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뜨료쉬까 (Матрёшка)

鄭宇東 0 1,387 2011.09.29 15:29
마뜨료쉬까 (Матрёшка)

마뜨료쉬까는 둥근 모양의 목각 인형입니다. 이 인형을 열면 그속에 작은 인
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보통은 네 개에서 아홉 개, 많게는 수십 개에 이
르는 인형이 인형의 몸통 속에 차곡차곡 들어차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마뜨
료쉬까는 어머니를 뜻하는 '마티'에서 유래했다하니 러시아인들은 이 인형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을 상기하게 합니다.

1891년 예술가 세르게이 말류찐이 디자인하여 발표한 뒤 일약 러시아의 상
징이 되다시피 한 이 인형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 목각인형 '다루마'(達磨)
나 '시치푸쿠진'(七福神)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류입니다. 백년 남짓한 세월동
안 이 전통인형은 러시아의 어느 거리나 상점에서도 만날 수 있는 대표적 문
화 상품이 되었습니다.
 
제작 방법에 따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 상품과 장인이나 예술가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직접 제작하는 고가의 애호가용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종류도 다양해, 러시아 전통적 머리수건을 쓴 홍안의 농촌 여인을 기본으
로, 기독교 성인들, 러시아 혁명 영웅 등이 대종을 이루었으나 점차 시대상을
반영해 비틀즈나 세계적 스포츠 스타, 미국 대통령, 심지어는 오사마 빈 라덴
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 여행객이 증가함에 따라 기념품으로 마뜨료쉬까
가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며 미국의 한 수집가 로버트 브로콥은 6천종의 마트료
시카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종류가 제작되었는지를 가늠하기
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생산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 한해에 1천만 세트가
제작 판매되었다고 하니 요즘 말로 그야말로 '대박' 문화상품임이 분명합니다.
프랑스의 미남배우 알랑 드롱은 마뜨료쉬카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또 오페라
성악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제작처를 찾아가서 수집할 정도로 마뜨료쉬까
수집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각 인형이 러시아인과 외국인의 관심을 받는 문화상품이 된 비결
은 무엇일까요?
그 하나는 외래문화를 러시아적 전통문화와 지혜롭게 융합시켰다는 점일 것입
니다. 인형의 형상은 외국에서 빌려왔으되 거기에 러시아 신화를 윤색함으로써
고유한 문화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화의 생성원리입니다. 외래 문화
에 토착문화를 적절히 가미할 때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마뜨료쉬까 인형은 둥근 목각의 재질만 유사할
뿐 그 형상은 천태만상(千態萬象)입니다. 인형을 모으면 시사만화가 되고, 역사
인물전이 되고, 대중적 스타의 전시장이 될 정도입니다.

더 중요한 특징은 마트료시카 인형에 '부착된' 풍부한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입
니다. 러시아인들이 일본 원산의 인형을 풍요와 다산의 수호신처럼 여기게 된
것은 인형과 연관되는 다양한 신화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인형이 우랄
지방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신 '주말라'의 형상이라고 믿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모스크바 근교의 옛 왕국에 살았다는 '황금여인' 전설과 연관짓는 사람도 있습니
다. 이들 여신의 몸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있거나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는 특
징이 공통적입니다.

이런 특징은 미국의 마텔사가 제작해 성공한 여자인형 바비와 대비됩니다.
바비도 1959년에 출시된 이래 미국과 세계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 문화상품
으로, 점차 기능과 외모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바비의 성공 비결
은 소녀들의 자의식과 환상적 몸매에 대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비인형에는 신화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흠입니다.

마트료시카의 성공담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이야기'의 힘입니다.
이야기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야기로 인해 한갓 나무 조각에 불과한
인형이 생명을 지닌 존재나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처럼 변신합니다.
최근 모든 도시들이 문화도시 혹은 창조도시를 표방하며 도시의 매력을 높이
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시의 매력은 쾌적한 도시공간과 더불어
도시와 도시의 장소에 깃들인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고대 신화일 수도,
최근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그 곳에 산 인물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를 비롯한 예술인의 또 다른 사명은 우리가 사는 삶터에 서려 있는 이야
기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이야기가 깃든 공간이 정겨운 장소, 매력적인 도시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아쉽게도 이런 사실에 역행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찾기 좋으라고 길중심의 주소로 바꾸면서 옛 동명이 간직한 수 많은 이야기
들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쓰온 동명 지명에는 우리 선조들
의 애환과 희비가 서려있는 우리의 역사이며 문화입니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
과 문화가 서려 있는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는
첩경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서울의 三淸동만 하더라도 산이 맑고, 물이 맑고,
사람까지 맑아서 좋은 마을을 이루자는 선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지금의 花田은 꽃밭이지만 원래는 "곶의 밧(밖)"으로 물의 밖으로 티어 나온 곳
이란 지형 지물의 특색을 그대로 잘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 우리 것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 할 판에 도로명 주소로
수백년, 수천년동안 형성된 문화적 토양을 한꺼번에 버리는 愚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명 동명이 사라지면 문화적 상상력도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것을 더 보태가면서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도 문화콘텐츠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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