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엽집(萬葉集 ; Manyoshu)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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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1
2015.05.17 17:14
만엽집(萬葉集 ; Manyoshu)
만요슈(万葉集 まん.よう.しゅう)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에
걸쳐서 만들어진 책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고대 일본의 가집(歌集)
입니다. 나라(奈良) 시대의 중국식 문화 유행기의 일본의 전통적
예술작품입니다. 일본어의 한자가 신자체화 되기 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원래표기는 '萬葉集'이지만, 신자체화 뒤로는 '万葉集'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성립은 759년 이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본 천황, 귀족
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신분의 사람까지, 여러 신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읊은 노래 총20권 4500편 이상을 모은 것입니다. 4세기
부터 8세기까지 약 450년간 불린 노래 4536수가 수록되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기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황부터 서민까지
각양각색의 삶과 감정을 담고 있기에 일본인의 정신적 고향이라
할 만합니다. 이 당시에는 일본의 자가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의 音과 訓을 빌려서 "만요가나"로 기록했습니다.
'만요 가나'[萬葉假名]라는 독특한 문자 체계는 중국 한자의 발음
과 뜻을 빌려서 조합했을 뿐 아니라, 일본어의 구문과 중국 한문
의 구문을 뒤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낳았고 일부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 시가집에 수록된 대
표적인 시인으로는 오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 가키노모토
노 히토마로[杮本人麻呂], 야마노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 등을
들 수 있으며 모두 8세기에 활동한 시인들입니다. 구성·가제(歌
題)·가형(歌形) 등에 중국 문화사상의 영향이 보입니다.
가장 훌륭한 영역본은 H. H. 폰다에 의해 1967년에 출판되었습
니다.
‘만요슈’의 의미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 하나는 '온갖 말(万の言の葉)'을 모았다는 뜻이라고 하는 설로,
'수많은 말(多くの言の葉):노래를 모은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며,
(2) 그 외에도 '오랫동안 전해져야 할 노래 모음'(契沖 게이추나
鹿持雅澄 가모치 마사즈미)이라고 하는 설,
(3) '葉'을 그대로 나뭇잎이라고 해석해서 '나뭇잎을 노래에 비유
했다'는 의미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4) 만요슈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고지키의 서문에 "後葉 のちのよに流 つたへむと欲ふ"라고 되어
있듯이, '葉'을 '世'의 의미로 받아들여 '먼 훗날까지 오랫동안 전
해져야 할 노래 모음(万世にまで末永く伝えられるべき歌集)'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요슈의 저작편찬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먼저 칙찬설(勅撰說; 천황의 칙명으로 편찬했다는 설),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설,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설 등, 여러 설로 나뉘어 있지만,
현재는 야카모치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다만 만요슈는 한 사람
에 의해서 편집된 것이 아니라 권책에 따라서 작자가 다르고,
야카모치에 의해 최종적으로 20권으로 정리되었다고 하는 설
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시가집의 저작자는
위로는 천황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 등에 이르기까지 그 작자
가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이름이 밝혀진 작자도 많지만, 작
자 미상인 경우도 그에 못지 않게 많습니다. 또한 당시 한반도
나 중국에서 건너갔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그들의 후손에 의
한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만엽집에 실려 있는 작품을 내용적으로 보면,
주로 연애를 노래한 상문(相聞)이 있고,
또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만가(挽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속하지 않는 노래를 모은 잡가(雜歌)도 있
는데 여기에는 천황의 행차(行次) 등을 읊은 노래가 들어 있습
니다.
표기는 한자로만 쓰여 있으나, 그 어순은 주어ㆍ목적어ㆍ동사
와 같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일본어 어순과 같다고 보
면 됩니다. 또한 표기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즉,
한자의 훈독(訓讀)으로만 되어 있는 것, 한자의 음독(音讀)으
로만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을 바람'을 뜻하
는 '아키카제(あきかぜ)'를 '秋風'으로 표기한 것은 전자에,
'安伎可是'로 나타낸 것은 후자에 각각 해당합니다. 따라서
만엽집의 표기 방식이 신라향가의 표기 방식과 비슷하므로 이
둘은 종종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만엽집>은 <겐지이야기(源氏物語)>와 더불어 일본인의 절대
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작품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우리
나라의 KBS에 해당하는 NHK(일본방송협회)의 '인간 강좌'와 같
은 방송 교재가 만엽집에 관한 특집을 종종 다룬다든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강좌에 만엽집에 대한 강의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엽집은 <일본문화의 위대한 유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사를 보건대, 7~8세기와 같은 이른 시기에 만엽집과 같은
시가집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뿐이라는 것은 '일본 문화의 위대
한 유산'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편찬된 후 1천여 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었던 만엽집은 언제 누구에 의해 우리나라 일반독자
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을까
그것은 이영희씨가 이 시가집에 실려 있는 노래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의 집필 목적을 다음과 같
이 적고 있습니다.
