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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행 성악가의 촌스러운 발성이

임수철 7 2650
저의 학창 시절이던 1970-1980년대 테너 엄정행 교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주로, 대중가요를 틀어주던 다방에서도 엄정행 교수의 노래는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악 전공자들 중에는 엄정행 교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좀 이상하고 과장스럽다, 발성이 촌스럽다 등등.
심지어 엄정행 교수가 비(非)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비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구적이고, 세련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저 역시도 이러한 비판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를 했었습니다.

경상도 출신인 엄정행 교수는 말 할 때는 물론 노래할 때도 경상도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그대 음성]을 [거대 엄성]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바이브레이션도 참 특이 합니다.
대중들은 그 특이한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전문 성악가들은 별로 좋은 바이브레이션이 아니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는 제가 엄정행 교수의 그런 특이한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부르는 이태리 가곡은 한국가곡처럼 주체적으로 부른 것 같아서 좋고,
또 그런 식으로 부르는 한국가곡은 구수한 고향의 토속 민요같아서 좋습니다.

무조건 유학을 갔다와야하고, 또 서양 음악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대접해주는,
서양 사대주의적인 음악 풍토에 빠져 있는 한국의 음악계에 엄정행 교수 같은 성악가는 참으로 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유명 대학 교수로, 또 스타 성악가로 그토록 오랫 동안 생활했지만,
여전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엄정행 교수의 애향적인 주체성,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 2016년 새해 첫날,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를 통해 엄정행 교수가 부른 저의 애창가곡 김대현 선생 작곡의 [들국화]를
들어 보았습니다. 
엄정행 교수의 한국적이고 경상도적인 꿋꿋한 음악 지조가
가을 언덕에 피어 있는 한 떨기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향기롭게 느껴졌습니다.
7 Comments
바다박원자 2016.01.01 13:01  
임수철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도 오랜만에 <들국화>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아주 어릴 적 서울에 사는 6촌 언니가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왔는데
 그 언니가 노래를 매우 잘 하여 올 때마다 시골에 있는 저희 언니를 비롯한 시골 처녀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었지요.
때로는 돌담 밑에서 때론 저희집 툇마루에서 언니가 선창을 하면 함께 입을 모아 따라부르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저도 귀동냥으로 들어 대충 알기에 광주전남 우리가곡부르기에서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길지도 않은 가사로 반복하여 부르면 그냥 외울 수 있는 참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선생님의 노래가 기타반주로 많이 작곡되고 있다고 하시기에 새바람을 일으키신 것 같아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피아노 반주에 익숙해 있는지라 선생님의 노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아노 반주 악보도 곁들여 주면 하면 바램을 드려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임수철 2016.01.01 15:59  
김대현 선생의 [들국화]는 아주 간결하고, 단아한 민요풍의 가곡입니다.
서양의 화성단음계도 살짝 가미되어 있으나 민요풍의 가락과 아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을의 들국화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함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묘한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잘 묘사한 것 같습니다.

요즘 창작가곡은 대부분 너무 기교가 넘치고 현란한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수채화 같이 투명하지가 않고 유화처럼 너무 진하고 빡빡합니다.

서양가곡은 피아노 반주로 하는 게 거의 원칙처럼 굳어졌습니다.
피아노 반주는 화성적으로, 또 대위법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평균율 체계에서 어떤 조성으로 반주 처리를 해도 연주가 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기타 반주는 사실 연주상의 제약이 많습니다.
효과적이고, 연주가 용이한 조성도 몇 가지로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듯이,
음색적인 다양함과 주법은 피아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타곡 작곡은 작곡자가 명연주가가 아니면 무척 어려움이 많지만,
그 다양한 음색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독특한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그 동안 작곡한 80 여 곡의 가곡 중에서 기타 반주 가곡은 사실 10곡밖에 안 됩니다.
제가 유난히 기타를 좋아해서 기타 반주에 의한 가곡과 기타 연주곡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제가 피아노에 워낙 취약하기도 합니다.
피아노라는 악기에 소질도 부족하고, 또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피아노 교육을 못 받은 탓입니다.

부족한 글, 관심있게 읽어주시고, 또한 좋은 의견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열무꽃 2016.01.04 17:09  
임수철작곡가의 진솔한 글들이 내마노를 빛나게 합니다.
엄정행샘의 신라어? 노래를 실외무대에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었어요.
그리고 마산에 살면서 가곡전수관 공연을 가끔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의령 이종록선생님께서 영제시조창 연주를 하시고는 영제에 대해 설명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경제만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세밀하게 비교분석할 필요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임수철 2016.01.04 19:40  
칭찬이 싫은 사람 드물겠지만, 과찬입니다.
제가 원래는 [제1회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신인평론공모전 입상]을 통해 평론가로 먼저 음악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습니다만,
평론가는 사실 어떤 식으로 평론을 해도 싫은 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연주나 작곡 활동은 열심히 하면, 소위 팬이라는 게 생기지만, 평론 활동은 그 반대입니다.
오래할수록, 날카롭게 할수록 팬은커녕 사방팔방 적군들(?)이 생겨납니다.

