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계의 큰 인물들

鄭宇東 0 3,036 2013.04.14 10:28
명리계의 큰 인물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남정네들의 사랑방에서는 정감록(鄭鑑錄)이었고
여인네들의 침모방에서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남여 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앞날의 길흉을 알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또 격려해 준 명카운셀러에는 누가 있을까요?

우선 가까운 현대에 들어와서 명리계의 빅스리는

* 自疆 이석영(李錫暎, 1920~1983)
자강은 평북 삭주에서 태어나 한학과 역학에 조예가 깊었던 조부 이양보
의 훈도로 명리학에 입문하였습니다. 그의 아호 자강은 주역의 自疆不息
에서 따온 것으로 할아버지 이翁의 영향을 똑똑히 느낄 수 있습니다.
48년에 월남하여 생계를 위하여 사주를 감정하는 한편 필생의 역저
四柱捷徑 전6권을 저술하여 우리 명리학을 중국명리학의 울타리에서 벗
어나는 전환점을 열게한 명리학의 이론서로서 사계에서는 이 책을 명리학
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 陶溪 박재완(朴在琓, 1903~1992)
도계는 대구에서 태어나 어릴때에는 곽면우 문하에서 유학을 수학하다
26세에 금강산을 비롯한 명산대찰을 주유하며 수도하다가 대전에서 살았
습니다. 저서로 "명리요강", "명리사전"이 있고 선생의 사후에 제자들이
간행한 "명리실관"이 있는데 이는 선생이 사람들을 만나 상담한 기록지
(즉 看命紙)를 모아 제자 로석 유충엽이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입니다.
도계선생의 사계에서의 특징의 하나는 동일한 사주퍌자를 가진 사람들의 
다른 운명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로 幻魂動覺을 거론한 점입니다.

환幻 ㅡㅡㅡ 육도(六途)의 어느 계(界)에 났는가
혼魂 ㅡㅡㅡ 善 惡간 어떤 조상을 가졌는가
동動 ㅡㅡㅡ 태평성대와 전시혼란의 어느 시점에 났는가
각覺 ㅡㅡㅡ 본인의 깨달음의 정도는 어디 쯤인가
 
* 霽山 박재현(朴宰顯, 1935~2000)
제산은 경남 함양 서상마을 乙亥明堂에서 태어나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하
였습니다. 주로 지리산과 가야산 합천 해인사와 계룡산에서 스승과 많은
도인을 만나 수학하고 실전실무에 뛰어난 예언력으로 한때 명리계를 주름
잡았으나, 그는 신출귀몰, 좌충우돌하는 천재형의 재사로,
서양귀신의 유명한 점괘인 "너 자신을 알아라"를 푸는데 실패하여 장수하
지 못하고 또 만년을 빚더미에 깔려 힘겹게 살았습니다. 해인사에 머문 인
연과 소문으로 삼성 이병철 회장과 교류하며 복채로 고가의 건물 한채을
옹그라지게 받으며 삼성의 인사문제에 자문역까지 맡았다 하였습니다.
 
제산의 주변에 있던 스승에는 조선에서 최초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그 법
력으로 동천(洞天)글씨을 주먹으로 새긴 開雲祖師와 도반으로는 해인사의
윤양성 스님을 거쳐서 혜강스님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있습니다.
또 한 갈래는 20대에 지리산에서 만난 靑虛 尹一峯 仙師로 제산이 계룡산인
으로 발행인이 된 仙佛家眞修語錄의 저자인데 제산이 평생을 따르던 스승이
었습니다. 제산이 비존하던 "性命窺知"는 性命雙修를 전수하는 秘冊입니다.
제산이 함양 백운사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耳根圓通을 수련한 것은 소리에
는 힘이 있고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니까 도교에서 옥추경(玉樞經)등 주문을
외우는 효력과 같은 원리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관상의 대가
* 백운학(白雲鶴)을 추가하여 사주-명리계의 4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북 청도 출신으로 명리학 공부가 끝나자 일단 한양부터 먼저 올라와
운현방(궁)으로 가서 13살의 까까머리 명복도령에게 임금에게 알현하는 격
식으로 미래의 왕에게 큰 절을 올리고 대원군에게 공어음일수도 있는 3만량
의 복채와 벼슬를 요구하여, 3년후 그 도령이 고종임금이 되자 복채 3만량과
청도현감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의산 김경운과 성균관대 이열모교수와 안응모 내무장관 사이
금강산파 당취(黨聚)들과 난을 일으킨 운부(雲浮)도사
도선국사와 무학대사와 탄허(呑虛)스님들도 명리에 밝았고
중국의 주역을 마스터한 후 우리 동방의 정역(正易)을 개창한 一夫 金恒
土亭 이지함(李芝函)선생 등이 우리 명리학사에서의 고봉준령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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