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좋은 음악은

鄭宇東 0 1,688 2012.06.02 06:51
至極히 좋은 音樂은

예로부터 동양의 현인들은
"지문무자 지악무성(至文無字 至樂無聲)" 이라 하였습니다. 즉
"최고의 문장(文章)은 겉으로 드러난 겉글자에 있지 않고 글속의 뜻에 있으며,
또 최고의 음악(音樂)은 소리의 지름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무음
성의 조용한 우주적 조화에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노자(老子)가 도리덕화경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도는 도라고하면 이미 진정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 설시한 것처럼
문장도, 음악도 그 말초의 겉이름으로 불리면 이미 모두가 그 본체의 순정성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선문방에서 불립문자 이심전심 (不立文字 以心傳心)의 무문자 전통을 지켜나
가 는 소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明나라의 홍자성(洪自誠)이 저술한 <채근담(菜根譚)>에서
“은자(隱者)의 풍류에 관한 일이란
모름지기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대로 즐기기 위해 있다.
따라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바둑도 승부를 관심 밖에 두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피리는 음률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풍류에 맞는 일이며,
금(琴)은 줄(絃)이 없는 것이 고상하다고 여긴다”
는 말들이 있습니다.

불경에서 말하는 마음을 울리는 심금(心琴)이 그렇고
도연명이 옆에 두고 농한 그의 무현금(無弦琴)도 그렿습니다.
"淵明不解音律
而畜無絃琴一張
每醉適 輒撫弄以寄其意。
도연명은 음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줄 없는 거문고를 하나 비껴두고는
매양 술기운이 오르면
그럴 때 마다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실어 달래곤 하였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초탈과 역설의 공허한 음악세계를 벗어나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산동성의 제나라에 이르러 실제 인간세상의 체온
이 느껴지는 舜임금의 소(韶)음악을 듣고
"盡美矣    (진미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다하였고
又盡善也  (우진선야)  또 착함의 극치를 다하였다"고 찬탄하였습니다.
공자는 또 詩經의 제일 첫머리에 있는 관저장(關雎章)의 노래를 듣고는
"樂而不淫 (낙이불음)  즐겨우면서도 음란하지 아니하고
哀而不傷  (애이불상)  슬퍼면서도 상심케 하지 아니한다"고 상찬하였습니다.
이런 음악에 대한 공자의 소회는 한마디로 균형이랄까, 절제랄까, 어느 한 곳
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덕을 중시한 흔적이 다분히 깔려 있습니다.
 
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양음악은 물론이려니와 서양음악에서도 고대에는
실용적인 음악보다도 이념적이고 이론적인 면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우주적인 음악의 조화성을 강조하고 나아가서는 우주질서의
수학적 법칙을 음악에서 찾으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중세의 대학에서는
전 교육과정 자유 7과(Libral seven arts )중 음악을 수학 기하 천문학과 더불
어 중요한 상급전문 4과목(quadrivium)으로 교육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또 일찌기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가 음악을 세가지로 분류하여
음악을 우주의 조화를 표상하는 우주음악과
육체의 균형발달을 도모하여 건전한 신체를 만들어 내는 인체음악과
실제의 음을 다루어 생활의 조화를 도모하는 실제음악으로 나눈 사실에서도
서양의 우주론적 음악관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음악은
우주의 신비를 풀어 보려는 원대한 우주론적 사유체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의 헤비메탈과 뜻없이 구시렁거리는 레게음악 등의 난장
판, 난맥상을 연출하는 오늘날의 음악판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한 "무악기 무음
성의 최고의 음악"은 미국의 전위적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 9. 5 ~
1992. 8. 12)가 19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시연한 4분 33초 동안의
무언어 무동작인 "침묵의 음악"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어쩌면 모순같이 여겨지는 역설과 모순의 진리는 세상만사에 두루
미쳐서, 내가 배운 법률의 속담(法諺:법언)에도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법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역시 보편타당성을 그 절대속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용범위에서도
결단코 그 예외를 인정하지 않나봅니다.
그러나 웃기는 것은, 술 담배 폭력은 인류의 적이기 때문에 더 마셔서 없애고,
더 피워 태워서 없애고, 더 잔혹히 싸워서 이들을 지구로부터 추방시키고 박멸
시키자는 구호가 술고래, 체인스모커, 폭력지상주의자들 사이에 농담조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도 웃기는 (현실)세상입니다.

일찌부터 우리들에게는, "모름지기
훌륭한 음악이란 쉬워야 하고(大樂必易)
훌륭한 예절이란 간결해야 한다(大禮必簡)"는 금과옥조가 있었습니다.
이를 대전제로 하여 예술을 창작하고 세상을 해석하는 세계관을 정립한 바탕
위에서 심지어는 모든 우리 삶의 제원칙을 운용하여 왔습니다.
생각하여 보면 인생의 모든 처세의 요체와 예술과 학문의 진리는 쉽고 간결한
데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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