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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진달래에 얽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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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중하 (연세대 중문과 교수)

가곡이건 대중가요건 우리 시사에서 노랫말로 만들어져 가장 널리 불리는 시인은 김소월이 꼽힌다.
또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라는 소월의 `진달래 꽃' 한 구절을 암송치 못하는 이는 드물 게다.노래 불리고 암송되는 것은 그만큼 소월의 시가 우리의 입 장단에 맞게끔 조율되어 있는 까닭이다.시란 본시 입으로 읊조리면서 음미하게끔 만들어진 장르가 아니던가.하지만 인간의 신체란 입 따로 몸 따로 놀도록 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닌지라,노래부르다가 보면 몸짓이 절로 뒤따르게 되고,몸짓 끝에는 기어코 노래가락이 어우러져야 제격이겠다.아마도 입과 몸을 조종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거기에 맞추도록 된 모양이다.

그 무엇인가를 굳이 일컫자면 마음 속의 가야금,곧 심금(心琴)이 될 듯하다.예컨대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 모습을 보았다 치자.모름지기 그 마음속의 가야금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그 마음 가야금의 줄,곧 심현(心弦)은 마땅히 그 아름다운 이를 노래부르고 이름부르고 싶어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다.마치 봄바람이 버들가지에 불어 새 싹을 티우듯,소월에게도 그런 임,노래를 불러주던 임이 있어,소월로 하여금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라고 토로하도록 했다.

그렇게 노래불러 이름부를 대상을 `임'이라 명명한 데에는 우리 노래가락의 아련한 추억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길 떠난 `임'을 그리는 `가시리'는 물론이고,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가운데 `이 몸 삼기실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하는 구절이나,혹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내 님을 그리△·와 우니다니 산 접동새 난 이슷ㅎ·요이다”라고 우리말로 읊어진 고려조의 `정과정곡(鄭瓜亭曲)' 역시 임 그리워 임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자신의 곁에 부재하는 임을 그리워 하며 임을 부른 노래의 연원을 훑어가다보면 이웃 나라 중국의 옛 시인 굴원(屈原)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굴원의 `이소(離騷)' 혹은 `사미인'이라는 노래가 바로 임을 그리는 여인네의 노래에 다름아닌 것이다.송강의 `사미인곡'과 굴원의 `사미인'은 같은 곡조의 다른 변주인 셈이다.

정송강이나 정과정 혹은 굴원에게 있어서 미인으로 그려지는 임은 예사 인물이 아니라 임금이다.산하된 자가 임금에게 버림받아 자리에서 물러나 한갓진 곳에 외로이 떨어진 채 임이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노래인 것이다.굴원이 미인이라 불렀던 초나라 회왕은 미정(美政),곧 아름다운 정치를 추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임금이라면 마땅히 아름다운 정치,충실한 다스림을 펼치는 인물이어야 함에도,주변에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는 못된 자들은 어느 때고 있기 마련이던가.임 그리워 임 부르는 자신과 임 사이를 가로막는 사특한 자들이 있어 하늘을 향해 임을 부르고 하늘을 향해 임을 묻는 노래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임을 부르는 시인의 목소리는 공통된 음색을 지닌다.그것은 시를 읊조리는 화자가 한결같이 여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사미인곡'에서 `연지분 있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 할고'라는 구절에서 송강은 어김없는 여성 화자로 변환되는 것이다.임금된 자가 남성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그 맞은 편 신하된 자리는 스스로를 여성의 자리에 있게 하는 `미학'이 음색의 변화를 낳게 했을 게다.구중궁궐 한 가운데 임금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 임금은 나라의 으뜸가는 양(陽) 노릇을 하게끔 좌정시킨 것이 동아시아의 고유한 시스템이라 보는 것이다.

소월의 시편들 거개가 여성 화자의 음색으로 노래불리워지는 것은 실로 유서깊은,다시 말해 동아시아의 고유한 전통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 모른다.`진달래꽃'에서 소월은 동아시아 여성 특유의 음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고 한 여인네의 목소리에는 귀기마저 서려있다.진달래,그 자주빛 꽃잎을 임 가시는 길에 아름따다 뿌려 놓고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는 주문을 걸면서 눈물을 머금는 여인네에게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어찌 단순히 애상조의 엘레지일손가.그 여인네가 안으로 새기는 눈물에는 자칫 못보게 될 임의 갈 길에 대한 축복과 회한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하나로 맺혀 응어리져 있는 것이다.그렇게 맺힌 것이 바로 영변 땅 약산에서 피빛을 닮은 진달래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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