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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2)

정덕기 11 2352
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2)

 



제2장 정확한 화성(1)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2009년 6월경 우리가곡의 전도사를 자처하시던 성악가 한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신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속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이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분이 안식년으로 독일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의 이야기다. 독일에서도 평소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어 그 딱딱한 독일 사람들에게 우리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정하고 연습도 충분히 해두었다. 그러나 그 연주회는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께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 독일에 있는 한국 제자들이 극구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곡으로 연주회를 열면, 화성도 맞지 않는 어설픈 우리가곡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한국을 망신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어느 성악과 교수에게 교과과정에 이태리가곡, 독일가곡, 프랑스가곡, 영미가곡은 넣으면서 왜 정작 우리가곡은 넣지 않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이태리가곡은 우리가 이태리 사람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고, 독일가곡은 독일 사람이 제일 잘할 터인데 우리는 우리의 혼과 얼이 깃든 우리가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화성도 엉망이고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도 문제지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우리 작곡가들도 문제다. 이제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도 100년이 훌쩍 지났다.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작곡가들에게 사명이 떨어졌다.

  이미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영혼으로나마 독일에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리가곡이 교과과정에 당당히 들어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보면 자기 나라 말로 된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불행한 성악가들에게 정서에도 맞지 않고 그저 흉내만 내는 외국가곡에서 벗어나 우리의 정서로 작곡된 우리 것을 하게 한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화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 있다 하더라도 문법이 엉망이라 무슨 뜻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글을 좋은 글이라 하겠는가. 화성은 문법과 비슷하다. 그래서 작곡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장 기초인 화성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후기낭만시대까지의 어법, 즉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이 아닌 현대음악을 한다고 해서 이것을 모르고 한다면 과연 올바른 음악이 나올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하루아침에 어디에서 뚝딱 떨어지는 순간의 쇼가 아니라 적어도 천년을 넘게 흘러온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1) 이론과 실제,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를 다루고 다음호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이론과 실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을 모시고 동료학생들과 함께 그룹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께서 어떤 한 동료의 작품을 가리키면서 왜 화성법대로, 이론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썼느냐며 책망하신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어떻게 곡을 쓰는데 화성법대로만 쓰느냐며 이론은 이론이고 실제는 실제 아니냐며 항변을 하였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그럼 내기를 하자며,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집을 보시고 이 소나타집 속에 이론에 맞지 않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한부분이라도 있다면 내가 오늘 저녁을 내고, 만약 한부분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 동료학생에게 저녁 살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자 동료학생은 한참이고 소나타집들을 뒤지고는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모차르트 소나타집에 있는 아래의 부분을 지적하였다. (악보 1)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두 번째 마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그냥 보기에는 베이스의 A음이 오른손 선율 G#음과 엄청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어 아무렇게나 씌어져 화음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이 부분이 얼마나 정교하게 씌어져 있는지 설명해주셨다. 베이스에 쓰인 A음은 첫 번째 마디와 세 번째 마디에 I도 화음의 A음과 연결되는 비화성음인 저속음(Organ Point)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따라서 화음은 V7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 하시는 말씀이 대가들은 이렇게 많은 곡을 쓰면서 이론에 어긋나는 화음이 한 군데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짧은 곡 하나를 쓰면서 어떻게 이론과 상관없는 부분이 그렇게도 많은가 라고 말이다. 그 날 저녁식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나는 그 때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면 안 되는 거구나. 이론을 배우는 목적은 실제에도 그대로 적용하기위한 것이지 이론 따로, 실제 따로가 아니구나!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

 



