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화(音畵 : Tonmalerei)

鄭宇東 0 1,640 2012.07.25 06:09
음화(音畵 : Tonmalerei)

여러 분야의 예술이 그 기원에서 그러하듯이
음악예술도 그 출발은 자연을 모방하여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미술이 그 형태를 재현하듯이 음악은 그 소리를 의성화
하여 재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술사조는 자연주의 내지 사실주의가
문화사에 오랜 기간에 걸쳐 높은 비중으로 평가되었고 그후 중세의 신본
의 예술관을 거쳐 근세의 인본주의 심미관으로 변천하여 왔지만 자연을
모방하는 사실주의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는 예술지상주의의 사조
가 오늘날에도 그 태생적 흔적으로 남아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프랑스의 작곡가 메시앙은 그의 음악에서 새 소리를 즐겨 표현했습니다.
영원히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우는 모짜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짜르트
는 장난감교향곡에서 새들과 동물들의 소리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
습니다. 우리의 음악영웅 베토벤도 그의 교향곡 6번 전원에서 새들과 자연
현상을 소리로 티없이 맑고 경쾌하게 또는 심판의 날처럼 무섭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드리갈리즘 등 음화(音畵)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악기인 목소리로 그림처럼 묘사해 내는 표제음악을 일컫습니다.

또한 우리 판소리 음악에서도 어떤 상황을 박진감 있게 묘사하기 위해서
는 사설이 담고 있는 내용에 근접하도록 흉내내기를 잘 해야 했습니다.
특히 새소리며 바람소리, 종소리 등 실제의 음향이 등장해야 할 곳에서
이들 소리를 직설적으로 실(제)음처럼 묘사하는 경우 그 효과는 실로 대
단하였습니다. 鷄鳴狗盜의 중국고사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나라에서도 예
악인중에 함북간(咸北間)은 행동짓거리를 흉내내는 데에 뛰어났고, 대모
지(大毛知)는 새소리들 특히 닭우는 소리를 잘 내어 근처의 닭들이 모여
들게 하였으며, 불만(佛萬)은 개 짖는 소리를 흉내내는데 아주 能하였다
합니다.


우리 음악에도 구음(口音)이라는 입타령이 있습니다.
구음은 목소리로 악기의 선율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을 가리키며, 흔히
‘나니노’ 하고 입타령으로 부릅니다. 입타령은 악기의 선율을 목소리로
흉내내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며, 악기의 선율을 입타령으로 적는
것을 육보(肉譜)라 합니다. 육보는 고려 때부터 있었는데, 당시에는
‘唐(당)’ㆍ‘同(동)’ㆍ‘懲(징)’과 같이 한문으로 적었을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육보는 조선 선조 때 안상(安瑺)이 펴낸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비롯
하여 여러 악보에 두루 보이며, 민간에서는 지금도 육보를 쓰고 있습니다.
가야금ㆍ거문고ㆍ비파와 같은 현악기의 육보는 ‘당 동 징 덩 둥’ 등으로
현악기를 뜯는 소리와 비슷한 음으로 되어 있고, 젓대ㆍ피리와 같은 관악
기는 ‘나 노 니 너 누’와 같이 관악기소리와 비슷한 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해금의 육보는 ‘가 기 고 게’처럼 해금의 소리와 비슷한 음으로 되어
있고, 장구나 북의 육보는 ‘덩기덕 궁’ 하고 북소리와 비슷한 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노래에서 입타령은 이런 육보를 따서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반드시 육보
에서 보이는 음만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음악에
입타령이 많이 쓰이는 예는, 「정읍사」의 후렴에 ‘아으 다롱디리’라 한다
든지 「청산별곡」에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라고 하는 것과 같이
고가요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보이는
「군마대왕(軍馬大王)「별대왕(別大王)」과 같이 입타령으로만 되어 있는
가요도 있습니다.
현재 전승되는 음악에는 「길군악」과 같은 가사(歌詞), 「놀량사거리」ㆍ
「화초사거리」와 같은 입창(立唱), 「닐리리야」ㆍ「아리랑」과 같은
민요 등 여러 분야의 노래에서 입타령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시가에는 여음(餘音)이란 장치가 있는데
시가(詩歌)에서 본가사의 앞․뒤․가운데에 위치하여 의미 표현보다는
감흥과 율조에 영향을 미치는 어절이나 구절을 이르는 말입니다.
오는 위치에 따라서 앞여음[初斂]․ 가운데 여음[中斂]․ 뒷여음[後斂]으
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 행(行)이나 연(聯)이 끝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후렴은 여음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형태입니다.

여음(餘音)은
① 자연 현상에서 발생하는 소리,
② 악기나 생활도구를 다룰 때 나는 소리,
③ 감동적 심리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 등을 모방하는 데에서 발생했다고
보입니다. 그 주요한 기능은 음성상징적 효과나 의미로써 시가의 분위기를
돋우고 가창(歌唱)을 더욱 흥겹게 하는 데 있습니다.

후렴에는 대체로 ‘ㅇ[ŋ]’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율동감을 주기 위해서입
니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청산별곡>)나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에는 ‘ㅇ[ŋ]’의 율동감 외에 ‘ㄹ’과 양성 모음의 반복으로 인한
유려하고 밝은 느낌이 있습니다. “쾌지나 칭칭나네”에는 ‘ㅇ[ŋ]’의 율동감외
에 ‘ㅋ’이나 ‘ㅊ'으로 인한 힘차고 거센 느낌이 있습니다. “너호너호 너호넘
차너호”(<상여노래>) 에는 ‘ㄴ’과 ‘ㅎ’으로 인한 힘없고 한탄스러운 느낌과,
음성 모음으로 인한 어두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모두 시가의 내용
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최초의 민요는 일정한 음성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는, 후렴만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다가 선창자(先唱者)
와 후창자(後唱者)가 나누어졌으며 선창자가 노래하는, 의미를 가진 변화
있는 말이 후렴 사이에 들어가는 형태가 생겼습니다. 이에 따라 선창자의
노래는 점차 풍부한 내용을 지니게 되었으며 후렴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후대로 올수록 의미는 없고 음성상징적 효과만 지닌
후렴보다는 의미 있는 말로 된 후렴이 점차 많아지는 것도 이와 관련되며
시가가 노래에서 멀어지고 문학으로 발전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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