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두(話頭)

鄭宇東 0 1,715 2011.10.01 12:04
나의 화두

廣場을 쓴 崔仁勳 선생의 화두(話頭)를 읽고
그를 따라 나도 나의 이야기를 화두라는 제목으로 쓰보려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의 화두에는 문학의 모든 장르의 글과 인생의 아포리즘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역전의 자서전이며 고백서이고 참회록으로, 문학의 온갖 형식을 동원
하여 쓰여진 과히 문장백과사전이라 할만한 위대하고 유니크한 창작품입니다.

지나간 시절에 러브 스토리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동명의 주제가에는 그들의 사랑을 말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고 망서리는 가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사중의 명 세리후로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정으로 사랑할뿐 결과를 따져서 "미안하다"는 말
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도 일러줍니다. 아무튼 나의 이야기도 찧고 까불든,
도토리의 키 재기식의 비교 교량이든, 좌충우돌로 부딯치든 이제는 시작을 하
고 볼 시간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나 역시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사유와 사고와 사상]
인간이 영장류인 소이는 그 생각함에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에서 인간사유의 특장을 일러서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스스로의 독창적이나 신화적인 착상을 思惟라 한다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정리된 생각을 思考라고 봅니다.
우리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야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언제나
흘러서 새물로 바뀌어서 창발적으로 승화되어야 비로소 자기혁신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옛 탕왕의 세면기 바닥에 새겼다는 반명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 있습니다.

[철학적 신념]
모든 것은 그럴만한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Whatever is, is right. 존재 자체가 정당하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어야 하며 결코 다른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불가지론적 철학적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능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설픈 이해보다는 차라리 솔직히 모른다는 고백을 합니다.

[종교적 신앙고백]
나는 나의 신을 어느 하나로 특정지울 수 없습니다.
화를 내고 저주하고 편가르기 싸움을 하는 신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인도의 비쉬니신은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것도 그 신앙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
온다고 너그러히 포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은 이쯤은 되어야 합니다.
빠스깔은 빵세에서 유신론, 무신론중에서 우리가 택할 것은 신앙의 도박이론
을 펼쳐서 유신론에 배팅을 거는 것이 여러 상황에서 유리하다고 하였습니다.
칸트는 과학적 사실문제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여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윤리적 권리문제로서 요청적 유신론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념의 유연성]
사상과 신념은 일생동안 생활에서 스스로 실천하고 발휘해야 할 소신과
생의 마지막 죽기까지 가지고 가야할 지조와 정서를 말합니다.
따라서 신념은 초지일관하여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오래되면 진부해지므로 구각을 탈피하게 청신한 기풍을
불어 넣어야 하며 혹 그것이 바꾸어 지는 경우에는 그것이 바뀌어지는 이유
에 대하여 납득할만한 충분한 소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일찌기 J.J. 루소의 에밀을 읽으면서 
"어떠한 버릇에도 버릇되지 않는 버릇을 길러라"라는 교훈도 배웠습니다.
버릇의 타성을 경계하고 언제나 언행거지의 참신성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이해합니다.

[교육의 자료와 현장]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교재이고 이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이며
그 중에서도 자연은 가장 좋은 교과서이며 가장 좋은 스승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孔夫子는 三人行이면 必有我師焉이라 했습니다.
좋은 스승에게서는 그대로 본 받아서 배우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나쁜
점을 경계하여 배우면 세상의 누구라도 나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실
공자는 아버지 숙량흘의 주사와 거칠은 품행을 경계하여, 깨닫고 닦고 배운 나
머지 세상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도덕군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독서에 있어서 양서와 악서의 구분을 강조합니다만 배움과 교훈에 있어
서는 위와 같은 이치로 세상에는 좋은 책만이 있을 뿐이라는 역설도 가능합니다.

[자질과 환경]
선천적 천부적 탈랜트를 유전적 자질이라 한다면
후천적 습득적 탈랜트를 후천적 환경적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에 비하면 선천적 바탕(캔버스) 위에다 후천적 테크닉을 구사하
여 감동적인 현란한 회화예술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송대 선종의 벽암록에는 닭의 부화에 관한 비유적 교훈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올 때는 알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부리로
쫒는 지점과 시점이 어미 닭이 밖에서 깨뜨리는 시점과 지점에 일치하여야
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법칙이 있습니다. 부화의 생물학적 사실여부
는 모르겠지만 내재적 유전적 바탕과 외부적 운동요인과 환경요인이 일치하
여야 중생연기의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인간 관계론]
세상의 사물과 사건의 존재방식은 존재론으로 풀이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존재론을 넘어선 관계론이 중요합니다.
사물이나 사건은 알고 만남에도 무덤덤하고 호의적 대응이 없지만 사람들사
이에서는 만나고 알면 인간관계는 특별한 것이 되어 호의적 관심속에 계속
진척됩니다. 조직사회 특히 감옥생활에서는 죄수번호가 성명을 대신합니다.
이응로화백은 수형시에도 상대방의 실명을 물었다 합니다. 수번으로 환원시
킬 수 없는 이화백의 인격적 배려로 이해되어 집니다. 이제 일상화된 이야기
지만 찻간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나무라지만 대부
분의 그 관계와 만남이 1회성으로 끝나는 그 마당에 면식이나 존경심으로 자
리를 양보하는 선행들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인간관계의 파괴와 
단절에 있습니다. 우선 인간관계부터 바르게 회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
의 삼라만상에까지도 정명을 붙이고 바른 관계를 설정하고 바른 관계를 회복
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평형감각과 정의]
우리 인간은 가치상관적 동물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취미 주변환경등에 의
하여 가치의 왜곡현상을 경험합니다. 비행기는 좌우익 날개의 균형이 이루
어 질때 날기를 시작하고 속도를 배가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의 대원칙은
울삐아누스의 정의론처럼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정당하고 정확하게 돌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호오나 편견 주위눈치에 너무 경도
되어 평형감각을 잃어버리고 혼돈과 혼란속에서 일과 몬의 우선순위를 그
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등 4대우상
(종족-시장-극장)을 깨뜨리고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하여는 이때에도 유일한
준거가 되는 것은 역시 정의의 관념으로 가치를 교량해 볼 것입니다.

[악과 거짓의 논리]
교양인으로 행세하기 위하여는 여러 전제조건이 갖추워져야 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선량한 교양과 순리에 따라 살아내기가 힘든, 악과 거짓이
판을 치고 악행이 횡행하는 암흑의 수렁탕 세상입니다.
일본의 지정학자인 구라마에 모리미치(倉前 盛通)는 그의 저서 악의 논리
(惡の 論理)에서 악의 세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악의 실상을 파악하고 세상에 살아 남는 것이 유기생명체의 일차적인
의무라고 하였습니다. 악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악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고,
생명개체를 유지 보존해 나가는 의무를 소흘히 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워 온 이삭들]
우리들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이사야 28장 10절에서 말하듯이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
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따와서 제글처럼 쓰고 제말처럼 떠듭니다.
반면에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서(1장 9절)의 솔로몬의 말처럼
공자는 자기의 창작으로 저술하지 않고 오로지 술이부작(述而不作) 진술하
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우리는 또 인류의 위대한 한 스승 공자
의 만사에 대한 겸손과 그의 고매한 인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작이나 저술의 위대함은 링컨 대통령이 Uncle Tom's Cabin의 저자 스토우
부인(Lady Stowe)을 소개한 말로 미국에 가장 큰 전쟁을 일으킨 작은 부인
이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합당한 평가요 더없이 훌륭한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대통령쯤이 되면 저런 멋있는 말도 수시로 할 수 있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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