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윤심덕이여!

鄭宇東 0 1,524 2013.02.03 19:57
아뿔싸! 윤심덕이여!
尹心悳은(1897∼1926)은 호는 수선(水仙)이며 평양 출생입니다.
토월회 배우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프라노 성악가입니다.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김우진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때문에
현해탄의 파도에 몸을 던져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윤심덕은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
업하였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
로 일본 우에노(上野)에 있는 도쿄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921년 동우회(同友會)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金祐鎭)
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습니다. 1922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조교생활 1년을
마친 뒤, 1923년 6월 귀국하자마자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
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제대로 성
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풍
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 또한 대중을 휘어잡았습니다.

그러나 정통음악을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사생활과
함께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세미클래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형 오페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
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 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
무 낙후했고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 견디게 하였습니다.
한때 극단 토월회 주역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나 연기력이 없어서 실패
하였습니다.

특히 아내와 딸이 딸린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습니다.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
드회사에서 음반취입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녀의 여동생 윤성덕
이 미국유학길에 가는 도중에 윤심덕과 동행했습니다. 레코드 취입을 다 마
친 8월 1일 윤심덕은 음반사 사장에게 특별히 한 곡을 더 녹음하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그 곡은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것으로 한국어 가사를 윤심덕이 직접 썼습니다. 반주는 동생 윤성덕이 하였
습니다. 노래의 제목은 <사의 찬미>인데 가사는 이러합니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혔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삶의 허무를 말하는 듯한 가사에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윤심덕의 노래를
듣고 녹음실의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레코드 취입을 마친 그녀
는 전보를 받고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귀국길에 현해탄에서 정사하였
습니다. 그녀가 남긴 음반은 이러한 사건과 연루되어 당시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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