  우리가 낭만시대 이전까지의 화성을 이야기할 때 기능화성이라는 말을 쓴다. 기능화성이란 으뜸화음은 으뜸화음의 기능을 하고 딸림화음은 딸림화음의 기능을 하고 버금딸림화음은 버금딸림화음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같은 화음일 경우와 프레이즈가 끝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각자의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화음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손가락을 예로 든다면 손가락은 뼈는 뼈대로, 핏줄은 핏줄대로, 신경은 신경대로, 살은 살대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서 움직이고 자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연결되지 않고 끊어져 있다면 그 손가락은 살아서 움직이는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화음과 화음은 서로 연결되어야 살아서 움직이며 서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한마디로 대답한다. 클래식은 화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화음의 나열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만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작곡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아니겠는가. 대중음악은 C코드 G코드는 있어도 그저 그것을 나열할 뿐이고 코드를 연결하는데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클래식음악은 물론 코드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연결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화음의 연결이 몇 가지 이유로 이해되지 못하여 방치되고,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곡을 쓸 때 항상 화성법풀이에서처럼 4성부로 작곡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4성으로 되어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단성부로, 또는 2성, 3성으로 작곡하기도 한다. 4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을 쓰거나 36성부 합창곡이라 하더라도 대위법 음악이 아니고는 4성부 이상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성부가 많은가. 36성부가 있다고는 해도 4성부만 독립적인 성부이지 나머지 성부는 다 중복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음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병행과, 병행이 아닌 중복을 혼동하는 것이다. 중복이란 독립성이 없다는 뜻이다.

  단성부란 독립적인 성부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악기를 동원하고 중복하여도 독립적인 선율이 하나뿐이면 단성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단성부로 시작한다. (악보 2)



 



 



  전체 현악기의 합주와 클라리넷으로 위 선율을 함께 연주하지만 이 베토벤의 선율은 단성부이다. 병행1도, 8도가 아니라 그냥 중복인 것이다. 병행1도, 5도, 8도는 다른 성부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성부에서 병행1도, 5도, 8도로 쓰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이미 같은 성부로 독립성이 없는 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끔 피아노곡에서 습관적으로 왼손을 옥타브로 중복하여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두고 학생들이 나에게 이것도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을 한다. (악보 3)



 



 



  그러나 이 경우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같이 연주하면 옥타브 연주가 되는 것처럼 2개의 독립된 성부가 아니고 단순히 한 성부의 중복이므로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성으로 작곡되어 있는 부분이라면 2성만 독립적이면 된다. 4성에서는 4성부만 독립적이면 된다. 나머지는 1도와 8도로 중복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가들도 다 이론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병행1도, 5도, 8도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여, 독립적인 성부임에도 불구하고 병행1도, 5도, 8도를 함부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곡을 쓰는 사람은 우선 지금 쓰고 있는 곡 부분의 형태가 단성인지, 2성인지, 4성인지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4성부로 작곡하는 부분에서 그 4성마저 서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화성법에서 금했던 병행1도 5도, 8도가 나온다면 화음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나열만 되어 본래 화음의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곡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성부침해와 화음의 길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왜냐하면 이것도 화음의 연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몇 가지 예외조항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성부침해를 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화음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는 펼친화음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가 없다.

(악보 4)



 







