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악 100년인가? 360년인가?

鄭宇東 0 1,525 2011.10.03 19:32
양악 100년인가? 360년인가?


우리들은 보통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학교들에서 기독교의 찬미가가
불려진 것으로 우리나라의 서양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배워 왔습니다. 왜냐하면
찬미가가 바로 서양음악의 본류이기 때문입니다.
1886년 언더우드가 배제학당을 세우고, 같은 해 스크랜턴 부인이 이화학당을
세운 것으로, 이 해를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이 출발한 것으로 알고 이런 배경
에서 이유선이 1985년에 한국 양악 100년사를 저술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이 양악100년설은 지금 움직일수 없는 통설로 정착 되었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음악을 보는 관점과 이해에서도
음악학에도 이론과 실기실용의 양대 본산이 있고, 이 두 분야가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새로운 제도나 학문의 도입에 있어서는 국가의 의도된 계획에
의하여, 전체적으로 일시적으로 도입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토착 자생적으로 태동하고 혹은 선각자의 사업으로서 추진될때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것이라 보겠습니다.

이런 경우의 사례라 하면
북학파 정두원은 1631~2년 중국현지에서 서학한역서인 <직방외기> 등의
서적과 천문서 자명종 등 서양문물을 얻어서 귀국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음악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최한기, 이규경등 실학자들이 스페인 페레이라신부
와 폴투갈 페드리니신부가 1746년에 중국에서 출판한 律呂正義續編을 통해
서 서양음악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로 보면 선교사가 찬미가를 시작한
시기보다 200년전이니까 우리나라의 서양음악사는 360년사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래까지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온 1885년 이전에
이은돌이 1881년에 벌써 일본에 유학하여 프랑스의 음악가 다그롱에게서
배우고 돌아온 경우를 포함하여 양악 100년 표현은 더 이상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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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상자 // 노동은 / 한국학술정보(주) / 서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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