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雅號

鄭宇東 0 1,476 2014.01.14 14:38
예술가의 雅號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성명(姓名)을 갖습니다.
어릴때에는 어른이나 친구들이 쉽게 부르는 바우 등등의 아명(兒名)이 있고
고금에 차이가 있지만 성년이 되면 冠禮나 성년식을 치루고  이때부터는 이름을
휘(諱)하여 함부로 부르지 않고 字(名)으로 부릅니다.
가정을 꾸려 가장이 되면 堂號를 가지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
할때 스승이나 인생의 선배가 칭찬이나 축원의 뜻을 담아 아호(雅號)를 내려줍
니다. 죽고 난후 생전의 공로를 기리어 영광스럽게 나라에서 주는 시호(諡號)가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별호가 있는데 요즘 컴퓨터시대에 와서는 I D가 등장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세계에서 자신을 대
신하게 합니다.

孔(夫)子는 이름이 구(丘)였고 자는 중니(仲尼) 였습니다.
공자는 머리가 생긴 모양이 산언덕 같아서 이름을 丘라 하였고, 어머니 안씨가
니구산 에 기도하여 낳고 그위로 형이 있으므로 仲尼라 字名을 붙였다 합니다. 
애제자 安回는 자가 자연(子淵)인데 이름의 돌回와 연관되게 소용돌이 못淵를
썼습니다. 또 다른 제자 仲由는 자가 子路인데 경유의 뜻이 있는 길路를 써서
字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공자의 시대에는 아직도 아호가 없었고 이름과 자
(명)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연관이 있도록 지었다 합니다.

우리가 무심히 이름처럼 알고 있는 
金素月님은 소월이 아호이고 본명은 金廷湜입니다.
홍난파님은 본명은 洪永厚이며 그 아호가 蘭坡입니다.
김성태님은 아호가 요석(樂石)이며 필명이 김호입니다.
朴木月님은 본명이 朴泳鍾이며 그 아호가 木月입니다.
구상시인은 본명이 구상준이며 상(常)은 그 아호입니다.
고진숙님도 본명이 고봉선=>고경택이고 그 예명이 고진숙입니다.

내가 아는 몇분의 호를 더 적어보면 
박 - 연님은 난계(蘭溪)이고 조두남님은 석호(夕湖)입니다.
구두회님은 향파(香坡)이고 신귀복님은 성파(星坡)입니다.
이 두분 坡님에 蘭坡 홍영후선생을 더하여 이른바 음악계의 삼파라 칭합니다.
삼파가 나오니 음악계의 세 주막도 생각납니다. 북아현동의 이흥렬선생 댁
마산 오동동의 조두남선생 댁은 언제나 지인들로 들끓었고, 마포 성산동 주막
은 이수인선생이 친구가 없으면 혼자서도 막걸리를 즐기는 곳이었습니다.

최영섭님은 운산 (雲山)이고 간혹 높을崔 대신 高雲山으로 필명을 삼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 특유의 해학이 발동하여 태진아가 노래한<가버린 사랑>을 작곡
하며 朴仁燮 작곡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최선생님은 유머스럽게도 호의 성으로
높을 高자를 쓸때 높을 최씨성에 대신하여 쓴것이고 예명 박인섭의 박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하는 사람의 성이고, 인은 젊은 청춘시절 활동한 고향땅 인천이
고, 마지막 섭자는 자기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남기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조 음악을 정리한 박연선생은 출생지 영동에서 난계음악제로 추모받고
난파선생은 작곡이나 작시의 작품내내 모두를 아호로 일관하였고
문학적 재능에도 남달리 뛰어났던 여러 예술가들은, 예를 들면
이흥렬선생은 자작시 <고향 그리워(或 박만향시)>에 작곡하였으며
석호 조두남선생은 자작시 <뱃 노래>와 <백마강>에 작곡하였으며
향파 구두회 선생은 자작시 <사우월>에 작곡하며 아호로 표기하였습니다.
박목월 선생은 손대업선생이 작곡한 동요곡<얼룩송아지>에 그 원동시를 본명
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최영섭선생은 태진아가 부른 가요 "가버린 사랑"을 작곡
하면서 예명으로 적어서 당시의 기분을 캄플라쥬한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예술가들의 아호를 살펴보는 중에
우리 선인 예술가들의 아호에 농사農자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가정가족을 칭찬하며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어른들 말의 뜻을 좀 알듯
합니다. 오랫동안 정착 농경생활을 해온 농자천하지대본으로 삼고 살아 온 생활
과 전통이 베어들어 유전자처럼 고착된 겨레의 숨길 수 없는 정서일 것입니다.
서농(書農) 김정희 ㅡ 추사외의 아호로 농사 짓듯이 글을 쓰서 먹고 사는 사람
단농(丹農) 이건창 ㅡ 울긋 불긋 丹靑으로 그림을 그려서 생활하는 사람
철농(鐵農) 이기우 ㅡ 쇠칼로 조각 또는 전각하여 생활하는 사람이란 뜻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아 溫古之新하게 현대의 작곡가중에도 이러한
아호법을 구사한면  정말 고색창연(古色蒼然)하면서도 현대적인 신선미
(新鮮味)를 풍길 것입니다.

호를 자신의 운명처럼 살고 간 영-정조때의 화가가 있습니다.
붓으로 그려서 먹고 산다는 호생관(毫生館)으로 호를 쓴 가난한 화가
최북(崔北)은 北을 쪼개고 파자하여 스스로를 칠칠(七七)이로 불렀습니다.
서양에서 자만과 광기로 스스로 귀를 자른 고호는 알아도
우리나라에서 자존심과 광기로 한쪽 눈을 멀게 한 천재 화가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는 이땅의 산수와 메추리 그리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금강산에
갔다가 구룡연을 만나자 명인은 명산대천에서 죽어야 한다면서 물속으로
뛰어든 목숨을 동행이 구했으나 생의 마지막 날은 단 한 폭 남은 그림을 팔
아 술을 마시고 취해 눈 오는 겨울 날 월척으로 쌓인 성밑에서 눈에 묻혀 동
사하였다는 화가의 생애가 안타깝고 서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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