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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1)

정덕기 3 2005
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1)





제1장 가사와 곡의 일치성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나는 평소 관현악곡, 오페라, 합창곡, 예술가곡 등 네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작곡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관현악곡을 제외하면 다 가사가 있는 장르의 음악이다. 이것은 어릴 적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나는 가곡을 쓸 때 그 무엇보다도 온 힘을 다해 작곡에 임한다. 물론 예술가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보통 몇몇 분들은 오페라는 아주 거창하고 작곡하기도 힘들고 차원 높은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곡은 클래식에서 좀 차원이 낮은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작곡가님들 중에서도 아주 가볍게 가곡을 쓰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다. 오페라가 훨씬 대중적인 음악이었다. 방송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지금 우리가 말하는 대중음악, 즉 유행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행가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방송매체가 낳은 산물이다. 그럼 21세기 이전에는 어떤 음악이 지금의 대중음악을 대신하였는가? 오페라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들이 그것을 대신하였다. 오페라와 왈츠 곡들이 지금으로 말하면 귀족들이 즐기며 이야기하며 듣는 사교음악이며 비즈니스음악이었던 것이다. 그것에 비하여 예술가곡은 분명 차원 높은 음악을 위한 음악, 즉 음악 마니아를 위한 고급음악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적인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술가곡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리면서, 재미와 감동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갈까 하는 평소의 생각을 옮겨 적으려 한다. 우선 이 글을 쓰기 전에 우려되는 점은 혹시 누구를 비방하기 위한 글로 오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음을 먼저 밝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술가곡에 대한 생각과 함께 예술가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 제5곡 ‘보리수’와 비교하면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제1장 가사와 곡의 일치성, 제2장 정확한 화성, 제3장 주제에 의한 전개 방법, 제4장 시와 주제와 피아노와의 일치성, 제5장 국악적인 요소와 우리 가곡 등의 순으로 총 5회에 걸쳐 나누어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 가곡을 향한 나의 애정이 우리의 예술가곡을 발전시키는데 조금의 역할이라도 하였으면 좋겠다.



제1장 가사와 곡의 일치성





가사를 갖는 음악으로는 오페라, 오페레타, 칸타타, 수난곡, 미사곡, 레퀴엠, 모테트, 예술가곡 등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함축적이고 집약적인 가사를 갖고 있는 음악은 역시 예술가곡이다. 그래서 예술가곡이야말로 가사음악의 백미다. 가사를 갖고 있는 다른 음악들도 가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겠지만 특히 예술가곡에서는 더욱 더 철저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보통 가사를 생각할 때 첫째 억양, 둘째 장단, 셋째 고저, 넷째 내용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한글학자 박갑수님에 의하면 우리의 언어는 고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술가곡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시의 억양과 음악과의 일치, 시의 장단과 음악과의 일치, 시의 내용과 음악과의 일치이다.





1) 시의 억양과 음악과의 일치





이것은 우리의 언어를 사랑하여 예술가곡을 만드는 우리 작곡가들이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아니 되는 덕목일 것이다. 나는 누가 예술가곡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우선 가사와 일치하는 음악이라고 대답한다. 가사와 일치하지 않는, 그저 멜로디만 아름다운 음악은 예술가곡이 아니라 음표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국어를 사랑하는 가곡 작곡가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작곡가들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멜로디와 가사의 억양이나 장단이 서로 상반되어 충돌할 때 멜로디를 선택한다. 심지어 조금의 리듬을 바꾸면 음악 주제의 손상 없이도 얼마든지 가사의 억양이나 장단을 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가사의 억양은 배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억양과 장단을 헛갈리게 할 의도로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가곡에는 가사와 동떨어진 그런 가곡들이 너무 많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는’ 곡이 참으로 많다는 뜻이다.



초기의 가곡들을 보면 가사가 지닌 억양과 장단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우리의 음악풍토는 너무 열악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닌가.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작곡되어야 하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작곡되어진다면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방해하는 곡이 될 것이다. 물론 서양의 영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러시아어와 우리말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언어처럼 꼭 맞지 않는 경험을 나도 많이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우리의 언어가 예술가곡을 통하여 더욱 멋진 언어로 탄생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시의 장단과 음악과의 일치





또한 언어는 음의 길고 짧음, 즉 장단도 매우 중요하다. 유행가 중에 ‘안개 낀 고(高)---속도로’가 있었다. 그 때 그 ‘고’자를 그 가수가 얼마나 길게 불러재끼는지 ‘고’자를 부르고는 쉬었다가 ‘속도로’라고 발음하였다. 물론 그 때 ‘고’자는 짧아야 한다. ‘높을 고’자는 짧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말- 과 말, 밤- 과 밤, 눈- 과 눈,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舞)--학여고’를 ‘무(無)학여고’로 발음하면 그저 ‘학문이 없는 여고’가 된다. 지명중에는 ‘영(永)--천’이 있고 ‘영(榮)주’가 있다. 사람의 성 중에도 ‘정(鄭)--몽주’가 있는가 하면 ‘정(丁)약용’도 있다. 정말 잘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3) 시의 내용과 음악과의 일치





예술가곡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시의 내용과 곡과의 일치이다. 어떤 곡은 시의 내용이 슬픔으로 일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겨운 가락으로 씌어져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또 어떤 곡은 시의 내용이 쫒고 쫒기는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곡은 초지일관 너무 느린, 서정적인 멜로디로 작곡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가곡은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의 작품처럼 거의가 틀에 박힌 멜로디만을 중시하는 서정가곡이다.

