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인술의 전설

鄭宇東 0 1,512 2011.09.30 19:28
의사와 인술의 전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생명을 연장해 오던 노인이 인공산소호흡기를 떼어 내고
자력으로 호흡하며 살아 있다는 보도가 의료관계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신화시대의 의술의 신은 아폴론입니다.
그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오해로 활을 맞고 죽은 화장터에서 새까맣게 타버린
코로니스의 뱃속에서 빼내져서 태어나 케이론에게서 의술을 배워 죽어가는 사람
아니 이미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가 되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의학학교에서 길러
낸 제자가 저 유명한 의학의 아버지로 숭앙받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입니다.
모든 의사는 의사가 되려 나가는 첫 머리에서 이 히포크라테스를 본받아 인술의료
사업을 베풀겠다고 선서하며 그의 이름을 기립니다.

이렇게 시작된 의학의 전통은 여명기에 갈레노스의 4체액설이 대세를 이루다가
근대적 해부학을 시작한 베르살리우스를 거쳐 거시적 병리학으로 발전하고
오랫동안 식물에만 의존해 오던 생약외의 화학요법을 창시한 파라켈수스를 거쳐
이후의 의학자들에게 계승되어 한층 더 진보한 의학지식과 치료술법과 약물요법
중심에서 치료보다 건강증진을 목표한 예방의학 내지 보건학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 해본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원문이 1948년에 변형된 이른바 제네바선언입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류,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인술로서의 의술의 진면목은 중국에 있나 보입니다.
옛날 중국의 의사 동봉(董奉)은 치료비대신 자기의 뒷동산 숲에
중환자는 살구나무를 다섯 그루, 경환자는 한 그루씩 심게하였습니다.
몇년 뒤에 큰숲을 이루고 살구열매를 많이 거두어 곡식과 바꾸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董仙杏林에 연유하여 인술을 베푸는 의학계나 의료계를
행림계라 하게 되었으며 인술의 의술은 이렇게 처음 시작되었다 하겠습니다. 
   
중국 의술의 전설은 화타와 편작에 이어집니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가 관운장이 맞은 화살상처를 치료하면서 외과수술을 개시
했습니다. 화타의 스승이라는 편작에게는 중국 명의술의 모든 명예가 그에게로
모여서 귀착하고 있습니다. 이 편작은 또 인도의 명의 기파(耆婆)와 더불어 동양의
최대 명의중의 명의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성 허준은 스승 유의태의 살신성인하는 간곡한 부탁을 받들어
밀양의 얼음골에서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여 인체의 비밀을 낱낱이 알아내고
해동 최고의 명의가 되었습니다. 허준 같은 제자에게는 좋은 스승이 있고 역으
로 유태의 같이 좋은 스승에게는 허준 같은 좋은 제자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되는 일본의 한 화상전문 치료의사(?)는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종기와 부스름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치료하려고 애쓰다
가 나중에는 부스름을 불에 되게하여 화상으로 만들어 자기가 장기인 화상치료법
으로 완치시켰다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적에도 자기만의 독특한 일처리방식
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은 크리미아전쟁에 종군간호사로 참여하여 편의 피아를
묻지않고 구호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를 베풀고 나중에는 간호사학교를 설립하여
의료사업에 크게 이바지했고 의료제도 개선에도 공이 많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의 자선사업가 앙리 듀낭은 이탈리아 통일전선에 참전하였
다가 피아를 가려 치료하는 편협한 국수주의를 넘어서 사해동포적 인도주의적 입장
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구호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런 숭고한 정신이
국제적십자사의 창설로 이어지고 뒤낭과 그의 조국을 기리기 위하여 스위스의
백십자기를 흰바탕에 붉은 십자를 그린 적십자기로 바꾸어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카나다의 의사 노만 베쑨은
젊은 나이에 중국의 내전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을 고치고 수술하다가 메스에
찔려서 몸이 망가져도 개의치 않고 수술하다가 결국에 파상풍으로 사망했습니다.
중국공산군의 뒤떨어진 의료체계를 근대화한 행정가이며 군의관이었습니다.
닥터 노만 베쑨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사람입니다.
또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계기를 주고 현대에서 의료를 하는
의사들은 꼭 연구하고 배워야 할 위인입니다.
   
춘원 이광수선생의 작품중 어느 작품인지는 잊었지만 바람을 피운 아내가 뒷날의
탄로를 피할 방법을 물으니 어떤 나쁜 의사는 바로 귀가하여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하라고 일러 줍니다. 참으로 그런 불륜사악을 조장하는 교활하고 가증스런 의사는
도규계에서 퇴출해야 마땅할 표본쯤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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