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내 온 일들 중의 하나

鄭宇東 0 1,869 2011.10.02 20:52
무심코 지내 온 일들 중의 하나
 
 
일상의 타성으로 그냥 무심히 지내 온 일이 어디 한 두가지 뿐이겠습니까
소월은 누구이며 이상은 누구입니까
이순신은 왜 忠武公으로 불러야 하며 왜 곽재우는 忘憂堂인지
황윤길과 일본에 사신간 부사 김성일은 왜 선비들이 鶴峰으로 부르는지
임어당이 중국문학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꼽은 운의 성씨는 무엇입니까

우리 역사상 가장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은 성이 李가요 이름이 도(祹)였으며
이씨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등극후 이름을 단(旦)으로 개명하였기 때문에
광진구에 있던 원래 아단산의 [단]자를 휘하여 아차산으로 바꾸었습니다.
속장경으로 초조대장경을 판각한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 왕자 王煦였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은 세속에서의 성명이 金見明이었고
의병승단의 총수 서산대사는 최현응이었고, 사명대사는 임유정이었고
東茶頌을 저술한 초의(艸衣)선사는 속성명이 장의순(張意恂)이었습니다.
소월은 시인 김정식의 호이며, 날개의 이상은 김해경의 별호입니다.
부생육기의 저자 심복의 아내도 자신의 성이 엄연히 있는 陳芸(진운)이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왜적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李舜臣)의 자는 汝諧, 나라에서 내린 시호가 충무공(忠武公)이고
하늘이 내린 붉은 옷입은 천강홍의(의병)장군 곽재우는 호가 망우당이요
학봉 김성일의 일본 견문보고서는 오보였으나 임란에 대처한 鶴峰선생의 기개는
충절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삼일절 노래를 부르다가 독립을 위하여 몸과 넋을 다 바친 선열에 대하여
"선열아" 하고 예모없이 부르는 것이 편치 않았는데 위당 정인보 선생의 원시는
"선열하" 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전에 "하"는 "-- 이시여" 의 옛날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 자기의 선조나 웃어른의 함자를 말할 때에는
먼저 자기의 성씨를 말하고 무슨자 무슨자를 쓴다고 말하라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남의 조상이나 존숭할 분을 호칭하는 것도 위와 같이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분의 별호나 아호를 불러서 존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시정인은 물론이려니와 언론기관에서 조차도 마치 바둑이 부르듯이 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존칭이나 직함을 붙여 호칭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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