철없던 시절에는 음악에도 불변의 정답이 있는 줄 알고 덤벼들었습니다.
연륜이 쌓이면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시나브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만의 현상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결코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음악의 첫 단계는 당연히 음악이지만,
그 다음 단계는 예술이며, 궁극적인 단계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사회학적으로도, 정치학적으로도, 역사학적으로도,
또 철학적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도레미파솔라시도 7음 음계를 음악적으로만 보면 일곱 개의 구성음만 알 수 있지
왜 그렇게 음이 구성되는지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각광 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단순히 그의 작품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음악적으로만 접근하면,
그것은 현상적인 접근이라서 본질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제1단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소리]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밖에 모르는 음악 기능인 수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음악의 기능인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음악의 궁극적인 단계는 귀엽고 소중한 자식에게 불러주는 [어머니의 자장가]같은 것이어야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유난히 많이 가지고 있는 저는 그 시절 어머니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두 살 위 누나의 노래도 기억합니다.
지금 전공자 입장에서 보면, 그 시절 어머니나 누나의 노래들은 박자도, 음정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일류 성악가의 노래보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음악전문가도 궁극적으로 인문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답글이 너무 길었습니까?

앞으로 저는 기타곡 전문 작곡가로 살아갈 계획입니다만,
여전히 평론가로서 기질이 많이 남아서인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아직 제가 음악의 道人 수준이 못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균태 2016.01.05 00:05  
저 또한 어릴 적에 엄정행 선생님의 노래를 많이 듣고 좋아했었습니다.

그 분의 발음의 2가지 특징이 있지요.

하나는 "으"  모음을 "어"로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초성의 "ㄹ'을 모두 이태리어의 "R"(굴리는 발음)으로 하는 것이지요.

첫번째 "으"를 "어"라고 내는 것은 임수철 선생님 지적대로

사투리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 또한 부산 출신이라

경상도 사람들은 일반 대화에서 그렇게들 발음을 많이 하지요. (물론 젊은 세대들은 안 그런 경향이 많지요).

그런데, 저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것이 마냥 사투리때문 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직접 만나뵌적도 없어 직접 본인에게 물을 수는 없었기에,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왜냐면, 만약에 그 분이 사투리의 영향으로 노래 딕션을 그렇게 한다면,

다른 모음들도 사투리 식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들면, 경상도 사람들은, 특히 어르신들은 "여" 발음을 "애"라고 많이 합니다.

그래서 "경상도"를 "갱상도" 이런 식으로 하지요.

그런데, 엄정행 선생님의 노래 딕션의 경우, 그런 모음은 표준 발음대로 합니다.

그런 걸로 봐서 "으"를 "어"라고 발음하는 것은 사투리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발성적인 측면에서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으"발음을 하면 목이 잘 열리지 않고 거의 닫혀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열린 목으로 노래하기 위해서 "어"라고 하는 걸로 여겨집니다.

저도 사실 노래를 하면서 "으" 모음이 제대로 잘 안열리면

"어"와 비슷하게 해서 목을 열리게끔하여 연습을 하다가

차츰 차츰 "으"로 넘어가서 연습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으" 발음으로 노래를

하게 됩니다. 

아마 엄정행 선생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으"로 넘어가서 고치는 과정이 없이

그냥 목을 열기 위해서 그렇게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말 초성 "ㄹ"을 이태리어의 굴리는 "R"로 딕션을 하는 것도

발성적인 측면일 거라고 여겨집니다. 왜냐, 경상도 사투리에는 "ㄹ"을

그렇게 굴리는 게 당연히 없으니까요.

이것은 아마

초성 "ㄹ"을 발음하다 보면 혀에 힘이 좀 들어가게 되니까,

혀를 relax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우리말도 아닌 것이, 외국어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죠.....

어쨌건, 엄정행 선생님의 우리말 딕션은 사투리의 영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보다도

성악의 발성에서 늘 강조하는

"목을 열어라" "발성 기관에 힘주지 말고 relax해라"

라는 그 두가지 요소를 적용해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임수철 2016.01.05 10:49  
김균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 아는 후배 성악가 한 명도 [으] 발음을 [어]와 비슷하게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엄정행 성악가가 경상도 출신이라서 그렇게 발음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제가 주체적이고, 토속적인 것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인지
요즘 경상도 아이들 말투가 서울말을 닮아가는 게 영 못마땅합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속초는 말투가 함경도 사투리와 좀 유사하고,
어휘는 거의 표준어를 사용합니다.(강원도 사투리의 대명사가 된 강릉사투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속초 원래 토박이말은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아주 특이한 말투입니다.
70대 이상 할머니들만 이런 말을 구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진해에서 태어나 초등2년 때 이곳 속초로 이사를 와서 51년째 살고 있습니다.
저는 표준어 어휘를 쓰지만, 말투는 북한 억양이 살짝 들어간 속초 말투입니다.
하지만, 경상도말을 거의 100% 기억하고 있고, 한 두 달만 연습하면 진해살 때 말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해 사투리는 부산이나 마산보다 강하지가 않습니다.

경상도말은 사투리 중에서 호감도가 무척 높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남자가 쓰는 경상도말은 박력이 넘치고,
여자가 쓰는 경상도말은 애교가 넘친다고들 하더군요.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해놓고 그것만이 가장 올바른 언어인것처럼 강제하는 것은
문화적인 독재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표준어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음악의 근원를 언어라고 볼 때, 음악도 어느 특정한 양식의 음악만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문화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음악계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세계 모든 음악의 표준어 같은 개념이 되어버렸는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표준화가 되면, 다양성은 없어지고 획일화되어 결국은 우열(優劣)만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작곡가들도 각자의 개성적인 작곡 언어가 필요한 것입니다.
luciana 2016.01.05 17:14  
열무꽃님 경상도 사투리를 '신라어'라고 표현하신 것이 압권입니다.
저 역시 신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인데요......맨날 갱상도 사투리 해쌓다가 '신라어' 라는 말에 제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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