 등 최가계 어휘가 다 그
렇습니다. 그러나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고 이 말에도 그렇게 말할만한 이
유가 다 있습니다.

(1) 1916년 카츄샤가 일본에서 부활창가라는 번안곡으로 松井須磨子에
    의해 불려졌으나 음반이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카츄샤의 연극주제곡
    을 당시에는 여자배우가 전무하였으므로 여장남자 배우가 역할을 맡 
    고, 또 그에 의해서 카츄사의 노래가 불려졌습니다.
(2) 1923년에는 신식창가로 희망가가 이 풍진세상 또는 탕자의 자탄가
    (경계가)으로 녹음되어 발매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음
    반입니다. 이곡도 원곡은 미국을 거쳐 영국을 거쳐 일본이 번안한 곡
    으로 미스 콜럼비아 가쯔하라에 의해 녹음되었습니다. 
(3) 1926년 윤심덕이 일본 일동축음기에서 사의 찬미를 녹음하였습니다.
    윤심덕은 이를 마지막으로 녹음하고 귀국하는 길에 김우진과 현해탄
    에 몸을 던져 동반자살 하였습니다. 이 원곡은 루마니아의 이바노비
    치의 곡에다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번안곡입니다.
(4) 아리랑은 민요라는 장르때문에 가요의 범주에 포함되기 어려우나
    토월회에서 먼저 불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에서 채규엽이 독창하였지만 민요의 오리
    지널리티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는 연구과제입니다.
    뒤에 김연실에 의해 다시 녹음되었습니다.
(5) 1927년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 (강남달)는 진주의 권번에서 태어난
    김서정이 작사하고 유명한 변사 김영환이 작곡하였는데 두 이름은 동
    일인의 이름입니다. "봄노래 부르자(봄을 찬미하다), 유랑인의 노래"
    등도 작사 작곡하였고 이를 이정숙이 녹음하였습니다.
    가요 낙화유수는 1942년에 조명암이 작사, 김해송이 작곡하였습니다. 
(6) 학도가는 일본에서 철도가로 불려지던 노래를 번안한 곡으로,
    YMCA의 보급으로 훈련교육현장에서 불려지던 계몽성이 짙은 노래로
    대중성이 약하여 가요로 분류하기에는 곤란합니다.

예술에서 장르를 가르는 기준에는
(1) 작품성과 오락성
(2) 계몽성과 상품성
(3) 현존성과 역사성 등의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4) 우리가요의 경우 우리의 창작품이어야 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기준에 비추어 볼때
학도가, 카츄샤가, 희망가, 사의 찬미는 모두 외국의 번안곡이고
아리랑은 민요라는 기존의 분류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이렇게 볼때 낙화유수(강남달)을 최초의 우리가요로 볼 수 있겠습니다.
 
(*) 참고사항으로
    1896. 7. 22 한민족 최초로 우리 전통소리가 미국 유학생에 의하여 
    인류학자의 권고로 녹음되어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전에 남한산성에서 본 산성의 일본국 대위의 도로지도 같은 것도
    그렇다 하니 미국에는 별것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당연히 돌려받아 우리가 보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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