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론(黃禍論 ; Yellow Peril)

鄭宇東 0 1,449 2011.09.30 15:50
황화론(黃禍論 ; Yellow Peril)
 
 
동서의 열강이 잠자던 사자 중국에서 서로 각축전을 벌이던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황색인종이 유럽 문명에 대하여 위협을 준다
고 규정, 황색인종을 세계의 활동무대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던
정치론(政治論)을 황화론이라고 합니다. 이 배경에는 인종차별 ·인종편견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일본의 국력과 국제적 발언권의 강화가 유럽열강
의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책에 방해가 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황화(黃禍)를 방지하기 위하여 러시아의 극동정책을 강화시켜
일본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하고, 러시아를 극동에 세력을 가지는 영국과 대
립시킴으로써, 발칸과 근동방면(近東方面)에서의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키려
는 점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이
1895년의 영국과 중국에 대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 의한 삼국간섭입니다.
 
인도의 베다 신화에는
神이 인간을 만들때 진흙으로 먼저 인형을 만들고 이것을 도자기 굽듯 불에
굽는데 처음에 너무 태워서 시커멓게 만들어진 것이 흑색인종이고
다음에는 이 시행착오를 만회하려고 신경쓰다 설구워낸 것이 백색인종이고
삼 세번째로 노랑노랑 알맞게 구워낸 것이 황색인종이라는 신화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똑같은 황색인종 우월신화가 아메리카의 원주민 피마
족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핍박은 어쩌면 이
런 구원(舊怨)에 대한 앙갚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서구인은, 이러한 신화시대 이래의 열등감 때문인지 백색인종들의 황색인종
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은 대단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 보아도, 영원불변할 것으로 확신했던 로마제국이 북부 아
프리카의 식민지 알렉산드리아등의 피부색이 짙은 주변의 이민족들의 경제
교란을 당하여 멸망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황화론이 대두되고
그 뒤에도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고대군이 유럽을 유린하고 쑥밭으로 만든것
이 또한 황색인종의 화(禍)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07년 미국은 노동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황색인종 이민배척법이 생겨
나고, 문화수용의 천재인 이들 자녀의 취학을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본
의 대미 경제진출과 한국의 경제약진이 중요 타켙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흥 재기하는 아시아제국의 발전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배척 경원하는것
이, 우리의 우방국 미국이 외치는 신황화론입니다. 이제와서 해묵은 黃禍라
는 용어를 쓰가며 역사적으로 잠재한 반감을 다시 환기시키는 일은 그다지
좋은 정책은 아닙니다.

나는 얼마전까지도 이 황화론과 서구의 몰락을 같은 것쯤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양이 몰락하는 것은, 동양도 마찬가지겠만
유기체의 생로병사의 필연의 과정이요, 황화론은 유럽의 백색인종이 아시
아 황색인종의 탓으로 재앙을 당한다는 원망이 서려 있는 나쁜 사례입니다.
말하자면 백인우월주의에 따른 인종차별이요, 인종편견의 타기해야할 나쁜
주의 주장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슈펭글러는 제2차 모로코 사건을 접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할 것을 직감하고 <서구의 몰락>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문화란 발생, 성장, 노쇠, 사멸의 과정을 밟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미
고도성장을 이룬 서구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멸, 몰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곧 몰락의 징표인 셈입니
다. 당시 학자들은 슈펭글러가 직관과 운명에 기댄다면서 비판했지만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안해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극찬
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 제국은 10년 내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슈펭글러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하게 살다가 1936년 5월 10일에 뮌헨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
날은 그의 쉰여섯번째 생일을 3주 앞둔 날이자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몰락
하기 정확히 9년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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