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평민" 글래드스턴

鄭宇東 0 1,433 2011.09.30 16:52
"위대한 평민" 글래드스턴

 
영국의 재상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 1809~1898)은
리버풀 출생으로 젊은 시절의 23년과 말년의 1년을 제외한 62년을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59세 에 처음으로 수상의 지위에 오른 이래 4차례에 걸쳐 모두 17년동
안 영국의 수상을 지냈습니다. 글래드스턴은 그가 85세 되던 해에 상원이 자신의
군사비증액법 안을 거부하자 수상직을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1833년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상무장관·식민지장관·재무장관 등을 역임하는 동안
자유무역을 목적으로 하는 관세개혁을 단행하고, 곡물법 철폐에 찬성하였으며, 상
속세(相續稅) 설치와 소득세 감소에 따른 예산안을 제출하는 등 자유주의자로 명성
을 떨쳤습니다. J.러셀이 은퇴한 후 자유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868년 총리에
취임하고부터 아일랜드 교회의 국교(國敎)를 폐지하고, 국민교육법을 성립시키는
한편 선거의 무기명투표제를 제정하는 등, 잇달아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1874년 하야(下野)하였으나, 1879년 선거에서 B.디즈레일리를 이겨 1880년부터
제2차 내각을 조직하고, 제3차 선거법개정을 실현하였습니다. 1885년 사직하고
1886년 제3차 내각을 조직하였는데, 아일랜드자치법안을 두고 당이 분열하자 사
임하였습니다. 1892년 제4차 내각을 조직하고 1893년 제2차 아일랜드자치법안을
제출하였으나, 상원에서 부결하여 정계에서 물러났습니다.

수상에서 물러난 사람에게는 작위를 부여하는 영국의 정치 전통에 따라 왕실에
서는 그에게 백작의 칭호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작위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비록 수상을 지냈다고 할지라도 작위를 받지 않은 채 영원히 평민으로 살
다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의 정치사를
대표하는 글래드스턴에게는 작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정치사가들은 그
에게 백작의 칭호보다 더 값진 칭호 <The Great Commoner / 위대한 평민>를
그에게 헌사했습니다.
하워든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
에 안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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