  (악보 4)에서처럼 I도 화음에서 V7도 화음으로 진행하는데 있어 (a)처럼 진행하면 성부를 침해하고 화음의 길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화음도 서로 연결도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b)처럼 V7화음에서 화성법에서 배운 대로 5음을 생략하고 진행하면 음형도 앞의 I도 화음의 모방이 되고 성부를 침범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제일 밑음부터 차례로 보면 Db은 Ab으로, Ab은 제자리에, Db은 C로, F는 Gb으로, Ab은 제자리에 화음의 길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펼친화음도 (b)처럼 화음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여기까지 제2장 정확한 화성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다음호에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제 “제발 바르게 작곡하여”우리가곡이 독일에서, 혹은 우리나라 성악과 교수들에게 조차 무시당하여 대학교과과정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음악저널 2011년 5월호)
11 Comments
luciana 2016.01.05 16:53  
악보가 뜨지 않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정덕기선생님의 의견에 저는 200% 동의합니다.
문장을 쓰는 사람이 문법에 맞지않는 문장을 쓰면 비웃음 사듯이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 있어서도 올바른 어법으로 진행을 하여야 한다 생각합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화성 진행 하는 것을 운전할 때 차선을 제대로 지키면서 가는 것이라고 묘사를 하는데요.
솔직이 말해서 19세기 이후 복잡해지는 화성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현대음악에 매진하면서
스스로를 엄청나게 고차원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 착각하는 분들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제 주위 작곡하시는 분 90% 될 정도!
저 역시도 대학 때 현대음악으로 들어가니 음악이 전부 장난처럼 쉬워져 버리더군요.
그런 음악에 빠졌다가 유학가서 새로 화성이 올바르게 가는 길을 교정받느라 진땀 흘렸습니다.
현대음악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면.....
화성법을 통달하고 난 후에 쓴 외국인의 음악은 현대음악이라도 부드럽고 개성적이며 아름답습니다.
반면....우리나라 사람들이 발표하시는 현대음악은 솔직이 말씀드려 거칠기 짝이 없고 조잡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어느 쟝르를 하든간에 전조과정과 연속7화음, 변화화음 등 근대 화성어법을 충분히 학습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더우기 인체가 악기인 성악곡을 작곡할 때에는 화성법에 더욱 더 충실하여 매끄러운 진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다박원자 2016.01.05 19:52  
참으로 오랜만에 귀한 글들을 올려주신
정덕기 교수님, 임수철 작곡가님. 김균태 선생님. luciana님(누구신지 저는 알고 있음) 감사합니다
그저 가곡을 사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전문가들의 귀한 강의를 들으니 저절로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집니다.
올려주신 글들을 읽어내려갈 때 저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빨라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의 장이 되는
 내 마음의 노래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들을 많이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랩니다.
임수철 2016.01.06 10:42  
저는 개인적으로 작곡가 정덕기 교수님을 참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같은 작곡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로 저보다 작품을 잘  쓰시고, 또 많이 쓰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가곡에 대한 견해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서 댓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제 주장이 유일무이한 정답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저의 두서없는 음악적 견해를 말씀 드릴까 합니다.


먼저, [한국가곡]을 [우리가곡]과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에 대해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한국가곡은 주지하다시피, 서양음악이 수입된 이후에 생겨난 양식의 노래입니다.
아주 부정적으로 얘기하자면, 한국가곡은 서양가곡의 짝퉁가곡입니다.
그래서 한국가곡은 비록 한국 사람이 작사 작곡을 하고, 한국 사람이 노래를 부르지만,
서양악기인 피아노로 반주하고, 작곡하는 방식도 거의 서양식이며, 노래하는 성악가도
서양식 발성으로 노래합니다.
그래서 어설픈 화성 처리 문제도 생깁니다.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수입 된 지 100 년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이 100 년이라는 세월은 5 천 년 역사에 비하면 정말 짧은 세월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밤낮으로 듣는 음악이 우리 국악이 아닌, 서양음악이지만
우리 몸속에는 여전히 국악적인 DNA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음악 문법 중의 하나인 화성 처리에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화성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화성을 인지하는 음악 생태적 청각의 문제입니다.
즉, 같은 화성을 들어도 한국 작곡가와 화성의 본고장 서양 작곡가는 서로 다르게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서양 작곡가에게는 그들의 화성법칙에 벗어나게 연결된 화성이 불편하게 들리지만,
상당수의 한국 작곡가에게는 그게 별로 불편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서양의 화성이라는 음악 문법에 생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 작곡가가 쓴
한국가곡이 화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과연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가곡의 어설픈 화성 처리보다는 가사 처리 문제를 더 지적하고 싶습니다.
화성은 어차피 본래 우리 음악 문법이 아니라서 완벽하게 처리를 못해도 용서가 되겠지만,
한국인 작곡가가 우리 언어로 된 가사를 제대로 처리 못하는 것은 진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음악 전문가들이 한국가곡에 대해 음악적인 것에 대해서만 지적을 하지(그것도 주로 서양음악적인 기준에서만)
어학적 관점의 가사 처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도, 학문적으로 지적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 귀에는 어설픈 화성 처리보다는 잘못된 가사 처리가 훨씬 불편하게 들립니다.
번역 가사 같은 한국가곡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컨대, 김동진 선생의 <가고파>의 경우, 가사만 빼고 연주하면 가락이 정말 미려하고 유려한데,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면 마치 번역 가곡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수인 선생의 <별>은 음악의 절(節)과 가사(詩)의 절이 좀 불일치합니다.
한 마디로, 한국작곡가들은 우리 모국어를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전통 한국 민요나 잡가를 들어보시면, 한국어 가사 처리의 모범 답안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표준어 가사를 사용하는 경기 민요나 잡가가 좋을 것 같습니다.
(남도 민요나 서도 민요는 그  지역의 방언이 많이 들어가므로 가사 파악에 조금 어려움이 있을 듯 싶습니다.)

