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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예쁜 미친 아가씨

김형준 51 1819
인숙은 세상을 초월하고 싶어하는 매우 대담한 아가씨이다.
그녀도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의 의견에 늘 신경을 쓰고,
부끄럼을 많이 탔었다. 무언가 작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가족의 눈치를 보았고,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봐 걱정했고,
낯선 사람들의 시선도 늘 의식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완전히 변했다.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정말 건성으로 다녔다. 한 마디로 말해
Sunday Christian, 즉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긴
했는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누가 봐도 기독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속적인 삶을 살았었다. 믿음이 깊은
기독교인이라면 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말과 행동이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허나 인숙의 삶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성경에는 손이 전혀 가지 않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말씀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일말의
종교적인 죄책감이 일어야 정상적인 신앙인인데 아예 무감각한
상태가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인숙에겐 그런 자신의 신앙 불감증이
본인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관심 그것이 그녀가 가진 최대의 문제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삶에 끊임없이
닥쳐오는 어려움들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본인의 힘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그녀는 기를 썼었다. 늘 역부족이었다. 뭔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에 대처해서
애를 쓰다보면 다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녀의
삶에 그러한 위기가 닥쳐온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다 그런 것일까. 인숙의 삶이 평탄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 늘 다정하게 그녀의 곁에서 즐거움을 나누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모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하자고 굳게 약속했던 사이였다. 그도 그녀와
동일한 종교를 믿는 잘 생기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던
사랑하던 이마저 인숙을 버렸다!'

쯔나미가 밀려오는 듯 했다. 토네이도가 불어닥치는 듯 했다.
자그마한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
그녀에게 닥쳐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았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도저히 그런
어려움 속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법을 택할까?

그녀는 고민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이생의
삶을 이어나가기 싫어졌다.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도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릴까,
손목을 자를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을까
어느 배우처럼 목을 맬까

벼라별 고민을 다 하였다. 전화비가 두, 세달 밀리자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하듯 온갖 협박성의 전화와
편지, 문자 메세지가 날아 들었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은
문제도 아니었는데, 너무 지쳐있는 인숙의 영혼은 더 이상
자그마한 문제도 스스로 처리할 수가 없는 가엾은 상태에 달했다.

무릎을 꿇어라!

어디선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라!

이리저리 살펴 보아도 그 음성의 주인공은 없었다.

아마 내가 잘못 들었나봐.

하고 인숙은 생각했다. 너무 고통스럽게 살다 보니
듣지도 않은 것을 들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씁쓸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웃고 흘렸다.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

절망감이 그녀를 휩싸 안았다. 길이 없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만날 수도
안 만날 수도 없는 아예 행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자폐인의 상태로 이르고 있었다. 우울증은 또 전염병처럼
계절과 계절의 틈 사이로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몸과 영혼을 파고 들었다.

순종해라!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헛 것을 듣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너무 피곤에 절어서 헛 것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경을 읽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성경을 읽으라고 누군가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을 이번에는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경고였다. 그녀에게 보내진 천사의 소리였다.

'성경을 읽어라, 내 딸아!
성경을 읽어라,  내 사랑하는 자야!

인숙은 길을 걷다가 그 즉시로 무릎을 꿇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다 말고 그녀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어디 아픈가!
맛이 약간 갔나!
뭐가 잘못됐나?

