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3대도로

鄭宇東 0 1,467 2013.09.23 15:25
고대의 3대도로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7세기 몽고의 돌궐 장수 돈유 쿠크가 유언으로 남긴 말이라 합니다.
성도의 폐쇄성-정체성을, 도로의 개방성-진취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4통 8달하는 로마의 가도가 로마문화의 평화(Pax Romana)을 불러오고,
일리움이나 트로이 성은 자취도 찾을 길 없이 사라져 버렸고, 중국이 만
리장성을 쌓아 지키려던 나라를 그로 인해 빼앗긴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의 길 비단길(Silk Road)과 로마의 가도(Via Publicae)
와 茶馬古道(Tea-Horse Route)의 화평성에 대해서 알아 보고 싶습니다.

(1) 우리에게 친근히 잘 알려진 비단길(SilkRoad)은
내륙(內陸) 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 동서통상로(東西通商路)입니다.
비단길(Silk Road)이라고 일컫는 실크로드는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
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하는데 서방으로부터도 보석·
옥·직물 등의 여러 가지 산물의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의 총칭으로 불교·이슬람교 등도 이 길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전
해졌습니다. 중국 중원(中原) 지방에서 시작하여 허시후이랑(河西回廊)
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Taklamakan Desert)의 남북 가장자리를 따
라 파미르(Pamir)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에 이르
는 총길이 6,400㎞에 달하는 길입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독일인 지리
학 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2) 茶馬古道(Tea-Horse Route)
한(漢) 무제 때 동서교역로로 이용되던 실크로드(Silk Road)보다 200여년
앞서 형성된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입니다.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
상에 위치하여 중국 서남부 윈난성(雲南省) - 쓰촨성(四川省)에서 티베트
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5,000여km에 달하는 장대한 거리의 '중국의 차
(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역하던 높고 험준한 옛길'이라는 의미로 붙여
졌습니다. 한나라 이전에 형성되어 당ㆍ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된 문명ㆍ문화ㆍ경제ㆍ육상 교역로입니다.
이 길을 따라 말에 물건을 싣고 교역하던 상인조직을 마방(馬幇)이라고 하
는데, 마치 사막에서 낙타를 이용한 隊商(캐러번)과 같은 조직형태입니다.
교역물품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다양했습니다.
근대 들어 차마고도를 따라 도로가 많이 건설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馬幇
(마바리떼)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3) 로마의 가도(Via Publicae)
세상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말이 있습니다.
마치 사방에서 조공을 바치러 중심으로 모여드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고대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로망(道路網)은 상하수도와 함께 고대 로마 토
목기술의 최대유산으로 꼽힙니다. 식민지를 포함한 전 영토에 걸쳐 건설
된 로마 가도는 군대와 물자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여 로마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로마 가도의 특징 중 하나는 그 구조의 우수성입니다.
당시에 현대의 도로시공법에 비슷한 도로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노폭
(路幅)은 보통 5∼10m, 산악지대인 경우는 2∼2.5m 정도인데, 직선을 이
룬 길 양쪽에 배수구가 설치되기도 하였습니다.

간선도로는 건설 지휘자의 이름을 따서 도로명이 붙여졌으며,
주된 것으로 로마에서 카푸아에 이르는 아피아 가도를 비롯하여 권역의
사방으로 도로를 건설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BC 312년에 건설된 아피아
가도는 세계 최초의 포장도로였으며, 가장 잘 정비된 로마 가도로서 유명
합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는 동서양에 걸쳐 수많은 도로망을 건설하여 제
국을 건설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순기능을 하였으나 국력이 쇠진하
여진 후에는 그 길로 침략을 당하는 수모(역기능)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 현대에 들어와서 자동차전용 고속도로가 건설된 것은
흔히 아돌프 히틀러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1932년 독일
에서 본과 쾰른 사이를 왕래하는 라이히스 아우토반(Reichs Autobahn)이
건설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선행 정권의 건설계획을 실천한데 지나지
않지만 히틀러는 교모한 선전술로 이 모든 것을 자기의 업적으로 선전했
습니다. 이 아우토반은 도로폭이 20m, 중앙분리대의 폭이 5m로 녹색지
대이었고, 권장속도는 130km/hr, 도시 인근지역이나 위험지대에서는
100km/hr 로 속도가 제한되었습니다.

* 길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의도여하에 따라 평화의 길과 통상교류의 길이 되기도
하고 침략의 길과 정복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역사에서 깊이 배워, 욕심을 줄이고, 자신을 존중하듯 남을 배려하는
것이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이루는 첩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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