또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왜 한국가곡은 한결 같이 화성을 전제로 하는 호모포니 스타일로만 작곡해야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우리 본래의 전통 가곡은 헤테로포니 스타일로 반주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점 때문에, 또 워낙 느린 템포적인 특징이(Largo보다 대략 2배 정도)
통상적인 개념의 가곡과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가곡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 드립니다만, 우리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가장 모범적인 예술 음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아니 착각하고 있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음악 중에 하나일뿐이며,
더구나 도덕적,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클래식 음악이 지고지순한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클래식 음악이 왜 도덕적으로 지고지순한 음악이 아니냐?
그리고 왜 우리 한국에서 국악이 마이너 음악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서양음악이 차지하고 있느냐?
등등 수많은 음악적 의문은 음악이라는  현상 그 자체만으로는 본질적인 원인을 알 수가 없고,
음악심리학적, 정치학적, 경제학적인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므로,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기회가 되면 다음 번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가곡의 문제가, 화성 처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성적인 감각을 터득하는 데 피아노에만 의존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피아노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악기이지만, 결코 이상적인 악기는 아닙니다.
평균율적인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시나위합주 음악이 조율이 엉망으로 된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처럼
무척 불편하게 들리듯이, 아주 조율이 잘 된 피아노이지만,
그 피아노의 음정이 불편하게 들리는, 국악 순정률적인 음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음악은 언어 문법적으로 봤을 때,
그 품사가 고정된 명사(名詞)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동사나 형용사라는 사실이며,
한국가곡의 문제는 우리 전통 가곡을 바탕으로 해서 풀어가야 그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재즈 음악에서는 재즈 화성이 따로 존재하듯이,
미래의 한국 음악에서는 한국적 화성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화성의 본고장 규칙만 유일한 정답이라고 하면,
한국은 유럽의 클래식 음악 중개소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글을 좀더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의 음악적 견해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좋은 의견을 올려 주신
정덕기 교수님, L선생님, 박원자 선생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luciana 2016.01.06 22:21  
무엇이 옳으냐의 문제는 각자 추구하는 방향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노가 결코 이상적인 악기가 아니라 언급하셨는데 그건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신 방향인것이구요.
재즈화성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셨지만 재즈화성도 기본적 화성적 틀에서 7화음 등이 더 덧붙여진 것이고
재즈화성에도 엄밀히 진행하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이후 현대음악이 생겨나기 직전의 색다른 화성에도 규칙이 있지요.
유럽에선 Armonia Moderna라는 이름으로 엄격하게 공부를 하고 난 후에 각자 추구하는 방향으로 갑니다.
우리나라에선 이 과정이 전혀 없습니다....솔직이 고전파 화성에서 초기낭만파 화성도 제대로 못다루고 그냥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적 화성이라고 하셨는데 한국적 화성이라는게 꼭 도레미솔라....음계에서 파생된 것으로만 이루어진 화성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전통가곡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음악이라면 전통가곡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지만
국악악기 반주로 하는 전통 가곡의 종류는 이미 국악하시는 분들 쪽에서 아주 많이 활발히 작곡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쪽에선 그런 형태의 음악을 뭐라 이름하는지는 미처 못들었지만 국악반주로 된 가곡 형태의 곡들 이미 아름다운 곡들이 많이 존재하더군요.
국악악기 반주로 된 가곡을 쓰면 조성적 제한이 있다는 것은 잘 아실것이구요.