쑥덕쑥덕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그녀의 곁을 지나쳐 갔다.
인숙의 귀에는 그들의 말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절망적인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젠 더 이상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생각하던 것처럼 그녀에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빴고,
각자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숙은 이를 악물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바른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들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죄인입니다.
제 손을 잡고 인도하여 주소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숙은 거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을 찾았다. 그녀의 집에는 성경이 여러 권 있었다.
그렇지만 인숙은 집에까지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에
당장 순종하고 싶었다. 서점에서 성경을 한 권 사들고
나와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경을 펴들었다.
잠언이 나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며 걸어갔다. 누가 옆을 스치며
뭐라고 하든 말든 읽어나갔다. 발이 가는대로 계속해서
걷다가 보니 절의 대문이 보였다. 다른 쪽으로 발을
돌리려는데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그 음성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인숙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절간으로 들어섰다. 수행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말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소망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어 성경을 덮을 수도 없었다. 성경을
읽으며 절 경내를 돌았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돌았나보다. 잠언을 다 읽고, 시편을 읽고,
욥기를 읽고 전도서, 아가서를 다 읽은 것을 보면 말이다.
도를 닦는 곳이라 그랬을까. 아님 해탈하여 모두 부처가
되고 싶은 궁극적인 소망이 신자들의 마음에 다 있어서
그런 걸까. 인숙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누구도 크게
눈여겨 보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으례
간절한 소원을 비는 불교 신자의 행위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웅전 주위를 끊임없이 돌면서 성경을 읽는 인숙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도저히 말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령은 그녀를 절로 인도하였다. 불자가 되라고
그쪽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그녀의 모든 어려움이 신앙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그곳에 보내졌다.
늘 부끄럽기만 하고, 슬프기만 하고, 남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던 그녀에게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곳에
보낸 것이다. 세상 어디에 가도 하나님은 그녀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행위를 하게 한 것이다.

오랜 시간 탑돌이를 하듯 성경을 읽으며 대웅전 주위를 돈 뒤
벤취에 앉았다. 몸이 많이 피곤했다. 눈을 스르르 감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대웅전 안에서 부처님이
인자한 눈빛을 하며 인숙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고 계신 것 같았다.

인숙이 앉아 있던 벤취 주위가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천사들의 찬양이 들려왔다.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인숙은 다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녀를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벤취에 앉아 오랫동안 말씀을 읽어 나갔다. 아직도 약간
겨울의 찬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인숙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찾아온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죄인입니다, 용서하소서!
잘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구제불능의 인간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를 드리고 일어나 다시 성경을 읽어 나갔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은
그녀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말씀을 읽을 수 있는 마음밭이 닦였다.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샘이 그녀의 영혼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이미 성경을 백 번이상 완독한 인숙은 이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성경 말씀이 늘 그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녀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늘 말씀이 함께 했다. 작고 큰 결정을
하기에 앞서 말씀을 생각해 보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네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리라!

그녀는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심신에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늘 고운 말로
다른 이들을 축복했다. 기도가 그녀의 입과 맘에서 끊이지 않았다.
말씀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성녀(聖女)가 되었다.
그녀는 의인이 되었다.
그녀는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딸이 되었다.

평생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인 삶을 죽는 순간까지 살았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수종들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씀을 주셔서 저의 삶을 변화시키셨군요.

너무도 냉랭하고 무관심하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해주시고 지켜주신 주님!

제 삶 속에서 영광을 받으셨기를 빕니다.
제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젠 제 영혼을 받으소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였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를 위해 금면류관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를 위해 잔치를 마련하였다.
어서 오너라.
나와 함께 즐기자.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51 Comments
김형준 2007.02.28 02:57  
  마음이 빈 자가 복을 받는다.
자꾸 자꾸 비우는 수련을 하자.
복잡한 것들로 마음을 채우지 말고
단순하게 만드는 법을 배우자.

마음이 자꾸 높아지려고 할 때
용서를 빌고 허리를 숙이고
마음을 자꾸 낮추는 훈련을 하자.
그것이 지혜를 얻는 길이다.

내 마음이 높은 사람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가 없다.
헛배만 불렀다고 칭찬의 대상이 되는가.
배를 비우고, 맘을 비우고 영혼을 비우자

비우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정문종 2007.02.28 06:25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 옳은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너에게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마라. 가난한 사람을 만나거든 그가 누구든지 외면하지 마라.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토비 4,7 //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마태 19,21//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루가 4,18 //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김형준 2007.02.28 09:19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빈 마음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복을 내리려 해도 마음 속이
교만함과 헛된 자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
줄 공간이 없어서 그 복은 다른 이에게로 돌아갑니다.

주는 자는 늘 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보물들을 이 세상에 쌓아 둠이 아니고
하늘나라의 창고에 넣어두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쓸 것이고
저 세상에서 받을 것은 이 세상에서 행한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값없이 귀한 선물을 받은 이들은
대가없이 고귀한 것들을 남과 나누어야 겠지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그 겸손함과 사랑을 본받아
다른 이들의 종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존경과 사랑,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토비 4, 7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용하신
성경은 which translation?)
김형준 2007.02.28 09:28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불교의 범패가 최고의 음악이라고.
또 동일한 인물이 자랑하듯 떠들었습니다.
티벳의 불교적 명상 음악이 최고라고.
초월적인 소리꾼 내지는 명창이 되고 싶은 어느 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혹시 범패와 티벳음악에서 배울 것이 무엇이 있는가
관심이 갔기 때문입니다.

