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우리의 길

鄭宇東 0 1,370 2013.10.01 11:30
나에게는 내 나름대로의 목적과 길이 있습니다.
따라서 남에게도 각기 제 나름대로의 목표와 길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싯다르타 붓다가 태어나서 바로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선언한 것은
우주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각개의 독자성을 선포한 것이기도 합니다.

'유아독존'의 '나'는 석가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있
는 모든 개개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합니다. (이 말은 오늘날에 와서는 의미가 와전
되어 "천하에 자기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거나 또는 그런 아집
(我執)을 가진 사람을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또 성경에서 예수
도 사람이 천하를 다 얻는대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것
처럼 온 천하보다 자신의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나의 언어습관중에는 독립 자존 자유의 성향이 강하여
"나"를 쓰는 경향이 현저합니다. 어떤 책에 "나"를 사용하는 빈도수에
따라 히틀러, 무쏘리니, 스탈린의 순으로 전제성과 독재성을 비교한
글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오만하고 독재성을 띄고 있는가를 얼핏
생각해 보았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쭈욱 어린이에 대해서도 반말
을 하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아온 것으로 보아 나의 오만의 소치는 결
코 아닌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나 스스로 나를 하대할 이유가 없다
고 봅니다. 그렇다고 스승이나 선배에게까지 막대하는 무례를 범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개인은 큰 기계의 일부분인 톱니의 하나에 지나
지 않습니다. 이로 인하여 공장전체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고 공장의 가
동은 이어집니다. 이렇듯 유기체적 지구가이야설은 개인과 전체존재를
중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속품이기 때문에 어떤 개체의 흠결로
전 우주의 운행이 정지되거나 결딴나지는 않습니다. 이 말끝에 나는 내
존재의 미약한 무력감에 많이 서운해 하고 풀이 많이 죽습니다.

나나 남이나 우리 인간이 살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최고선의
실현에 있습니다. 이때 최고선의 내용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덕과
행복의 일치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최고는 최상(最上)을
의미할 수도 있고, 완벽(完璧)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최고선이 되기
위한  첫단계는 최상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로 덕을 성취하는 것이
최상선입니다. 덕을 성취하는 것이 일단 도덕의 목표이고 덕을 성취하
게 되면 최상선에 도달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최고선에 도달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덕에 의해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사람에게 행복
까지 따라 올 때 그야말로 제대로 된 완벽한 선이 실현되어 최고선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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