대다수 한국가곡이 다양한 조성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피아노 반주를 덧붙여 작곡하고 연주하는 쟝르이므로
피아노 스킬과 화성진행, 조성 변화 등의  문제는 매우 엄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한국가곡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불려지는 그런 좁은 세계 안에 머물러있길 원치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기량은 세계적입니다.
이 세계적 많은 성악가들이 외국에서 한국가곡이라 이름하는 곡들을 연주하게 될 때에 부끄럽지 않게, 자랑스럽게 내어놓을
뛰어난 품질의 한국가곡이 많이 작곡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가곡집을 구해서 보았는데 그 사람들의 작품은 화성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습니다....하나도 허투른 곡이 없어요.
그렇다고 일본가곡에서 서양의 냄새가 난다? 전혀 아닙니다....일본에서 일본가곡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던 어느 성악가가 그러더군요.
철저하게 일본적이다 라구요. 
이전에도 썼듯이 똑같은 음계, 화성 규칙을 사용하는데도 이태리는 이태리 냄새가, 독일가곡은 독일 냄새가....
민족성에 따라 그 나라사람들의 특성이 가곡에 그대로 반영되어있습니다.
일단 공부할 건 제대로 하고나서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작품을 쓴다면 한국인의 DNA가 어디 가겠습니까?

답글을 죽 읽어보니 임수철선생님과 저와는 마인드가 아주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지요.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추구하시는 방향대로 작품을 쓰시고 저는 저대로 생각하는 바대로 쓰고....
다른 분들은 또 다른 분들의 개성대로 쓰면 언젠가, 누군가의 작품은 세계인들이 즐겨부르는 가곡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도 제가 생각하는 바를 처음으로 인터넷 공간에 올려보게 됐네요....다 임수철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임수철 2016.01.07 10:21  
먼저, 두서없는 제 글에 정성껏 답글을 올려 주신 L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한때는 화성학 공부에 매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음악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음악학도로서 민족적 음악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클래식음악을 그냥 보통 명사적 개념의 [음악]으로만 인식했었는데,
고유 명사적 개념의 [이 세계에 무수히 존재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 중 그 하나에 속하는, 서양 클래식음악]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즉, [음악=클래식음악]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입니다.

그래서 클래식음악과 화성학 공부만으로는,
한국인 작곡가로서, 나만의 작곡 언어는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악적인 방황도 많이 했고, 한때는 작곡을 거의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음악적 재능에 대한 고민?
이건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한 고민이죠.
음악에 대한 가치관적, 사상적, 철학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수제천], [보허자], [낙양춘], [전폐희문] 등과 같은
서양의 폴리포니나 호모포니와는 전혀 다른 헤테로포니 형태의 전통 국악곡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저의 음악적 가치관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서양음악 공부는 참고할 정도로만 하고 국악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화성학이라는 것은 7음 음계의 장단조 체계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음악 문법입니다.
하지만 전통 국악에서는 서양 음악과 같은 개념의 음계가 없습니다.
흔히, 도레미솔라니 솔라도레미니 하는 것은 음계가 아니라 음 조직일 뿐입니다.
굳이 서양식 음악 용어를 끌어다 붙이면, 음계라기 보다는 [선법]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국악의 이러한 음조직을 서양의 음계 개념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국악을 화성화 하는 데 오류가 생깁니다.
게다가 잘 아시다시피, 국악의 음조직에는 솔라도레미, 도레미솔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통 화성학의 장단조 음계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전통 국악 방식의 작품은 서양식 개념의 화성학을 적용하는 것 보다
헤테로포니 형태로 작곡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각 악기들의 음색을 더 살릴 수가 있고, 그게 바로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적 개념의, 음고(音高) 조화가 아닌,  음색 조화에 의한 화성입니다.