팝송은 팝송대로, 록은 록대로, 재즈, 힙합, 뮤지컬,
각국 민요 등등에서 배울 것이 다 있습니다.
소리의 대가를 꿈꾸는 이는 오늘도
잠 못자고 모든 에너지를 소리에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이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높은 곳에서 '독야청청'하길 바라는 게지요.
김형준 2007.02.28 09:39  
  절은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 참 좋은 곳이다.
별로 구속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자신이 머무는 시간동안 행동을 하면 된다.
몸에도 맘에도 자유로움과 빈 공간이 많이 생긴다.
빈 공간이 있어야 휴식이 가능한 것이다.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려면 맘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절에서 휴식을 얻고
다시 속세로 내려와 스트레스와 동행하며 싸운다.
홀로 싸우는 전투가 더 이상 참기 힘들 때
다시 절로 들어가 내면속에 있는 그 님을 만난다.
김형준 2007.02.28 10:58  
  도(道)라는 것은 '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은 어딘가를 가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가.
무엇이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시는가.

'진리', '참'을 향해 나가는 것이 진짜 도이다.
해탈을 바란다는 것도
자기 자신이 '참'이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구속이 없으나 구속되어 있고
구속되어 있으나 늘 자유로운 상태,
속에 갖혀 있는 듯 하나 늘 밖에 있고,
밖에 있으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경지,
바로 그러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도를 닦는 이들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도'의 목적이나 목표가 가시적으로 보이면 좋겠지만
믿음이란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즉 아직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루어 질 것, 또는
본인이 목격을 직접 하지 못했지만
이미 되어진 어떤 것을 믿는 것이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욱 크고 복되다 하셨다.
정문종 2007.02.28 11:39  
  토비는 구약 '토비트' 편 입니다,,, 그리고 인용한 성경은 '인터넷 성경' 입니다,,,"이 책은 토비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토비트는 납달리 지파의 아시엘 집안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의 아버지는 토비엘, 할아버지는 하나니엘, 증조부는 아두엘, 고조부는 가바엘이었다. 가바엘의 아버지는 라파엘이었고 할아버지는 라구엘이었다. 2토비트는 아시리아왕 살마네셀 때에 티스베라는 곳에서 살다가 포로로 잡혀 간 사람이었다. 티스베는 갈릴래아 지방 납달리 케데스 남쪽에 있는 곳으로서 아세르에서는 서쪽 언덕에, 포고르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정문종 2007.02.28 11:45  
  토마스 너는 나를 보고야 믿었지만 나를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참 행복 하여라,,, (화답송 솔로 했던 부분 입니다,,,) *^^* 그래서 보고서야 믿는 신앙을 '토마스 신앙' 이라고 하더군요,,,
김형준 2007.02.28 23:27  
  아, 그렇군요.
토비는 구약의 '토비트'편을 줄인 것이군요.
정선생님은 아마도 천주교인이신가 봅니다.
'토비트'는 정경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외경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독교라고 사회에서 알고 있는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에는 '토비트'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김형준 2007.02.28 23:33  
  '독경'은 경을 읽는 것을 일컫는 것이리라.
여기에서 '경은' 주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등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을 의미한다.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쓰는 성경 또는 성서를
소리 내어 읽는 것도 '독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경을 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유익하다.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도움이 된다.

'경'을 소리내어 읽자.
본인이 믿는 종교의 성스러운 경전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지혜와 사랑의 빛이 충만해질 것이다.
김형준 2007.03.01 09:37  
  깨달음은 쉬이 오지 않는다.
조금 도를 닦았다고, 어느 정도 경을 읽었다고
신나게 남들에게 떠들어 대는 이들을 본다.
너무 가벼워서 새들처럼 날아다닐 것만 같다.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이 불면 떠다녀야 할 존재들..
내공이 제대로 쌓인 이는 움직임이 빠르지 않다.
거목이, 거대한 바위가 어찌 가볍게 움직이겠는가.

