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鄭宇東 0 1,483 2011.10.01 11:54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십년 넘게 책방업을 하다 빈털털이가 되어 그만두니 할일이 마땅치 않아
쉬면서 시와 노래를 찾아 온 곳이 이 사이트 내 마음의 노래였습니다.
관중과 포숙아의 교우관계는 아주 별난 데가 있습니다.
포숙아를 앞세워 잃은 관중은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자기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라고 하며 지기지우를 잃은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친교를 맺고 가끔씩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니터창에서
맨처음으로 아는 오숙자교수님의 이름을 보고
Fancy Meeting You !
What a coinsedence !
하고 쪽지로 인사 드리니 동부 이촌동 신동아쇼핑센터에서
키 큰 안경 낀 책방 아저씨로 만난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후 우리는 미소교의 교주가 되고 조선시대의 여한량 어우동으로 짙게
놀다가 한동안은 우리가곡애창운동 캠페인에서 본부장과 사무국장으로
뜻을 모아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던 가고파의 산실 마산에서 사이트의 과천 전체모임에 올라온
현빈 임효식 시인은 셀로판으로 일일이 포장한 빨간 장미를 많이 사와서
모인 사람 모두에게 한 송이씩 바쳐준 것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너무도
감동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늦은 밤 나를 차 태워 준 많은 사람들에게 다 고마워하지만
특히 윤교생 지휘자는 살고 있는 아파트안까지 태워주니 더 고마웠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사무실에서 며칠동안 신세를 지며 머물기도 했더랬습니다.
데칸쇼와 더불어 우리 젊은 날의 대유행어였던 슈토팽으로 그를 부르며
그 애칭이 담은 슈베르트와 베토벤과 쇼팽을 떠올리면서 그를 좋아합니다.

나의 집 근처까지 온 사람은 많지만
우리집 방안까지 들어 온 사람은 (톰)돌이 장노 김관식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서 허접일을 거드는
나를 찾아 준 사람은 바위님과 자연님과 달마님과 권운님이십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한 사람 아마 가곡님도 오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반죽은 잘 못하는 성미라 가만히 있는데
싸나이님 이용수선생은 나를 형님이라 불러주어서 고맙지만 형 노릇을
못해서 좀은 미안한 생각이 들고

芝岩 홍양표 교수님은 과분하게도 아우라고 부르셔서 형님이 되셨습니다.
서로 알고 그리 길지않은 시간에 대구 신암동 댁에서 두 밤이나 자면서
자별하신 형수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고 자부-자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 이종균회장님의 유럽여행기에
시답잖은 답글(리플라이)을 몇 차례에 걸쳐 쓴 적은 있지만

회원가입 첫해인 2003년 시월
한국예술가곡연합회가 개최하는 제1회 신작가곡의 향연이 발표되는
영산회관으로 안내하는 연주회장 안내와 초댓 글에서
해아래 養芝軒 김필연 시인과 여섯마디의 댓글(코멘트)을 사흘에 걸쳐
교환한 다이아로그는 두고 두고 잊히지 않는 추억거리입니다.

- 정우동 (2003/10/27) 님의 친절하신 안내에 감사합니다. 김필연님이 좋은 사진으로
즐겁게 해주던 해아래님이셨군요. 앞으로도 좋은글 좋은 그림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해아래 (2003/10/28) 정우동 선생님, 반갑습니다. 요즘은 꽃이 지는 시기라 한참동안
은 꽃을 올려 드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주변풍경이라도
좋으면 찍어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우동 (2003/10/28) 어찌보면 雪花, 氷花도 있겠고, 그밖에도 좋기는 解語花가 더
좋다던데요.

- 해아래 (2003/10/28) ㅎㅎ 멋진 추임새이십니다. 해어화는 특히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라 하더군요...

- 정우동 (2003/10/29) 님의 작품을 육성으로 못들어 아쉬웠지만 만나뵈서 반가왔습
니다. 마치 백아의 거문고가 종자기의 귀를 만난 것처럼 정말
기쁜 하루로 오래오래 소중히 기억하렵니다.

- 해아래 (2003/10/29) 감사합니다. 부디 伯牙折弦의 고사가 현실이 되지 아니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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