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有爲의 大同社會

鄭宇東 0 1,321 2012.07.05 16:17
강유위의 대동사회
강유위(康有爲,1856~1927)는 중국 청말의 학자, 정치가로서. 광동성 남해 출
생으로, 문인으로부터 남해(南海)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처음에 동향인 주차기
(朱次琦)를 따라서 송학을 주로 하는 한송겸채학(漢宋兼採學)을 공부하고, 후
에 양명학이나 불교에 기울었으며, 또한 당시 한역된 서구의 서적을 통해서 서
양근대의 정치학술도 연구하였습니다. 청나라 말기 봉건체제가 동요하고 근대
적 사조가 나타났을 때 <대동서(大同書)>를 저술하여 유토피아(Utopia)를 꿈
꾸었습니다. 그는 남녀의 평등, 가족제도의 폐지, 인종차별의 소멸, 계급의 철
폐, 농공상업의 공영, 세계정부에 의한 통일된 전쟁 없는 평등한 극락세계를 그
렸습니다. 이것은 일반 중국인들이 이상적인 사회로 믿어 오던 것을 서양의 민족
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 불교의 영향 등을 참작하여 체계화한 중국인들의 민족
적 이상사회를 구상한 사상입니다.

<대동>이라는 것은 유가 경전의 하나인 <예기> 예운편에 보이는 말입니다.
공자는 먼 고대에는 <대도(大道, 훌륭한 도덕)>가 행하여져서 천하는 공유(公
有)의 것이었다고 하며, 어진 사람과 능력있는 자가 버려지지 않으며, 가족주의
에 얽매이지 않고, 노인은 자기의 생을 편히 마치고, 젊은이는 모두 일할 수 있
으며, 노약자 ·병자 ·불쌍한 자들이 부양되며, 길에 재물이 떨어져도 줍지 않는
(道不拾遺) 공평하며 평화로운 공산적 이상세계가 바로 대동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오늘날은 <대도>가 이미 모습을 감추어서 천하는 일가의
사유가 되었으며, 사리사욕이 횡행하는 혼란한 사회가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습
니다. 이 대동사상과 유사한 토지ㆍ가옥의 균분공유의 사상은 역대의 종교적
농민 반란 중에서 가끔 제기되며, 19세기 중엽의 태평천국운동에서 홍수전이
<원도성세훈(原道醒世訓)> 중에서 이상으로 하는 신세계를 <예운편>에 의
거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전통의 대동사상을 정면에서 거론해서 장대하며 상세한 사회이론으
로 구성한 것은 청대 말기(19세기 말)의 강유위가 최초입니다. 그는 대동ㆍ소강
의 관계를 역전시켜서, 사회는 소강에서 대동으로 향한다고 생각, 이에 후한시대
의 공양학자 하휴(何休)의 <장삼세(張三世)>라는 역사관 및 당시 서구에서 전
해진 진화론을 조합시켜서 거란세(據亂世)→승평세(升平世, 소강)→태평세(대
동)의 순서로 사회가 진화-발전해간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는 중국의 현상
을 무량수의 고뇌에 충만한 거란세에 해당시키고, 먼 미래에 일체의 고뇌에서
해방되어서 자유롭고 공평한 대동세계를 상정하고, 그를 위해서 민중을 구제할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하였습니다. 그의 주저서 <대동서>에는 이와 같은 세계
개혁의 구상과 도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대동사상은 사숙의 제자 담사동
(譚嗣同)의 <인학(仁學)>으로 계승되는데, 한편 그의 반대파인 손문의 삼민주
의나 채원배(蔡元培)의 사회사상에도 대동사상이 보이며, 모택동(毛澤東) 사상
에도 약간이지만 그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대동사상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쳐
조선조 선조때 정여립은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며, 만인
의 이로움을 이끌어 낼 자를 임금으로 뽑아야 하며, 만백성은 평등하다"라는
대동사상을 펼치고 무술훈련 단체인 대동계를 조직하여 왜구를 토벌하는 공
도 세웠지만 훗날 이것이 기축옥사로 비화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며
또 효종때에는 조익과 김육 등에 의하여 대동(大同)사회를 지향’하여 발의된
정전제(井田制)의 한 형태로서 대동법으로 결실 전국에 확대실시되었으며
이익(李瀷)이 대동풍속을 이루려면 각자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하였고,
심정진(沈定鎭)은 <성본연대동설(性本然大同說)>에서 인간의 본성은 누구
든지 다 갖고 있는 보편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최한기(崔漢綺)는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인 자각이야말로 대동사회 구현의
필수요건이라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3.1운동의 실패후 독립운동가들이 종교나 직업을 초월하여 민
족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만든 단체의 이름이 대동단이었으며
근대산업사회에서는 학대받는 여공들의 대동제와 대동굿놀이를 통한 온건한
저항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리하여 우리의 대동운동은 반정부의 색깔을
상당부분 띄게 되었지만, 역사상으로는 우리민족이 잦은 외세 침입에 맞서서
대동단결하여 우리의 기상을 연면하게 이어 온것도 이 대동이란 이상사회에의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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