" 8세기 초에 나온 일본 고전을 우리 힘으로 다시 해독해 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고대어를 재구성하고, 한 일 고대 교류사
를 새로이 하는 것이다. 우리말과 우리 역사의 보물 창고는 일본
에 있다. 이것을 언제까지 방치하여 둘 것인가? "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가 화제가 된 이유는
첫째, 이영희씨는 고대 한반도에서 쓰였던 말로 『만엽집』을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해석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만엽집의 해석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예가 '치하야부루(知波夜
夫流)'. 이 어휘는 권2에 처음 등장하며, 『만엽집』에서 총16개
가 보입니다. 일본의 연구자는 이 말을 '힘이 세고 난폭한 모양'
으로 풀고 있는 반면, 이영희씨는 '왕 베어 버려' 또는 '남근 베어
버려'로 해석합니다. 그는 고대 일본어인 '치'는 고대 한국어에서
'왕' 또는 '남근'의 뜻이었고, 고대 일본어인 '하야부루'는 전라도
방언인 '~해부르(=해버려)'가 변한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
나 이와 같은 이영희씨의 만엽집 해석에 대해 성신여자대학교의
박일호 교수는 회의적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출판된 『국문학 해
석과 교재의 연구』(1996)에서 이렇게 지적하면서 이영희씨의
견해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 현대 한국어의 음(音)을 고대 일본어의 음에 대응시킨다든지 한
국어의 음과 일본어의 음을 혼용하여 훈독을 하는 등, 언어학적인
규칙(rule)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서적–이영희씨의
『또 하나의 만엽집(もう一つの萬葉集)』 등-은 단지 문자의 기원
이나 한자의 구성 원리를 살펴서 거기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덧붙
이기만 함으로써 언어의 의미를 확대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하지
만 이것은 해석이라기보다는 연상과 유추에 의한 창작에 지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엽집에는 우리말의 '가을바람(秋風)'에 해당하는
'아키카제(あきかぜ)'라는 말이 56개 정도나 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쓰인 적지 않은 노래는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하여 만나
지 못하는 이성 혹은 죽은 배우자에 대한 그리움을 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의 노래가 신라 시대의 향가에도 보입니다.
월명사가 죽은 여동생의 명복을 빌면서 극락세계에서 왕생(往生)
하기를 염원한 작품이라는 "祭亡妹歌"가 바로 그것입니다.
생사(生死) 길은 /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
나는 간다는 말도 / 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온저. /
아아 / 미타불(彌陀佛)에서 만날 나 /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한편, 이상과 같은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한 서정성은 중국의 6조
(六朝)나 당나라 초기의 한시에서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고대 동북
아시아의 세 나라는 '가을바람'을 매개로 한 서정성을 공유하고 있
었다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만엽집』에 실려 있는 노래
들은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성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문화공동체로서의 고대 동북아시아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전으로서의 『만엽집』
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 만엽집 / 유랴쿠 천황 저 고용환, 강용자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11.21
* 한국어역 만엽집 / 이연숙 저, 박이정, 2014.12.02
* 만엽집 읽기 / 강용자 저, 세창출판사, 2013.04.25
* 또하나의 만엽집 / 이녕희 저, 고려원, 198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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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에 대한 기록은 <三國史記>와 <三國遺史> <均如傳>에 나와
월명사의 제망매가, 백제 무왕(서동)의 서동요 등
* 鄕歌及ぴ(및) 吏讀の硏究 / 小倉進平(오꾸라 신뻬이), 1929년
* 朝鮮古歌硏究 / 양주동, 박문서관, 1942년
* 麗謠箋注 / 양주동, 1947년
* 鄕歌麗謠新釋 / 池憲英, 정음사, 1947년
* 향가·여요의 현대성연구/ 윤경수, 집문당, 1993년
* 고려 향가 변증 / 박재민, 박이정 출판, 2013년
만요슈(万葉集 まん.よう.しゅう)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에
걸쳐서 만들어진 책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고대 일본의 가집(歌集)
입니다. 나라(奈良) 시대의 중국식 문화 유행기의 일본의 전통적
예술작품입니다. 일본어의 한자가 신자체화 되기 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원래표기는 '萬葉集'이지만, 신자체화 뒤로는 '万葉集'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성립은 759년 이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본 천황, 귀족
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신분의 사람까지, 여러 신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읊은 노래 총20권 4500편 이상을 모은 것입니다. 4세기
부터 8세기까지 약 450년간 불린 노래 4536수가 수록되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기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황부터 서민까지
각양각색의 삶과 감정을 담고 있기에 일본인의 정신적 고향이라
할 만합니다. 이 당시에는 일본의 자가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의 音과 訓을 빌려서 "만요가나"로 기록했습니다.