하지만, 요즘 음악인들이나 애호가들은 화성 음악에 워낙 강하게 중독(?) 되어 있기 때문에
화성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새롭게 창작되는 국악곡에서는 활용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성학의 본 고장에서 공부하고 오신 L선생님과 같은 화성학 전문가에게 감히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작곡가로서 음악적 사명감을 가지고 국악적 화성, 아니 한국적 화성학 체계에 앞장 서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말씀 대로, 재즈 화성도 결국은 전통 화성의 응용이라고 하셨으니까
선생님께서 충분히 한국적인 화성을 체계화 하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체계화된 한국적 화성으로 훌륭한 성악곡도 많이 작곡하셔서
선생님께서 아까워하셨던, 기량이 출중한 한국 성악가들이 세계 무대를 빛낼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양음악을 본 고장에서 배워와서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한국 음악의 진정한 음악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이 만들어 놓은 음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우리 식으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나라는 음악의 창조국이 아닌, 서양음악의 중개소밖에 안 되겠지요.

너무나도 식상한 얘기지만, 예술의 생명이라는 게 독창성, 창조성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현재 기타곡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데, 기타를 통해서 가야금과 거문고적인 음색과 화성을
창조해내려고, 부족한 음악적 재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박원자 2016.01.07 00:07  
임수철 선생님과 luciana 선생님의 답글을 읽으면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명강의를 듣게 되어서이지요.
이렇게  이론적으로 완벽한 실력과 소신을 갖추고 계시는 정덕기 교수님을 비롯하여 
두 분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인지 자랑스럽습니다.
여러 작곡가님들이 이렇게 완벽한 이론적 배경을 갖추고도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독창성을 지닌 음악을 창작하시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큰 고통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임수철 2016.01.07 11:12  
쑥스럽습니다.
제 사적인 얘기입니다만,
저는 음악인이면서도 음악 듣는 것 보다 책읽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방년? 60세입니다.) 눈이 불편해져서 장시간 독서를 못하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또 한 가지 동료 음악인들께 야단 맞을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자면,
제 개인 서재에는 음악 전공 서적보다 문학 관련 서적이 몇 배 많으며,
소설은 장편 단편 통틀어 아마 1천 편 정도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양철학서를 비롯하여 아무튼 이것저것 읽다보니 제 별명이 잡학박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분야의 사람을 만나도 기본적인 소통은 할 수가 있죠.
하지만 깊이는 없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제 밑천이 드러납니다.

연주가나 작곡가들이 실무적으로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음악 전문 서적도 나름대로 꽤 읽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서적들입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 올립니다.

[동양음악학], [음악심리학], [음악음향학], [동북아시아 음악사], [음악미학], [유가음악사상], [도가음악사상], [樂記],
[한국근대음악사], [중국고대 樂論] ,[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 [한국민족 樂舞와 예악사상],
[동아시아 미학], [고려시대 음악사상], [한국전통음악의 미학사상], [한국고대음악사 연구], [한국음악통사],  [음악과 현상],
[종족음악학], [일본음악의 역사와 이론], [여씨춘추], [중국고대 음악사고], [조선시대 음악담론],
[조선후기 음악사] 등등입니다.

감명깊게 읽은 문학 작품으로는,
이문열[황제를 위하여], 이문구[관촌수필], 이청준[침몰선], 윤후명[누란의 사랑,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송기숙[암태도], 이외수[칼, 벽오금학도], 미하엘 엔데[모모],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앙드레 지드[좁은 문, 전원교향악] ,
조지 오웰 [동물농장] 등등이며,
사회과학서로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덕기 2016.01.11 10:07  
악보가 빠져서 유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임수철작곡가님 박원자시인님 luciana작곡가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임수철 2016.01.11 12:07  
현재, 한국작곡가회 회장으로서도 작곡발전에 아주 큰일을 하고 계신 정덕기 교수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현재 우리 전통음악이나, 새롭게 창작되고 있는 국악곡에 아주 잘 맞는 한국적 화성학 체계화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그 대신 클래식 기타곡의 한국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교수님 음악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회가 닿는 대로 열심히 교수님의 작품들을 감상하겠습니다.

모범적인 가사 처리에 대해 교수님께서 예로 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제가 참 좋아하는 가곡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겨울나그네에 너무 빠져서 제가 마치 겨울나그네의 주인공처럼
우울과 고독, 그리고 절망에서 허우적댄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써니님 2016.01.25 20:54  
좋은글입니다
녹차한잔 2016.03.23 13:04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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