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후제

鄭宇東 0 1,506 2012.11.03 14:10
어제-오늘-후제
우리나라의 유명한 한 학자가
우리 말에는 현재시제를 대표하는 오늘과 과거시제를 대표하는 어제가 있는
데 유독 미래시제를 대표하는 내일(來日)이라는 한자말밖에 없는 것을 지적
하여 우리 민족에게 미래지향적 성향이 부족하다고 진단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그 흔한 조어 사례와 냄비 끓듯하는 우리네 성벽으로 당장 내일
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만들면 될 것을 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영어에는 날짜를 나타내는 말에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이란 세 단어
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과거에 대해서는 '그끄제-그제-어제'가
있어 사흘까지 기억하고,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내일-모레-글피-그글피'가 있
어 나흘까지 미리 생각하는 멀고도 깊은 사려가 우리말에는 스며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들 중 '내일(來日)'이 한자어란 것으로 우리를 '비전이 없는
민족'이란 서글픈 진단을 내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고
'모레'가 있는데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섯불고 성급한 조어일랑 잠시 멈추어두고, 옛 문헌을 공부하다 보면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손목(孫穆)은 300여개의 고려말을 기록한 '계림유사
(鷄林類事)'란 책에서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을 '明日曰轄載'로 적었습니다.
오늘의 음이 '할재'인 이 말을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여 '할제, 올제, 하
제, 깔제, 후제' 들로 해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올제'와 '후제'가 '내
일'의 우리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은 곧 '오늘의 뒷날' 입니다. 그
러므로 '뒷날의 어느 때'란 뜻을 가진 경상도(사투리)말 '후제' 속에는 '오늘
의 다음날'이란 '내일'의 뜻도 들어 있다 하겠습니다.

[어제-오늘-후제]에 유감
우리말에는 때를 가리키는 접미어로 "때", "제", "적"이 있습니다.
이들 접미사로 과거 현재 미래 3시제의 말을 만들어 보면
처음에 <접때, 입때, 올때>로 만들어지는 때계열 조합의 말과
그리고 <어제, 이제, 올제>로 이루어지는 제계열 조합의 말과
또 <간적, 이적, 올적>으로 구성되는 적계열 조합의 말을 상정할수 있습니다.
후제에는 현재의 지방 사투리로 쓰이는 사례가 있으나
아무래도 뒤後의 한자어 어감이 어리어 있는 흠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어느 분의 조리정연한 제의에 따라 위 3시제의 단어를
잠정적으로 <어제, 오늘, 담날>로 확정시켜 널리 쓰도록 권장합니다.

이왕 이 책을 언급한 김에 그 본보기 몇 가지를 더 적어 참고로 합니다.
천왈한날(天曰漢捺)’로부터 시작하여 ‘천왈이저(淺曰昵低)’로 끝나는 가운데
'前日曰記載, 昨日曰訖載, 今日曰烏捺, 明日曰轄載, 後日曰母魯'라 하였고
또 물지개(水戶)가 어원인 무지개를 <== 陸橋 (뭍에서 하늘로 가는 다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임), 나무를 <== 南記라고 표기한 등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수록된 어휘를 분류하여 보면 천문·지리·시령(時令)·화목(花木)·조수(鳥獸)·
충어(蟲魚)·기용(器用)·인물·인사(人事)·신체·의복·안색(顔色)·진보(珍寶)·
음식· 문사(文史)·수목(數目)·방우(方隅), 기타 등 18개 항목으로 나누어지
며 총 어휘 수는 361개에 이릅니다.

손목이 고려어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차음표기법상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발왈마제핵시(髮曰麻帝核試)’·‘면미왈날시조훈(面美曰捺翅朝勳)’·’세수왈
손시사(洗手曰遜時蛇)’ 등과 같이 표의성이 없는 직음법대음(直音法對音)
의 표기법을 쓰면서도 ‘산왈취립(傘曰聚笠)’·‘소왈비음필(梳曰苾音必)’·‘염
왈박음발(簾曰箔音發)’ 등과 같은 음의쌍관표기법(音義雙關表記法)을 쓴
점입니다.

말이 난 김에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우리 고유 수사를 한번 챙겨 봅니다.
一(하나), 十(열), 百(온), 千(즈믄), 萬(골), 億(잘), 兆(울) 등이고
* 그 소리는 골백번(만-백번 아주 많이)도 더 들었다.
* 그는 서양말을 곧 잘(골 잘이 변한 말로 썩 잘)한다.
등의 예문처럼 지금도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쓰여지고 있는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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