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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은 이제 그만 듣고 불렀으면

임수철 7 2610
흔히, 한국가곡의 모태라고 하는 홍난파의 [봉선화]에 대해 저는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여러 번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박을 한 분이 아직 없는 걸로 보아 저의 비판적인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에 대해서도 저의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졸저 [가곡작곡법-동진음악출판사]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 옥에 티가 있는 명가곡이라고  [봉선화]에 비하면 무척 완곡하게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에 대한 저의 비판적인 생각은 물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가곡의 가장 큰 옥에 티는 가사 처리입니다.
가락과 가사의 강세와 장단이 완전히 따로따로 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그리운 만 이 천 봉'입니다.
'그리운/만 이 천 봉'이
'그리운만/이 천 봉'처럼 가사 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곡은 음악적인 토속성이 전혀 없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음악적으로 제대로 표현하려면 금강산이 소재하고 있는 북강원도의 민속적인 음악 요소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요소가 전혀 없이 서양의 전형적인 장조 7음 음계를 소재로 했습니다.
그래서 가사만 빼면 서양 노래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쇼팽의 마주루카를 비롯하여 로드리고의 그 유명한 [아랑훼즈 기타 협주곡]이 모두 그 나라, 그 지방의 향토적인 음악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음악들은 가사가 없는 기악곡이지만, 폴란드적이고 스페인적입니다.

물론,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동서양을 굳이 따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 그 자체만 좋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운 금강산이 서양음악적으로는 과연 훌륭한 가곡 작품이냐?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가곡은 가곡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장스럽고, 드라마틱합니다.
극적인 오페라 아리아 같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반주에는 잘 어울리지 않고 오케스트라 반주에 더 잘 어울립니다.
원래, 제대로 된 예술가곡은 피아노 반주로 해야 제 맛이 납니다.
그 유명한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나 [물 위에서 노래함]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하면 음악적 맛이 오히려 떨어집니다.
지성이나 인품이 없는 사람이 화려한 외모로 눈길을 끌듯이, 허술한 가곡일수록 화려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더 잘 맞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원래 독립된 하나의 가곡으로 작곡된 게 아니라,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에 삽입된 곡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단아한 피아노 반주에는 잘 맞지 않은 가곡일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리운 금강산이 오케스트라 반주로 연주될 때,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안 듭니다.
섬세하게 빼어난 금강산 분위기가 아니라 장엄한 지리산이나 백두산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리산이나 백두산보다는 험준한 알프스산 분위기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노래는 원래 이념을 초월한 예술가곡으로 작곡된 게 아니라 반공을 주제로 한 가곡으로 작곡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인지 언제인지, 남북 회담을 계기로 가사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긴 했지만, 내용을 잘 살펴보면 반공주의적인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가곡이 본격적으로 애창,애청곡이 된 데에는 1970년대 당시 정부 힘이 무척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한국 현대 가곡 중 최고의 히트곡 그리운 금강산은 작곡자 최영섭 선생에게 경제적으로 최고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영섭 선생님 자신도 저처럼 이 가곡을 최고의 명가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영섭 선생님은 자신의 가곡 작품들 중에서 [추억-조병화 詩]을 좋은 가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을
언젠가 하셨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추억]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최영섭 선생의 추억은 김성태 선생의 추억과 전혀 다른 형태의 가곡입니다.
음악적으로 조금 복잡합니다.
가락에 불편한 증2도 음정이 여러 번 나오고, 기본적으로는 단조의 노래인데, 조성감이 확실한 전형적인 단조가 아닙니다.
그러나 작곡자의 독창성과, 한국적 전통성과 서양적 현대성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작곡을 하면 대중들한테는 크게 인기를 끌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곡 전공자 입장에서 보면, 최영섭 선생의 추억은 그리운 금강산보다 훨씬 더 좋은 가곡입니다.

최영섭 선생님은 [그리운 금강산]보다는 [추억]이 더 히트되기를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내 마음의 노래 ]회원 분들이라도 그리운 금강산보다는 추억에 좀더 관심과 사랑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운 금강산 같은 가곡이 명가곡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재의 우리 음악 현실은 사실 정상이 아닙니다.
저도 대학시절에는 그리운 금강산을 꽤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좀더 깊고 넓게 공부면서 명가곡의 실체에 대해 조금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음악의 높은 경지에 아직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이 더 이상 절절하게 불려질 이유가 없을 때는 바로 통일이 되었을 때이겠지요.
7 Comments
김균태 2015.12.25 01:38  
<그리운 금강산> 뿐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곡들이
가사와 선율이 서로 맞지 않지요....
저도 곡을 쓰다보면, 그걸 제대로
맞추기가 어렵더군요...
콩쿨을 통해 발표되었던
제가 쓴 가곡과 동요도
솔직히 제가 봐도 가사와 선율이 안맞는 부분들이 많아서 참 부끄럽습다...

