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적뒤적 인도의 역사와 문화

鄭宇東 0 2,030 2011.10.03 19:11
뒤적뒤적 인도의 역사와 문화
 
 
인도는 신두라 불리던 인더스강으로부터 온 이름입니다.
일명 지금까지도 바라타의 영토라고 불리는데 인도의 2대 서사시중의 하나인
마하바라타의 그 바라타가 가르치는 고대전설상의 '10왕 대전쟁'의 승리자인
(위대한) 바라타족을 명예스럽게 자랑하고 기억하는 한 유산입니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이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입니다.
우주철학을 논하는 산스크리트문헌과 세계 4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를
창안하고 아라비아숫자를 세계의 보물로 공유하도록 한 위대한 나라이지만
내가 어릴적에는 피리부는 사람이 연주하면 단지안에서 넓적한 코믹턱을 가진
코부라독사가 춤추며 재주를 부리는 신비의 나라쯤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BC 2500년무렵에는 이미 인더스강 유역에 하랍파와 모헨조다로 같이 정연한
계획아래 세워진 도시를 건설한 인다스문명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문명은 북서쪽
에서 이주하여 펀자브를 점거한 아리아인에게 멸망되었습니다. 아리아인은 갠지
스강 중류유역에 진출하여 농경사회를 확립한 BC 7세기 무렵까지 인도의 특색있
는 문화와 사회의 초기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무렵에 지배계급인 브라만은
제식의 시행을 독점하여 <리그베다>를 비롯한 베다 문헌을 저술하고 브라만 ·
크샤트리아 · 바이샤 · 수드라등 카스트라는 4종성(種姓)의 종교상 ·사회상의 의무
를 정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때를 일러서 우리는 베다시대라고 합니다.

BC 6세기에 갠지스강 중류 유역에는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이패권을 다투었다.
이 무렵 불교나 자이나교 등의 새로운 종교가 일어났습니다. 이어서 북인도까지
패권을 장악한 마가다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북서 변경
침입후 곧 마가다국의 발전을 완성시켜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룬 나라가 마우리아
제국(帝國)입니다. 마우리아제국은 BC 317년 찬드라굽타에 의해 건설되고 크게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제3대의 아소카의 ‘법(달마)’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를
실천했으나 왕이 죽은 후 이 제국은 쇠퇴하였습니다.

그후 약 5세기 동안 통일지배는 무너지고 여러 세력은 분열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후 BC 1세기 무렵에는 사타바하나가 출현해서 데칸의 대부분을 지배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성립이나 시바와 비시누의 새로운 신앙의 확립
등 문화사상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많았으며, 또<마누법전(法典)>등이 저술
되기도 하였습니다.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제국은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의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해서 다음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5∼6세기 무
렵에는 갠지스강 중류 유역, 벵골 ·데칸 ·타밀나두의 3대지방에 강력한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여러 왕국간에 영토의 확대와 재물의 약탈을 둘러싼 전쟁이
되풀이 되다가 아랍계 이슬람의 인도진출에 따라 12세기경 터키계 이슬람세력의
아이바크가 델리를 술탄왕조를 출발시켰고, 16세기에 몽고계 이슬람의 바베르에
의해 마지막 이슬람국가 무굴제국이 탄생하여 악바르제때 최전성기를 넘기고
1857년 영국에 멸망하였습니다.

이후 인도가 정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 포르투갈에 첫문을 연이래 서구의 선진세
력인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가 동인도회사를 운영하면서 다투는 가운데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인도의 거의 전역을 식민지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비폭력주의저항이 결실을 맺어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으며 종교상의 갈등으로 힌두교도의 인도와, 이슬
람교도의 파키스탄, 불교도의 스리랑카로 3분되고 이중 인도는 1950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자와할랄 네루"가 1964년까지 인도를 통치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최장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는 가운데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몇가지를 열거하며 인도사 뒤적이기를 맺으렵니다.

첫번째로
하늘 아래 완전한 새것은 없고 그 원형은 옛날에 다 있었다는 감상입니다.
산스크리트 문자로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를 만들고 그
주석서인 우파니샤드(懊義書)를 만든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학생기, 가정생활기,
임주은둔기, 유랑기의 4단계로 나누는 <아슈라마>라는 독특한 생활지침을 만들
고 이 각 구분단계는 배우고 학습능력을 키우는 아르타업에,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카르마업에, 개인적 의무나 쾌락을 떠나 숲속에 은둔하여 공공에 봉사
하는 다르마업에, 그 다음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탁발하며 조용히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목크샤업에 정진하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비록 고대의 생활방식일지
라도 나에게는 참으로 공감되는 바가 크고 소중한 사고방식입니다.

두번째로는
고대의 뛰어난 베다문헌과 마하바라타(위대한 바라타族)와 라마야나(라마왕)의
2대 서사시는 모든 인도문학의 보고가 되고 힌두경전의 진수인 바가바트 기타도
라마야나의 부속으로 속해 있었으며 또 오늘의 공상소설이나 공상영화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속에서 시인이며 극작가였던 칼리다사가 희곡 샤쿤탈라
를 썼고 랄라가 시바에의 찬가를 썼고 미라바이가 크리슈나의 찬가를 써서 자국
인도인뿐만이 아니라 전인류에게마저 찬란한 문학적 유산을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세번째에는
박티나 탁발에 대한 인도인들의 해석법이 특이한 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자선이나 걸식은 주는 이의 혜택의 베품으로 생각되는데
인도인들은 특히 스님들은 도리혀 중생들이 적선보시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 생각한다니 인류보편적 진리외에도 지역민족적 특수진리가 있다는 안목도
길러야 하겠습니다. 산등성을 경계로, 더 좁게는 소등을 갈라서 소나기가 오고
안오듯이 피레네산맥의 이쪽과 저쪽의 진리나 사고법이 아주 다를수가 있습니다.

네번째로는
"zero 0"를 발명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일상에 편리하게 간단없이 쓰고 있는 ㅡ특히
부자들이 그 자릿수 불리기를 열망하는ㅡ 숫자를 이슬람권에 전해 이를 다시 아랍
에서 유럽으로 전파했기 때문에 엉뚱하게 아라비아숫자로 불려지는 오류를 시정하
고 원래의 소유자에게 인도숫자로 바르게 복권-반환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다섯번째로는
인도가 영국의 속박으로 부터 풀려나오는 과정에서
인도인 용병들의 세포이 저항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외에도
나는 네루가 영어의 몸으로 감옥에서 딸 인디라 간디에게 역사교육을 하기 위하여
썼다는 <세계사편력>의 교훈을 잊을수 없습니다. 가장 순수하여야 할 종교선교사
업이 이 때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는 위선적이어서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에 새로이 엄정하고 바르게 눈뜨게 가르쳐 준 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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