看話禪과 觀世音菩薩

鄭宇東 0 1,458 2011.09.30 08:14
看話禪과 觀世音菩薩


위의 두 단어는 나에게 얼른 감이 잡히지 않은 단어입니다.
말을(하거나 듣지 않고) 보는 禪이고, 소리를 (듣지 않고) 보는 菩薩이라 하니
어리둥절해 집니다. 우리 말법에 "먹어본다, 들어본다, 입어본다"하는 말이 있
는 것을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말은 아닌것 같으나 그것은 경험하거나 감상한
다는 뜻을 부가어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사전을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 사전을 톺아보니
선중에 *간화선(看話禪) 은 공안(화두)를 보고 열심히 공부를 쌓아 마침내는
대오하기에 이르도록 좌선하는 것이고, 반면에 고요히 앉아서 선정에 들고 지
혜가 원만하고 밝은 경지에 드는 선풍을 묵조선(默照禪)이라 하는데, 공안을
보느냐 안 보느냐에 따라 선문이 갈라지며, 이밖에도 본래의 여래의 교설을
듣고 깨닫는 *여래선(如來禪)과,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닫는 *조사선(祖師禪)
의 구별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때 자기만의 짧은 견문으로 속단하는 일을
극히 경계하여야 한다고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선문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는것을 어쩐일인지 돈오돈수라고
쓰는 것을 흔히 봅니다. 돈오가 어느 순간 지혜가 밝아져서 문득 깨치는 것을
말하면 돈수는 문득 수련을 마치는 뜻일텐데, 수련을 점점 쌓아가서 단계적으
로 깨쳐가는 선법은 점수(漸修)이지 돈수(頓修)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산스크리트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sh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 관세음(觀世音), 관자재(觀自在),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합니다. 관세
음은 구역이며 관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
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
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습니다.

그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을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 또는 관음경(觀音經)이라 일컫습니다. 관세음(觀
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입니다.

중생이 괴로울때 진심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나아가 세상의
곤고한 진상을 보고 일체중생의 구제에 나선다는 大慈大悲한 보살입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원래에 부처나 보살의 넓고 큰 자비(慈悲)를 말하는데
자비의 자(慈)는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소극적으로 괴로
움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중생의 형편을 관조
(觀照)하여 보고, 세상의 모든 중생이 구제를 받은 뒤에야 부처가 되겠단 서원
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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