선생님 말씀처럼 <그리운 금강산>이란 곡에
한국적인 요소가 반영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예를 들면, 메나리토리 ("라솔미"의 하향 음계)와
국악 장단 등등 말이죠....

저 개인적으로 <그리운 금강산>이란 곡에 있어서 아쉬운 점은
3절 가사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절 가사라도 연주가 많이 된다면
음악적으로 금강산을 표현하지 못한 것을
그나마 약간은 보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
풀마다 바위마다 변함없는가
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물도
장안사 자고향도 예대로인가
(후렴)"

최영섭 선생님의 <추억>이라는 곡....
정말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좋아하기는
어려운 곡일 겁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처음 그 곡을 들었을 때부터
그 후 아주 오랫동안
그 곡을 좋다고 여긴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근데 40대가 되어서 인지.... 최근에는 왠지 모르게
매력이 느껴지면서 좋아지더군요...
근데 아무래도 부르기는 쉬운 곡이 아닐 것 같은
생각도 많이 듭니다.

예전과는 달리
최근 들어서 성악전공 학부생들도
이 곡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화천비목콩쿨"이라는 한국가곡 콩쿨에 가보면
소프라노 학생들이 이 곡으로
많이 하더군요. (남학생이 부르는 건 못봤네요....)
정작  <그리운 금강산>은 많이 못들어본거 같네요...

주로
테너 학생들은 "내 마음의 강물"을 많이하고
소프라노학생들은 "추억(최영섭 곡)"을 많이하고
바리톤이나 베이스는 "산아"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강물"이나 "산아"는 일반인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거 같은데
"추억"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까지는 그리 많이 불리는 것 같지 않긴 하네요....
임수철 2015.12.25 11:15  
3절 가사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1,2절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요소가 있는데.
김균태 선생님 말씀 대로, 메나리토리풍의 음계를 살짝 가미하면 강원도의 전통적인 음악 분위기를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작곡가 선생님들 중에는 전통 국악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분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클래식 음악도 크게 보면 일종의 지역 음악인데 말입니다.
유럽이 아시아보다 인구도 적고, 면적도 좁은데 어떻게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 세계를 대표하는 인류보편적인 음악입니까?
음악의 질이 높아서?
음악의 질로 따지자면, 인도 음악이죠.

민요에는 전혀 무관심했을 것 같은 베토벤도 자국의 민속적인 음악 요소를 작곡에 활용하였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마주루카에 가장 많은 애착을 가졌었는데, 마주루카가 바로 쇼팽의 조국 폴란드의 민속음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최후 피아노 작품도 바로 마주루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악가는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전통 음악을 좋아하면 오히려 촌스럽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수제천], [전폐희문]을 처음 들은 게 30대 초반이었는데, 이 음악을 좀더 일찍 들었다면 저의 음악 인생이 좀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가곡을 가창용 가곡과 감상용 가곡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면,
최영섭 선생의 [추억]은 감상용 가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콩쿨에서는 순위를 가려야 하므로 적당히 어려운 곡이 좋겠지만, 진짜 위대한 음악은 쉬운 음악이라고 합니다.
동양의 유가(儒家)음악 철학에 대악필이(大樂必易)라는 말이 있는데, 대략적인 뜻은 '위대한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한다'입니다.
이 말은 동서양을 초월하여 음악심리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습니다.

아무튼 덕분에 그리운 금강산 3절 가사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균태 2015.12.25 12:40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는 정말 100% 동감합니다.

작곡가뿐만 아니라 성악가, 심지어 일반인들 중에도 국악이 촌스럽다는 둥 무슨 상가집이 연상된다는 둥

어이없는 말들을 많이 하지요.... 우리나라 음악 교육이 얼마나 잘못흘러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예이지요.

음악교과서에 실린 민요들도 죄다 서양식 기보법으로 단순화시켜놓았기 때문에 원곡이 어떤건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문제고.....

