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오빠생각> 이야기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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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1 05:08
동요 오빠생각과 뜸부기 이야기
. 동요 <오빠 생각>
최순애 작시 / 박태준 작곡
1.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2.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작시자 최순애(1912~1998)는 수원태생으로
겨우 12살때인 1925년 방정환이 낸 <어린이> 잡지에
오빠생각이 동시 입선작으로 실렸습니다. 이 동요가 작곡되고
불리던 시기는 한국이 일제에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인 최순애의 나이 터울 많았던 오빠 최영주
는 계몽운동을 했던,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동생 최순애가 기다리던 수원 고향집으로는 거의 올 수가 없
었고, 최순애는 그런 오빠를 걱정하고 그리는 마음을 담아서 이
가사를 썼습니다. 결국 오빠 최영주는 안전히 동생 곁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객지를 떠돌다가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최씨는 "고향의 봄"의 작시자인 이원수 선생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음악회에서 가끔씩 만 나는 이영옥님이
이 두분 사이의 큰 따님입니다. 이후 박태준선생이 이 동요
시에다 가락을 붙여 이 동요곡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노래가 일본 노래와 비슷하다
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런 사단의 시비곡절의 진상은 대략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온 바로는 우리나라 동요의 시원은
윤극영선생의 <반달 :1924년> 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노래
는 중국의 음악교과서에도 "小白船"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린이 잡지에 실린 첫동요는 방정환 동요
시에다 정순철이 작곡한 <형제별:1923년>이라고도 합니다.
문학이나 예술의 여러 장르에서 그 시작이 다 그렇듯이 동요
의 요람기에는 창작보다는 번역과 飜案曲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여건아래 탄생한 방정환-정순철의 형제별 曲은 일본 음악
가 나리타 다메소오(成田爲三, 1893~1945)가 작곡한 하마베노
우다 (濱邊の歌)이었다는 소파의 증언이 이미 있었던 작품이고
"뜸부기"로 알려졌던 최순애 요로 박태준이 작곡한 <오빠생각>
도 일본의 히로다류타로(弘田龍太郞, 1893~1952)가 작곡한
하마찌도리(浜千鳥)와 매우 비슷하다는 일부 평자가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뜸부기(뜸북새)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논에서
가끔씩 볼 수 있던 새였습니다. 아시아 동부에서 번식하고 필리
핀과 보르네오섬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납니다.
몸길이는 수컷 약 38cm, 암컷 약 33cm로, 암컷은 수컷보다 작고
이마에 붉은 판도 없습니다. 논에서 벼 포기를 모아 둥지를 틀거
나 부근 풀밭에서 벼나 풀 줄기로 둥지를 틀고, 먹이는 곤충류·
달팽이·수생동물 등의 동물성 먹이와 벼·풀·수초 등 식물성 먹이
를 먹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찾아오는 흔한 여름철새였으나 남획
과 개발에 의한 서식지 감소 등의 원인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추
었었습니다. 2005년 천연 기념물 제446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3월에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귀 여름철새 뜸부기가 최근 몇 년 새 충남 서산 천수만
일대와 강원도 제주 등지에서 한 두 마리씩 발견되고 있다는 반가
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생태계 복원에 더욱 힘을 기울여 이들 진객
들의 개체수도 늘어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릴 없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먼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많이도 불렀던 노래입니다.
12살 여자 아이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노랫말입니다.
올 구월 첫째 목요일도 예와같이
대구C.C.에서 박범철가곡아카데미 주관으로 가을 음악회가 열립니다.
올해는 대구출신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동요를 중심으로 준비합답니다.
<오빠생각>도 그 중심 곡 중 하나입니다.
박범철 교수님이 곡해석을 자주 하시는데
물론 정설이 아닌 부분도 가끔씩 있습니다.
하기야 원체 설이 많은 분야가 예술 쪽이고
특히 가곡과 가곡가사에 얽힌 설은 정설 야설을 따지는 자체가
무의할 정도로 재미난 설들이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노래가 "떠나가는 배"일 것입니다.
