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오 팡당과 반지

鄭宇東 0 1,409 2011.10.01 08:57
보르지오 팡당과 반지
 
 
체자레 보르지오 가문에는 특히 여자들에게 유사시에도 능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끊을 수 있도록 독약을 담는 팡당과 반지를 착용하게 하였습니다.
처음들었을 때에는 그 아름다운 보석패물이 끔찍한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 놀
라웠습니다. 마치 토머스 모어의 유명한 책 유토피아에서 우리 인간이 획득할
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는 황금을 그곳에서는 하찮은 배설물을 처리하는 소변
기로 만들어 쓰고 있다고 읽었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최고의
物神 황금으로 변기로 만든 유토피아의 세계이니까 인간의 끝없이 추악한 욕심
을 꼬집느라 그렇게 말했겠지만 숙녀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사랑스런 팡당이
무서운 독극물의 용기였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처럼 믿기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백제말엽 계백장군이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대결전을 벌
일때에 패전후의 수모를 피하기 위하여 처자를 다 죽이고 전쟁에 나갔다고 합
니다. 이 얼마나 개인의 잔혹한 처사이며 냉정한 가족사의 비극입니까?
우리나라의 이런 경우에 비교하면, 저 서양의 팡당과 반지의 비극은 훨씬 인
간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 같이 결국에는 비명에 죽음을 당하는 데에서
인정의 후박을 논하는게 다 쓸데 없는 짓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여인들은 銀粧刀라는 장신구 겸 보신용 작은 칼을 지니고 있었
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여인의 정절을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였습니
다. 그리하여 사대부가에서는 과부에게는 개가를 하지 못하게 하였고,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은장도로 자진하는 사례가 허다하였습니다. 이렇게 수절한 여인
에게는 정문을 세워서 그 정절을 기리며 또 사회적으로 장려하며 동방예의지국
임을 만방에 자랑하였습니다. 은장도는 평소에 소지하기 좋도록 칼집이 있으며,
노리개로 차고 다니는 것을 패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을 낭도라 하였으며,
나이 든 여인들은 즉각 실용에 닿을 수 있도록 옷고름에 차고 다니다가 음식물에
독약이 들었는지를 알아보는 시금석 역할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반지라고 알고 있는 손가락 장신구에는 가락지도 있습니다.
가락지는 한쌍으로 만들어졌다가 연인이나 부부가 사랑의 정표로 각자의 손가락
에 나누어 끼거나 애시당초에 홑으로 만들어서 손가락에 끼는 것이 반지입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반지가 위와 같이 독극물의 은밀한 용기로 쓰였고, 또 이
반지에 가문의 문장을 양각으로 새겨 중요문서에 압날하므로써 동양사회의 도장
역할을 대신하였으니 한편으론 옛날 청대인 화가 심복과 그의 처 운이 사이의 편
지에 남긴 반지의 인영은 서양사회의 서명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사는 방법은 이래 저래 동서양이 어슷비슷하고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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