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잊어[김소월 시/하대응 곡]
김소월(1902, 평북 정주출생)은 우리시단에서 대표적인 한과 애수를 품은 서정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못잊어」, 「금잔디」,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등300여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으며 많은 시들이 가곡으로 남겨져 불리워지고 있다. 32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를 기리는 시비가 남산에 세워져 있으며 남산의「소월로」는 1970-80년대에는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찾았던 곳이다.
1923년에 발표한 「못잊어」에서는 ″그런데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그런데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오리다″와 같이 체념하다 한편으론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와 같이 강한 미련을 남기고 있다.
소월이 우리에게 알려진 큰 계기는 그가 오산중학을 다닐 때 그의 스승이었던 김억(1893-?)을 만나면서부터 이다. 김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곡「동심초」의 작시자이다. 원래 「동심초」는 중국 설도(薛濤 768 - 831)의 漢詩인데 김억이 번역하여 김성태씨가 곡을 붙였다.
아무튼 소월의 시적 재능을 꿰뚫어 본 김억의 덕분에 소월은 1920년에 「창조」에 '낭인의 봄'을 1922년에 「개벽」에 '금잔디'. '진달래꽃' 등을 발표하여 그의 시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못잊어」는 김동진과 하대응선생이 가곡으로 작곡하여 발표하였는데 이곳에서는 하대응의 작품을 소개한다.
하대응은(1914-1983) 강원도 홍천출생이다. 원래 그는 작곡가라기 보다 성악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못잊어를 작곡한 것은 6.25후(1954년경) 대구 효성여대에서 강의를 하던 때이다.
그의 집 근처에 '수성못' 이라는 호수가 하나 있었다. 하대응이 저녁무렵 그 호수를 거닐다 호수의 호젓함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못잊어 하다가 소월의 시가 생각났고 그 감정이 작곡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는 「못잊어」, 「금잔디」,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등300여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으며 많은 시들이 가곡으로 남겨져 불리워지고 있다. 32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를 기리는 시비가 남산에 세워져 있으며 남산의「소월로」는 1970-80년대에는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찾았던 곳이다.
1923년에 발표한 「못잊어」에서는 ″그런데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그런데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오리다″와 같이 체념하다 한편으론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와 같이 강한 미련을 남기고 있다.
소월이 우리에게 알려진 큰 계기는 그가 오산중학을 다닐 때 그의 스승이었던 김억(1893-?)을 만나면서부터 이다. 김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곡「동심초」의 작시자이다. 원래 「동심초」는 중국 설도(薛濤 768 - 831)의 漢詩인데 김억이 번역하여 김성태씨가 곡을 붙였다.
아무튼 소월의 시적 재능을 꿰뚫어 본 김억의 덕분에 소월은 1920년에 「창조」에 '낭인의 봄'을 1922년에 「개벽」에 '금잔디'. '진달래꽃' 등을 발표하여 그의 시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못잊어」는 김동진과 하대응선생이 가곡으로 작곡하여 발표하였는데 이곳에서는 하대응의 작품을 소개한다.
하대응은(1914-1983) 강원도 홍천출생이다. 원래 그는 작곡가라기 보다 성악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못잊어를 작곡한 것은 6.25후(1954년경) 대구 효성여대에서 강의를 하던 때이다.
그의 집 근처에 '수성못' 이라는 호수가 하나 있었다. 하대응이 저녁무렵 그 호수를 거닐다 호수의 호젓함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못잊어 하다가 소월의 시가 생각났고 그 감정이 작곡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