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鄭宇東 0 1,543 2011.10.01 08:45
호모 루덴스

 
시션머(是什么)?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질문중의 하나입니다.
우주삼라만상의 무엇이라도 이 질문의 주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일상이 아닌 위기의 순간이나 또 한가한 때를 당하여
세상이 무엇이며 인간이 무엇이며 내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묻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색해 온 성인 위인 학자 철학자들의 답은 그들의 관심과
관점에 따라 십인십색 다 다릅니다.

Carl von Linne에 의해 Homo sapiens로 명명된 인간은
Homo erectus가 되므로 두발로 걷고, 두손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Homo faber로서 죽도록 일만 하여 Homo habilis가 되었고
온갖 것에 끄떡하면 놀라기 잘하는 호모포비아였다가 이를 벗어나
결국에는 Homo rudens로 편안과 쾌락을 탐하는 동물로 낙착되었니다.
술마시기를 즐기다 알크홀릭이 되듯이 일만하다가 워크홀릭이 됩니다.
또 유희와 놀이를 추구하는 경향이 점차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갑니다.
그래서 성서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예고되었듯이 오늘날의
천박한 쾌락에도 이미 무서운 경고가 내려져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반성에서 학자들은
호모 에티쿠스(Homo ethicus, 윤리적 인간)의 대두를 요구합니다.
우리 인간은 동물적 쾌락을 추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
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윤리적 인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륜적 법률적
의무를 이행할 뿐아니라 인도적인 자발적 시혜와 선행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법률속담에는 "법은 윤리의 최소한이요 윤리는 법의 최대한이다"
라하여 일상의 윤리-도덕화가 인류진화의 한 징표라 믿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J.하의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유희에서의 문화의 기원>(1938)은 유희사상사
(遊戱思想史)에서 한 시기를 구획지었습니다.
종래에는 유희, 즉 놀이가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문화 쪽이 상위개
념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하의징아는 이러한 견해를 역전시켜서, 문화는 원초
(原初)부터 유희되는 것이며 유희 속에서 유희로서 발달한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모든 문화현상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습니다. 자
신이 탐구해 온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동원
하여 인류의 고대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하였습니다.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되었다. 놀이는 인간의 전뮤물이 아니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해 왔고 다양하게 발전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인 동시에 놀이하는 인간이었다." 고 주장하는
호이징가가 해석하는 놀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문화와 놀이는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
폐적인 것으로 죄악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놀이마저도 삶과
유리된 채 상업성으로 점철되고 놀이가 가졌던 본래의 건강성을 상실했습니
다. speed, screen, sports, sex 4S 로 대표되는 우민화정책의 음모로 놀이는
이제 강력한 통제의 한 방편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 통제하에 수동적인 유희
만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야성 혹은 적극성, 능동성은 갈수
록 배제되어져가고 시스템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잊게 되어버리는 문화에 묻혀 하급 놀이 또는 퇴폐 향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원초적 놀이로 전락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잃어버린 원시적 놀이의 흔적을 파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 가슴을 치는 비트, 수많은 사람들, 열기, 땀 그 곳에서 우리
들은 넥타이를 메고 상사의 눈치를 보던 억울함이나 어디서나 항상 이쁘게
보여야 하고 착한 여자여야 하는 가식 덩어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마음껏
머리채를 흔들고 점프하고 소리지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담론들, 가치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그를
통해 내부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야 말
로 놀이가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한 자기 정체성의 여과없
는 발현은 창조성과 연결됩니다. 그런 놀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창조성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계발해왔으며 이른바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이 탄생시켜왔
습니다. 그 놀이 안에 인간 본연의 창조성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노동과 놀이를 병행하여 생활합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
에 속한 사람은 그중 하나만을 선택합니다. 일하지 않고 놀고 먹고 살 여유
가 있는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
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직업노동에 바쳐야 합니다.
일본 젊은 세대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오다꾸" 경향입니다.
자기의 취미에 파묻혀서 외부와 교통을 끊고 고립단절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다 아마추어로 불립니다만 직업인 프로페셔날리스트에
못지 않은 기량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아마와 프로의 구분은
빵을 구하기 위한 직업을 가지는 여부에 따라 나누어질 뿐입니다.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코스플레한 레이야로 등장하면 카메코가 이를
사진에 담아 주고 선물하므로써 남다른 끈끈한 코미케를 이룹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레이야는 경제적 보상이 아닌 명예를 얻고 취미활동을 통해 자신
을 직업세계에서 꺼집어 내어 놀이의 세계로 이동시켜 갑니다.

이솝우화는 사모아의 노예 이솝이 쓴 동물우화입니다.
요즈음에는 이 우화들의 신판 버전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도구로 열심히 일하는 호모 파베르시대의 대표적 주자 개미는 퇴장하고
즐겁게 놀면서 창조적인 호모 루덴스시대의 베짱이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베짱이는 새 버전에서 이렇게 변호합니다.
여름에 나는 단지 놀기만 하고 시간을 보내버린것이 아니고
성악의 기량을 높이고, CD를 굽고,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하여 저작권을 획
득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부른 노래가 히트하여 무대에서 큰 돈을 벌었으며
음반으로 제작한 CD가 밀리언의 차트에 올라 인기도 오르고
저작권협회로부터 작곡작품으로 저작권료가 나와 개미가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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