며칠 전 <오빠생각>노래 가사에 얽힌 박 교수 설명 내용이
정 선생님의 정설에 반해 의심스러운 부분이 들어났습니다.
박 교수님 왈,
최순애씨가 묘령의 나이에 이 시를 발표했고
당시 시단에 시체말로 쎈세이숀을 이르켰는답니다.
이 시를 접한 중견 시인인 이원수 선생님께서 본인의 연세는 고려치 않고
순진한 최순애 처녀에게 작업을 걸어서 결혼에 꼴인했다고 해서
수업받던 늙은 학생들이 탄사를 발했습니다.
이원수 시인의 시는 저도 여러 편 읽은 유명한 시인인데,
박교수 말을 빌리면 이원수 시인이 12살짜리 아이에게 수작을 거셨단 말이 됩니다.
12세에 지으신 것은 분명하고 이원수 시인과 부인 최순애씨의 나이 차가 많은 것은 정설입니다.
중간에 제법 긴 시간과 사연이 이원수 시인에게는 필요했겠으나,
중요 사실들만 추리다 보니,
이원수님께서 요사이의 실정법을 범하신 이야기 꺼리를 제공하셨네요? ㅋㅋ
모름직이 예술은 역사기록과는 조금 다르게 풀이해야 맛이 날 듯 합니다.
일제 말기 변절한 많은 예술인들을 준매국노시 하는 요즈음 추세에 저는 반대합니다.
'선구자'를 친일문제로 멀리하는 것은 소인배들의 열등감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작품은 작품대로 평가하고
인간 예술가는 한 인간으로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태준 선생의 작곡이 뛰어 났기때문에 사랑을 받는 동요가 되었습니다.
동요작시자를 소개하다 박태준선생 이야기가 빠졌습니다.
작곡가 박태준(朴泰俊, 1900.11.22 ~1986.10.20) 선생은
대구 남성로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서양음악에 일찍부터 눈떴습니다.
합창 지휘자이며 서울여전, 연세대에서 오래 교수를 지냈습니다.
작품으로 가곡 "미풍"(1922) "아,가을인가"(1939) "집생각"(1970),
동요 "가을밤"(1920) 등과 성가 "부활"(1935) 등이 있습니다.
현재도 애창되는 창작동요는 "가을밤"(윤복진 작사)·"고향하늘"
(윤복진 작사)·"누나야 보슬보슬 봄비 내린다"(윤복진 작사)·"등대"
(윤복진 작사)·"말 탄 놈도 꺼떡 소 탄 놈도 꺼떡"(윤복진 작사)·
"스무하루 밤"(윤복진 작사) "오빠 생각"(최순애 작사)·"종달새"
(윤복진 작사) 등이 있습니다. 박태준의 작품에는 위와 같이 친구
윤복진의 가사로 동요작품이 많았는데 윤복진의 월북으로 금지되어
오다가 1988년부터 해금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박태준선생에게는 앞서 말한 구설수도 있지만
나운영선생과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연과 진상인 즉슨 이런 일도 있습니다.
나운영 작곡의 <아! 가을인가>는 나운영 작사로 나온 데도 있고
작사자가 김수경으로 나온 데도 있는데 이것은 월북 작가 윤복진의
필명인 김수향(金水鄕)을 한자를 잘못 읽어 김水卿으로 된 것인데,
월북 작사가의 노래가 금지곡이 된 상황에서도 다행스럽게도 살아
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인 즉슨 김수향은, 김해경이 李箱의
별명을 가졌듯, 월북 작사가 윤복진의 필명었는데도 월북작품의
금제조치때 사전 조사에서 김수향이었더라면 사정없이 금제되고
말았을 것을 김수경이었기때문에 검열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친숙히 불러온 이 노래
는, 이런 사실말고도 작곡자가 박태준선생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두분의 생몰년대를 알아보니
늙은 이가 미성년자를 희롱하는 처지는 아닌것 같습니다.
이원수선생은 1911~1981
최순애여사는 1912~1998년 사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