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킅라우제비츠

鄭宇東 0 1,407 2013.03.23 11:18
손자와 킅라우제비츠
이들은 이른바 동서양 병법가의 원조입니다.
어쩌다 시청한 中華電視의 大秦帝國을 보면서 알아본 사실입니다.
손자는 이름이 孫武이고 춘추시대 오나라의 합려를 섬기던 장수로 손자병법
을 저술하였고, 오자는 이름이 오자서로 전국시대 원래 위나라의 장수로 뒤
에 다시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이름을 떨친 오기의 병법에 관한 저술입니다.

사기(史記)》에는 손자 13편이라 하였으나 그 편목은 알 수 없으며, 한서
(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오손자병법 82편이라 하여 <병서략(兵書略)
> 첫머리에 기재하고 주(注)에는 그림 9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전
해지는 것은 13편으로 이것은 당초의 것이 아니고, 삼국시대 위(魏)의 조조
(曹操)가 82편 중에서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정수(精粹)만을 추려 13편 2책
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13편의 편명은 계(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허실
(虛實)·군쟁(軍爭)·구변(九變)·행군(行軍)·지형(地形)·구지(九地)·화공(火攻)·
용간(用間)으로 되어 있으며, “병(兵)은 국가의 대사(大事), 사생(死生)의 땅,
존망(存亡)의 길”이라는 입장에서 국책(國策)의 결정, 장군의 선임을 비롯하
여 작전·전투 전반에 걸쳐 격조 높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요점을 설명하고 있
습니다. 그 뜻하는 바는 항상 주동적 위치를 점하여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
을 주로 하고, 또 사상적인 뒷받침도 설하고 있어 병서로서는 모순을 느낄 만
큼 비호전적(非好戰的)인 것이 특징입니다.

예로부터 작전의 성전(聖典)으로서 많은 무장들에게 존중되었을 뿐만 아니
라, 국가경영의 요지와 인사의 성패 등에도 비범한 견해를 보이고 있어 인생
문제 전반에 적용되는 지혜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예로부터
많은 무신들이 이를 지침으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역관초시(譯官初試)의
교재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하여, “남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명구도 담고
있으며, 전쟁하여 이기는 것보다 전쟁하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
습니다. <손자병법>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인용 번역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병법서를 배출해 왔습니
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책을 손꼽자면 중국 춘추전국시
대 손무가 저술한 '孫子兵法'과 19세기 프로이센의 클라우비츠가 저술한
'戰爭論', 마지막으로 일본의 '오륜서(五輪書)'를 들 수 있습니다.

오륜서는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년 ~ 1645년)가
1643년에 쓴 책이며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법 정신, 승리를 얻기까지의 철두
철미한 전략, 아내도 두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수련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륜서>는 사무라이 정신과 함께 일본의 봉건 도덕을 버티게 하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오륜서>를 이제 와서 전략 경영서로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적'을 '경쟁자', 혹은 '목표'로, '적을 벤다'는 것을 '경쟁
에서 살아 남는다'로 바꿔 읽어도 그 의미가 구체적인 한편, 합리적이기 때
문입니다. 앞의 두 책과 약간 다르기 때문에 언급을 피하고 전쟁에 대한 전
략, 전술의 운용, 군대의 조직, 형태 등의 하나의 완벽한 체계를 이룬
손자병법과 전쟁론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여 봅니다.


카를 필리프 고틀리프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 7. 1 ~ 1831. 11. 16)는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 및 군사학자이며 평론가
였습니다. 예나 전쟁과 12년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하고, 1831년 사관 학교장ㆍ
참모장을 역임하였고 프로이센 육군의 건설 공로자였습니다. 그의 사후에 간
행된 <전쟁론 Vom Kriege>은 이 시대의 전쟁경험에 기초를 둔 전면전의 개
념을 도입한 고전적인 전쟁철학으로 불후(不朽)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 다’고 한 유
명한 말은 군사지도부에 대한 정치지도부의 우월성을 설파한 것이며, N.레닌
등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군사전략 이론가인 두 사람은, 전쟁론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손자는 동양인 특유의,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품위없는 말책으로 보았
기에, 되도록이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향을 선택 하려 하였지만, 그의
짧고 함축적인 병법서가, 무조건 비폭력적인 승전방법 만을, 말한 것은
아니고, 실제 무력을 전개 할 때의 구체적인 방법도 기술해 놓았고, 클라
우제비츠 보다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에 반해, 클라
우제비츠는 구체적으로,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전제로,
전략적인 전쟁론을 기술해 놓았습니다.

이 두 군사전략가들은 같은 내용을 다른식으로, 표현한 것이 상당히 많습니
다. 그리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난해한 책으로 정평이 나있을 정도로
쉽게 이해 하기 힘듭니다. 전쟁의 준비단계에서, 전쟁을 통해, 정치적인 의
지를 실현하려는 국가가 해야하는 필수 조치를 말 할 때, 그 두 전략가는 공
통적으로 이점을 말 한바 있습니다. 무력사용을 하기 전에, 공략 대상인, 적
국의 동맹의 와해, 내지는 적국의 동맹세력 중에, 강한 세력을 선제타격하여,
전쟁 수행능력을 제거하는 길이, 승리의 전제조건 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주의자라고 하여도 전쟁의 마당에서까지 고집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동양의 온정주의 전쟁론이나 도덕주의 전쟁론
은 존립할 여지가 없습니다. “병(兵)은 국가의 대사(大事), 사생(死生)의 땅,
존망(存亡)의 길”이라는 입장에서 국책(國策)의 결정, 장군의 선임을 비롯하
여 작전·전투 전반에 걸쳐 격조 높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요점을 설명하고 있
습니다. 오히려 기만과 사술을 써서라도 살아남고 승리하는 길이 최고 최선
의 방책입니다. 역사서에 宋나라 襄公이 도강중인 적을 공격하지 않고, 유리
한 전략적 위치에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은 허울 좋은 선과 덕의 결과는 자
멸의 길일 뿐입니다. 고사성어 宋襄之仁의 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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