'만요 가나'[萬葉假名]라는 독특한 문자 체계는 중국 한자의 발음
과 뜻을 빌려서 조합했을 뿐 아니라, 일본어의 구문과 중국 한문
의 구문을 뒤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낳았고 일부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 시가집에 수록된 대
표적인 시인으로는 오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 가키노모토
노 히토마로[杮本人麻呂], 야마노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 등을
들 수 있으며 모두 8세기에 활동한 시인들입니다. 구성·가제(歌
題)·가형(歌形) 등에 중국 문화사상의 영향이 보입니다.
가장 훌륭한 영역본은 H. H. 폰다에 의해 1967년에 출판되었습
니다.
‘만요슈’의 의미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 하나는 '온갖 말(万の言の葉)'을 모았다는 뜻이라고 하는 설로,
'수많은 말(多くの言の葉):노래를 모은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며,
(2) 그 외에도 '오랫동안 전해져야 할 노래 모음'(契沖 게이추나
鹿持雅澄 가모치 마사즈미)이라고 하는 설,
(3) '葉'을 그대로 나뭇잎이라고 해석해서 '나뭇잎을 노래에 비유
했다'는 의미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4) 만요슈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고지키의 서문에 "後葉 のちのよに流 つたへむと欲ふ"라고 되어
있듯이, '葉'을 '世'의 의미로 받아들여 '먼 훗날까지 오랫동안 전
해져야 할 노래 모음(万世にまで末永く伝えられるべき歌集)'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요슈의 저작편찬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먼저 칙찬설(勅撰說; 천황의 칙명으로 편찬했다는 설),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설,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설 등, 여러 설로 나뉘어 있지만,
현재는 야카모치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다만 만요슈는 한 사람
에 의해서 편집된 것이 아니라 권책에 따라서 작자가 다르고,
야카모치에 의해 최종적으로 20권으로 정리되었다고 하는 설
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시가집의 저작자는
위로는 천황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 등에 이르기까지 그 작자
가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이름이 밝혀진 작자도 많지만, 작
자 미상인 경우도 그에 못지 않게 많습니다. 또한 당시 한반도
나 중국에서 건너갔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그들의 후손에 의
한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만엽집에 실려 있는 작품을 내용적으로 보면,
주로 연애를 노래한 상문(相聞)이 있고,
또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만가(挽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속하지 않는 노래를 모은 잡가(雜歌)도 있
는데 여기에는 천황의 행차(行次) 등을 읊은 노래가 들어 있습
니다.
표기는 한자로만 쓰여 있으나, 그 어순은 주어ㆍ목적어ㆍ동사
와 같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일본어 어순과 같다고 보
면 됩니다. 또한 표기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즉,
한자의 훈독(訓讀)으로만 되어 있는 것, 한자의 음독(音讀)으
로만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을 바람'을 뜻하
는 '아키카제(あきかぜ)'를 '秋風'으로 표기한 것은 전자에,
'安伎可是'로 나타낸 것은 후자에 각각 해당합니다. 따라서
만엽집의 표기 방식이 신라향가의 표기 방식과 비슷하므로 이
둘은 종종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만엽집>은 <겐지이야기(源氏物語)>와 더불어 일본인의 절대
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작품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우리
나라의 KBS에 해당하는 NHK(일본방송협회)의 '인간 강좌'와 같
은 방송 교재가 만엽집에 관한 특집을 종종 다룬다든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강좌에 만엽집에 대한 강의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엽집은 <일본문화의 위대한 유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사를 보건대, 7~8세기와 같은 이른 시기에 만엽집과 같은
시가집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뿐이라는 것은 '일본 문화의 위대
한 유산'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편찬된 후 1천여 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었던 만엽집은 언제 누구에 의해 우리나라 일반독자
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을까
그것은 이영희씨가 이 시가집에 실려 있는 노래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의 집필 목적을 다음과 같
이 적고 있습니다.