물론 시가 다양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가 어떠하든 거의가 그것이 그것인, 비슷비슷한 서정가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먼저 시의 내용이 다양하여야함은 물론이다. 이제 시의 내용도 사랑, 자연, 고향, 그리움 등에서 벗어나 전쟁, 분노, 마귀, 숭고함, 약탈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예술가곡이 더욱 다양하게 발전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작곡가들도 시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깊은 감성을 우선 공감할 수 있어야 가사와 일치하는 곡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작곡되어진 가곡이 시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어떤 분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 때 그 분의 대답이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어지지만 차원을 높여 달관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며 오히려 내용이 맞지 않는 가곡을 차원 높은 가곡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일 뿐이다.





4)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통하여





이제부터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 제5곡 ‘보리수’를 분석해 봄으로써 위의 세 가지의 내용을 증명하고자 한다.

억양은 아래와 같이 되어있다.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e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ue-ssen Traum.



이처럼 중요한 명사 혹은 동사의 처음에 악센트가 어김없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ge-macht 처럼 비분리전철이 앞에 오는 경우에는 비분리전철이 악센트가 없으므로 macht가 강박에 놓이게 된다.

음의 길이도 자음이 겹치면 짧고 모음이 하나거나 h가 붙으면 길게 발음되는데 그것을 잘 지키고 있다. 그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은 감동적이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서 단 꿈을 꾸-었네.’



억양이 맞지 않게 되어있다. 그래서 원어대로 노래할 수밖에 없다. 독일가곡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베베른,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표현하는 어법과 재료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억양과 장단은 한 결 같이 일치하고 있다.



전체 가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서 단 꿈을 꾸었네.



그 나무껍질에 나는 수없이 많은 그리운 말을 새기었네.

나는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항상 그 나무 곁으로 발길을 옮겼네.



오늘도 으슥한 밤에 나무 곁을 지나서 여행을 떠나야만 했네.

그 때 어둠 속이지만 나는 눈을 감아 버렸네.



그러자 그 나뭇가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같이 서걱거렸네.

“나에게 어서 오시오. 벗이여, 여기에서 안식을 얻으시오” 라고.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에 곧 바로 불어와서는

모자는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으나 뒤돌아보지도 않았네.



그런데 나는 몇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그 장소로부터 멀리

왔건만 지금 역시 나뭇가지의 속삭임이 들리네.

“그 곳이라면 그대는 안식을 얻을 텐데” 라고.





그리고 보니 가사가 거의 ‘단 꿈’과 같은 아름다운 내용이지만

아래 부분만은 전혀 다른 내용이다.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에 곧 바로 불어와서는

모자는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으나 뒤돌아보지도 않았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향해 몰아쳐온다는 가사는 서정적인 내용이 아니다. 멜로디와 반주의 강렬함이 가사와 일치하는 그 부분을 들으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겨울 나그네’는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인데 단 한곡도 서로 비슷한 데가 없는, 24곡이 전부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시의 내용에 따라 느낌이 전부 다른 곡으로 되어 있다. 한국가곡은 작곡가는 달라도 곡의 느낌이 거의 비슷비슷한 것에 비해 이것 또한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처럼 예술가곡이라면 시의 억양과 장단, 그리고 내용이 서로 일치해야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을 해결한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선 우리의 이런 문제점을 바로 알아야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예술가곡이 탄생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제발 외국어의 번역 같은 우리 가곡을 그만 했으면 한다.



(음악저널 2011년 4월호)
3 Comments
鄭宇東 2016.01.09 09:23  
정교수님의 시와 음곡의 일치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고요한 안식을 찾으려는 가곡 보리수(Der Lindenbaum)의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에 곧 바로 불어와서는
모자는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으나 뒤돌아보지도 않았네."
부분이 격렬 모질게 표현될 수 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곡중의 의외라고 생각하였던 이 부분이
밋밋 평범한 일반 가곡류와는 달리 "기승전결"에서
轉換의 계기를 확실히 보여 주는 터닝 포인트로서
폭풍후의 고요와 평화를 기다리게 합니다. 

가끔식 우리들은 시의 내용과 악상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부조화로 감상에 불편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시문이 간곡한 서정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선률이 마치
서사시를 노래하듯 씩씩한 군가나 행진곡투가 되어서는
좀 곤란합니다.

한가지 문의하고 싶은 의문이 있습니다.
도이취의 노래 Abschied(이별)이
우리나라에서는 "노래는 즐거워" 라는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데 
독일의 이별의 정서가 우리나라에서는 즐거운 정조로 바뀌는
이유를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은 무대와 주인공이
탄갱의 광부인데 바다의 어부로 느닷없이 바뀌어 있고
"O mio babbino caro"는 아버지를 협박하여 결혼승락을 받아 낼려는
불효막심한 딸이 부르는 노래인데 어버이 날에 효도하는 노래로
둔갑해 버린 사연도 석연치 않습니다. 물론 번역-번안가곡이라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
정덕기 2016.01.11 10:08  
정우동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악보가 빠져서 유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ㅈㄷㄹ2 2016.01.13 23:52  
잘 읽었습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