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권당(萬卷堂) 이야기

鄭宇東 1 1,979 2011.11.17 12:13
만권당(萬卷堂) 이야기

讀萬卷書 ㅡ 만권서를 읽으며         
思萬物事 ㅡ 만백사를 생각하며     
行萬里路 ㅡ 만리길을 여행하고     
交萬人友 ㅡ 만인벗과 교류하다
중국 명대 말의 화가, 서예가인 동기창(董其昌)의 말로
문장이나 화폭에 문자향과 서권기를 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왔고 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생활방식의 단적인 한 표현이기에
외람되이 둘째 구절을 하나 더 보태어 인용하였습니다.

가정형편으로 이사를 앞두고 며칠전 그동안 내가 소장해 온 1천여권의 서책을
廣州市 경안동에 있는 漢南古典硏究所에 기증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60년 당시의 책과, 70년대 직장인이 되어 내가 번 돈으로 구입
한 책들은 4~50년이 되었고, 20년이 넘는 월급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와 
스스로 용산에서 신동아서점을 열어 1만여권을 비치하고 영업하다가, 10여년
후에 책방을 폐점하며 챙겨 온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이후로
만권당은 나의 도서실이며 서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나의 취향과 식견에 따라 비치한 문사철을 위주로 이루어진 도서목록은 
아닌게 아니라, 이때부터 고객들에게서 자기집의 서재에 들어 온것 같다는 평
을 여러차례 들었습니다. 북경 도서관의 사서였던 모택동이 그 시절에 책을 많
이 읽었듯이 나도 이 시절에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택동처럼 목마른듯
이 지식을 빨아들였습니다.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미국의 출판인, 발명가, 정치가로서 젊은 한때 서점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공부
를 하였습니다. 그때의 일화 Time is Money 란 책값을 여러차례 묻기만 하는
고객에게 그가 물을 때마다 책값을 높게 부르니 불평하는 고객에게 귀중한 시
간의 값을 깨우쳐 주려 그렇게 말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그의 13가지 덕목의 아포리즘은 세월에도 퇴색치 않고 많
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01. 절제 : 아둔해질 정도로 먹지 마라. 들뜰 정도로 마시지 마라.
02. 침묵 : 남들이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 외에는 말하지 마라.
              사소한 대화를 피하라.
03. 질서 : 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도록 해라. 용무의 각 부분들에 제시간
              을 할애해라.
04. 결심 : 해야 할 것들을 수행하려고 결심해라. 결심한 것은 반드시 수행해라.
05. 검약 : 남들이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외에 비용을 지출하지 마라.
              즉, 아무 것도 낭비하지 마라.
06. 근면 :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언제나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고 있어라.
              불필요한 모든 행동들을 발라내라.
07. 성실 : 해로운 계략을 쓰지 마라.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해라.
              말할 때는 그에 상응하도록 말해라.
08. 정의 : 해악을 행하거나 네가 해야 할 선행을 빠뜨림으로써 아무에게도 손해
              를 끼치지 마라.
09. 중용 : 극단을 피하라. 그럴만하다고 생각될 지라도 남들이 끼친 해악에 대해
              그렇게 많이 분개하는 것을 삼가라.
10. 청결 : 몸, 의복, 주거에 있어서 불결하게 하지 마라.
11. 평정 : 사소한 일, 혹은 피하거나 피할 수 없는 불의의 일들로 마음을 어지럽
              히지 마라.
12. 순결 : 건강이나 자손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성행위를 피하라.
              개운치 못하거나 약해지거나 너 자신 혹은 다른 이의 평화나 평판에
              해가 될 정도로 하지 마라.
13. 겸양 :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의 말년에는 부인이 돌아가자
그의 주변에서 책을 말끔히 치워버리고 책을 읽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주장을 내세우며 살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는 패배감에서
꽃 시인의 행로를 따라가는 심정으로 모든 서책을 며칠전에 다 기증하였지만
당나라 진종황제의 권학문은 만고의 진리여야 한다는 고집을 꺽지 아니합니다.

ㅡ 眞宗皇帝의 勸學文 ㅡ

富家不用買良田  / 부가불용매양전
부자가 되려고 좋은 밭을 사려고 애쓰지 말라
書中自有千鍾粟  / 서중자유천종속 
책속에 1천종이나 되는 쌀과 오곡 등이 있느니라.

安居不用架高堂  /  안거불용가고당
편안히 살기위해 고대광실을 지으려고 애쓰지 말라
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황금옥 
책속에 저절로 황금같은 집이 있으며
 
出門莫恨無人隨  / 출문막한무인수 
외출하는데 수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書中車馬多如簇  / 서중거마다여족 
책속에 차와 말이 떼 지어 많이 있지 않느냐

娶妻莫恨無良媒  / 취처막한무양매
아내를 얻는데 좋은 매파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書中有女顔如玉  / 서중유녀안여옥 
책속에 옥같은 예쁜 여자가 있지 않는가.

男兒欲遂平生志  / 남아욕수평생지
사나이가 평생의 뜻을 펼치고자 하거든
六經勤向窓前讀  / 육경근향창전독 
창가에 앉아 육경을 부지런히 읽을 지어다.

옳고 훌륭한 일을 하여 개인적으로 몰락하였다고 하지만 이웃과 민족에게
끼친 덕이 많은 삶을 산 예도 많습니다.
조선조 장안에서 책을 가장 많이 사다가 망한 사람으로 호가 난 분은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 1803~1877)였는데 상인들이 들여온 중국고전과 서양
신학문의 책을 사는데 가산을 탕진하였지만 꾸준한 공부로 우리나라 기철
학의 대가로 북한에서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시절에 보물급 우리문화재를 구입하여 소장
하는데 10만석군의 재부를 다 날리고 큰 빚만 물려준 명문이 간송 전형필
(澗松 全鎣弼)입니다. 그러나 그가 세운 간송미술관(澗松 美術館)은 조선
600년의 문화예술품을, 민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겼던 일제 36년의 암
흑기, 6.25전쟁의 초토화기, 산업화과정에서의 황폐화기의 어려움을 거치면
서도 꿋꿋이 그대로 지켜 온 우리문화의 자부심으로 오래 오래 기림을 받
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s

정용철 2011.11.21 12:18
선생님의 넓고 고매하신 글들이 만권당 서점의 영향이 컸군요?
애지중지 하시던 서책을 기증하심에 얼마나 서운하시겠습니까만,
내용은 이미 선생님 속에 다 있으니,
후인들을 위한 선생님의 처분이 더욱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