국악에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모든 장르를 다 배우고 다 익히고 다 좋아하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가지 장르정도는 누구라도 한번 쯤은 직접 배워보워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국악 성악 장르 중에서 특히경기 민요나 경기잡가를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지만서도

여전히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갖는 분은 거의 없네요.... 서글픈 현실이죠.....
임수철 2015.12.25 17:09  
국악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적 원인을
단순히 음악적인 관점에서만 분석하면 정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따져봐야 하는데,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 중 그 하나는 바로 국력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음악의 역사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친일 청산만 제대로 되었더라도 우리 음악의 현실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음악적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는 홍난파, 현제명, 김성태, 안익태 같은 분들이
모두 친일파였다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선생도 친일 경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바흐나 베토벤이 아프리카의 어느 약소국 작곡가였다면
그들의 음악이 지금처럼 대접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역사의식, 사회의식, 민족의식도 없고 오직 음악안에만 갇혀 있는무식한 음악인은 노예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악대학 교육과정이 무식한 음악인 양성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교육을 받아서 아주 무식한 음악인 중의 한 명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무식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조금 덜 무식해지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개념 자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와는 전혀 음악의 혈통이 다른 서양의 음악가들을 조상님처럼 모시고 있고,
또 그것으로 음악적 권력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음악을 진짜 인류학적 관점에서 아주 넓게 보면
동서양 음악이 결국은 한 뿌리입니다만.

여러 예술 장르 중 음악만큼, 특히 작곡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문학이나 미술, 운동, 또는 악기 연주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있어도
작곡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한국 작곡가들의 비독창성에 대해 비판은 하고 있지만,
비독창적이나마 작곡 활동 그 자체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작곡의 독창성이니, 창의성이니, 민족성이니 하는 것 다 접어두고서라도
단순히 작곡의 기능에 대한 공부만 하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공부에 매진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식한 사람이 됩니다.
작곡가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 음악인들이 음악 공부 그 자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식해지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음악인들은 천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무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인들은 문학인이나 미술인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국악인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전통 국악은 근대 이후 [산조]라는 음악 양식을 만들어낸 이후
지금까지 새로운 국악 양식(樣式)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악이 우리 음악이니까 우리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알아서 좋아할 수 없는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아무튼 제가 평론가 출신 작곡가여서인지 음악적 오지랖이 좀 넓어서
국악적인 고민과 서양음악적인 고민 두 가지를 다 하느라 머리가 좀 아픕니다.

김균태 선생님께서는 경기소리를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저는 경기소리 중에서 [노랫가락], [창부타령], [긴아라랑]을 좋아하며,
잡가는 남도 잡가 [육자배기]를 좋아합니다.

요즘 육자배기풍의 클래식 기타곡을 쓰고 있는데,
실력이 모자라서 진도가 잘 못나가고 있습니다.
정용철 2015.12.26 12:32  
허허.....,

두 분 선생님들의 고견을 접하니 아마추어인 저로서는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 너무 전문적으로
너무 길게 설명을 하셔서 다소 지루합니다.

자유게시판이 거리의 게시판 같이 음악회 광고만 너무 많다고 투정을 했더니,
또 너무 전문적으로 대학교 학술논문 발표장 같아보입니다.
적절하게 조절했으면 읽기 좋겠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에 대한 전문적인 평은 읽어 볼 만은 합니다만,
작곡가가 아닌 노래를 즐겨 부르는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선생님과 다른 입장입니다.
가곡이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좋아하면 작곡가로서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즐겨 듣고 즐겨 부르면, 그대로 두면 됩니다.
작법이 어떻고 우리가락이 어떻고는 부르고 듣는 사람이 판단할 것입니다.
더 전문적인 것은 음악강의실에서 살필 일이겠습니다.
우리 가곡이 침체된 한 원인도, 작곡가들이 부르고 듣는 사람들의 선호를 무시한 체,
작곡원칙에만 너무 억메인 탓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리운 금강산'이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으며 원 가사의 내용도
우리의 시대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개사한 가사 또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한 것이니
이 또한 시대와 가곡애호가들에게 잘 부응한 것이라 적절하다고 봅니다.
저는 '추억'이란 노래가 있는 것도 모르니 마냥 저를 무식하다고만 하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임수철 2015.12.26 16:52  
어떤 한 음악 작품에 대한 의견이 작곡자, 연주자, 감상자가 각각  다른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의 주장도 새겨 듣겠습니다.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 쓸 일이 있으면, 가급적 짧게 쓰도록하겠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도 너무 길게 해서 상대방에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지요.
김균태 2015.12.28 02:49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길어져서 죄송하네요~~

그나 저나, 정용철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면

결국 화두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군요...

즉, 예술성이냐, 대중성이냐, 예술성+대중성이냐의 문제이지요.

예술성은 주로 전문가들이 원하는 바이고,
예술성+대중성도 전문가들이 원하는 바이나,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대중성은 일반인들이 원하는 바이지요.

얼마전에 제가 언급한 대로
일단 곡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곡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생명력은
결국
대중들에 의해 얼마나 많이
애창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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