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함께 할 수 있다면

鄭宇東 0 1,584 2012.06.17 03:20
사흘만 함께 할 수 있다면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하는 소망의 수필을 썼습니다. 
가슴 뭉클해 지는 이 말은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말문이 막혀버려 삼중고
(三重苦)를 겪는 헬렌이 50대에 쓴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로 미국 월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습니다.

이러한 헬렌의 간절한 소망은
여러 감각중의 최고기능인 청각을 살려서 눈을 사흘만이라도 뜨게 되면
첫쨋 날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었고
둘쨋 날은 과거와 현재를 알고싶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서 자연과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고 극장에서 연극 영화를 보고 싶고
세쨋 날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활동상을 보기 위하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과 11번 번화가에서 피어 오르는 생명감을 만끽하고 싶다 하였습니다.

황진이는 그의 정인 이사종과 계약결혼 3년동안을 재미있게 살았지만
나에게는 최대 한도 사흘만이라도 함께 하고픈
내 마음 그 깊은 곳에서 숨쉬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당에 오르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를 찾아 지옥의 시련을 견디어 내며
J.J. 룻소가 지은 교육론에 등장하는 에밀에게는 소피가 그 반려이고
마이스터의 수련을 겪는 주인공 빌헤름은 연인 마리아네와 짝하였고
젊을때 연인으로 헤어졌다가 만년에 다시 만난 데이비드 커퍼필드와
  아그니스 윅크필드는 노년이 단란 행복하였고
현숙한 연상의 메리 앤은 디즈레일리를 대영제국 명재상으로 만들였고
루 살로메는 니체와 대등하게 토론하고, 릴케의 시적 천재를 북돋우었으며
남장 여인 조르쥬 상드는 쇼팽의 젊음과 유약에 모성애적 사랑을 쏟았고
메크부인은 차이콥스키를 대면도 않고 후원하다 종내에는 원망속에 헤어지고
독신주의자 조지 기싱을 위하여 그 집의 가정부는 소리도 내지 않고 설거지하
  는 조심성의 극치를 보여 주었고
林語堂은 청대의 화가 심복(沈復)을 마음 편하도록 보살피고, 연향차를 달이던
  운(陣芸)이 아씨를 중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칭찬하였으며
서양보다 먼저 시작한 황진이와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3년의 호시절을 누리게
  한것 등등을 알고 나는 이들을 많이 부러워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인생만사 메치나 둘러치나 그게 그거라고,
반면 선생도 있고 반면 연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에게 악처 크산티페의 바가지는 철학의 소재감이었고
의심 많은 도마는 부활한 예수의 못자국을 보고서야 믿음의 사도가 되었으며
하이든에게는 음악을 전혀 이해할려고 하지 않고 작곡한 악보까지 태우는
  음악사상 최대의 악처 마리아 켈러가 있었기에 그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고
모차르트의 악처 콘스탄체는 낭비벽이 심하여 그 빚을 갚기에 죽도록 고생을
  하였으나 제눈의 안경이라고 천생배필이 되었었고
칼라일과 사귀던 여인은 미인만 좋아하는 그의 별난 성격에 따끔한 충고를
  남기고 떠나 그를 개심시켜 고매한 인격자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마지막 토마스 칼라일과 그 여자 친구와의 이야기가
미국의 여류 단편소설가 키쇼르(Sulamith Ish-Kishor, 1896~1977)의 명단편
사랑의 약속(Appointment with love)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용인 즉슨, 전쟁중 13개월 동안을 서신으로 사겨오던 블랜드포드 중위와
뉴욕의 묘령의 여인이 그랜드센트럴 기차역 시계앞에서 만나는 이야기인데
일명 A test of true love 라는 별칭에 잘 어울리는 재담도 담고 있습니다.

센트럴역에 내린 중위가 눈을 반쯤 찡거리고 시각을 확인하니 6시 6분전,
그가 기다리는 쪽으로 흰옷에 붉은 꽃을 단 여인이 오는데 아직 소녀티를 못
벗어난 아가씨인데다 장미가 아닌 스위트피 꽃을 단것으로 보아 기다리는 여인
이 아니었고, 이윽고 초록색깔 옷을 입은 윤곽이 뚜렸하고 금발을 날리는 미모
의 여성을 발견하고는 신표를 확인할 새도 없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여인의 "군인 아저씨 나와 같이 할래요"하는 유혹을 받고 마음이 동하고 있
을 마침 그때 앞쪽에서 붉은 장미꽃을 단 약속의 그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40대의 여인이라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그래도 병영생활중에도
격려가 되어준 정의때문에 할리스 메이넬양인 것을 물어 확인할려니 자기는
먼저 지나간 초록색옷의 여인의 부탁을 받고 장미를 달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
하고서 혹시에라도 중위가 자기에게 초대를 제의하면 저기에 있는 멋진 레스토
랑에서 초록색 옷의 미녀가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라고 부탁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진실한 사랑의 테스트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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