" 8세기 초에 나온 일본 고전을 우리 힘으로 다시 해독해 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고대어를 재구성하고, 한 일 고대 교류사
를 새로이 하는 것이다. 우리말과 우리 역사의 보물 창고는 일본
에 있다. 이것을 언제까지 방치하여 둘 것인가? "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가 화제가 된 이유는
첫째, 이영희씨는 고대 한반도에서 쓰였던 말로 『만엽집』을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해석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만엽집의 해석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예가 '치하야부루(知波夜
夫流)'. 이 어휘는 권2에 처음 등장하며, 『만엽집』에서 총16개
가 보입니다. 일본의 연구자는 이 말을 '힘이 세고 난폭한 모양'
으로 풀고 있는 반면, 이영희씨는 '왕 베어 버려' 또는 '남근 베어
버려'로 해석합니다. 그는 고대 일본어인 '치'는 고대 한국어에서
'왕' 또는 '남근'의 뜻이었고, 고대 일본어인 '하야부루'는 전라도
방언인 '~해부르(=해버려)'가 변한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
나 이와 같은 이영희씨의 만엽집 해석에 대해 성신여자대학교의
박일호 교수는 회의적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출판된 『국문학 해
석과 교재의 연구』(1996)에서 이렇게 지적하면서 이영희씨의
견해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 현대 한국어의 음(音)을 고대 일본어의 음에 대응시킨다든지 한
국어의 음과 일본어의 음을 혼용하여 훈독을 하는 등, 언어학적인
규칙(rule)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서적–이영희씨의
『또 하나의 만엽집(もう一つの萬葉集)』 등-은 단지 문자의 기원
이나 한자의 구성 원리를 살펴서 거기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덧붙
이기만 함으로써 언어의 의미를 확대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하지
만 이것은 해석이라기보다는 연상과 유추에 의한 창작에 지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엽집에는 우리말의 '가을바람(秋風)'에 해당하는
'아키카제(あきかぜ)'라는 말이 56개 정도나 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쓰인 적지 않은 노래는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하여 만나
지 못하는 이성 혹은 죽은 배우자에 대한 그리움을 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의 노래가 신라 시대의 향가에도 보입니다.
월명사가 죽은 여동생의 명복을 빌면서 극락세계에서 왕생(往生)
하기를 염원한 작품이라는 "祭亡妹歌"가 바로 그것입니다.
생사(生死) 길은 /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
나는 간다는 말도 / 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온저. /
아아 / 미타불(彌陀佛)에서 만날 나 /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한편, 이상과 같은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한 서정성은 중국의 6조
(六朝)나 당나라 초기의 한시에서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고대 동북
아시아의 세 나라는 '가을바람'을 매개로 한 서정성을 공유하고 있
었다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만엽집』에 실려 있는 노래
들은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성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문화공동체로서의 고대 동북아시아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전으로서의 『만엽집』
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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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엽집 / 유랴쿠 천황 저 고용환, 강용자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11.21
* 한국어역 만엽집 / 이연숙 저, 박이정, 2014.12.02
* 만엽집 읽기 / 강용자 저, 세창출판사, 2013.04.25
* 또하나의 만엽집 / 이녕희 저, 고려원, 198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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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에 대한 기록은 <三國史記>와 <三國遺史> <均如傳>에 나와
월명사의 제망매가, 백제 무왕(서동)의 서동요 등
* 鄕歌及ぴ(및) 吏讀の硏究 / 小倉進平(오꾸라 신뻬이), 1929년
* 朝鮮古歌硏究 / 양주동, 박문서관, 1942년
* 麗謠箋注 / 양주동, 1947년
* 鄕歌麗謠新釋 / 池憲英, 정음사, 1947년
* 향가·여요의 현대성연구/ 윤경수, 집문당, 1993년
* 고려 향가 변증 / 박재민, 박이정 출판,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