조금 뭘 배웠다고 TV에 나와서 짹짹 하며
참새 울음 소리를 내는 이들을 때론 본다.
그저 개그맨들이 웃기기 위해 만들어 낸 말처럼
그들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이 큰 스승인양 거의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목청 터지라고 비명을 질러댄다.

나 좀 봐줘요. 내 말 좀 들어봐요!

오늘도 그런 어리석은 이가
경 풀이 한다고 인분 내음이 펄펄 나는 소리를 가지고
가성의 가증한 음성을 써서 엿장사 모양
가위 소리를 내며 엿을 잘라 팔려는 모습을 본다.

나야 나,
이 분야의 전문가!

전문가들이 다 죽었나 보다.
별 이상한 인간이 나와서 경을 해석한다고 떠들어 대니.
정말 하늘에 계신 분이 경을 칠 노릇이다.
김형준 2007.03.01 09:42  
  나를 너무 내세우다 보면
나는 없어지고 껍데기만이 다른 이들에게 투영된다.
진정한 자아는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거짓되고, 바르지 못한 모습만을 자꾸 보이게 된다.
가식이 참을 가리고 점점 커져 나가면
나중에는 참이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 조차 분간 못하고
화장품만 잔뜩 쳐발라서 어릿광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남들 앞에서 되지도 않는 쇼를 딴엔 잘 났다고 하다간
홀로 남게 되는 그 시간에 두려움 속에 떨며
진한 눈물의 계곡을 만들면서 독백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는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광대짓을 하고 있는 가여운 사람아,
왜 그러고 있느냐.
김형준 2007.03.01 09:53  
  온천하를 다 뒤져봐도 님과 같은 이 없으셔라
너무도 뜨거운 정열에 가까이 가긴 힘들지만
생각만 해도 심장이 크게 뜀은 분명 사랑이라

눈을 뜨면 느껴지는 당신의 임재하심에
입을 벌려 감사를 드리고 노래를 부른다
조금이라도 순수함이 배어있는 님의 노래를
김형준 2007.03.01 13:47  
  아무리 꾸지람하셔도 달게 듣겠습니다.

나의 님이시여!
당신에게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무런 변명 거리가 없습니다.
늘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못난 아들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의 님이시여!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의 님이시여!
지혜를 주십시오.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현명하게 잘 사용하게 해 주십시오.
결국 정해진 시간이 오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당신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부드러운 바람만 와도 출렁거리는 물결입니다.

나의 님이시여!
인도하소서.
조용히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겠나이다
이종균 2007.03.01 18:56  
  여긴 절도 아닌데
성경을 송두리체 베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이지요.
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니
나는 자연이 하느님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명문으로 장가 한 번 잘 간 듯 합니다.
김형준 2007.03.02 00:24  
  우와!
두 번씩이나요!!!!
저는 아직 한 번도 한꺼번에 완독한 적도 없는데요.
하긴 그렇네요.

히히,
'하느님의 사위'
'명문가'

되게 재미있네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웃겨요.
할아버지도, 할버니도, 아빠도, 엄마도,
아들도, 딸도, 손주들도
하느(/나)님 다 믿는 경우에
모두 한결같이 하느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아요.
그럼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거에요. (^_^) (^_^) (^_^)

아이구 머리 아파요.
날이 밝으면 빨리 약국에 달려가서
두통약 사먹어야 겠네요.

부부가 다 하느님 아버지 믿으면
남매가 부부가 되면? @@@__###

아이구 두야! (히히)

이선생님 덕분에
너무나도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머리를 꾸벅!!)

잘 지내시나요?
월요일의 가곡 모임 좋으셨어요?
김형준 2007.03.02 10:11  
  만년을 한 순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루를 만년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100년을 못사는 인간이....

점점 더 시간이 포개져 가고 있다.
하긴 1억년을 산 존재의 입장에서
백년은 과연 무엇인가.
그저 한 순간은 아닐까.

점점 더 공간이 좁아져 가고 있다.
하기 전 우주를 다스리는 이의 입장에서
지구라는 행성은 과연 무슨 의미를 띠고 있나
그저 매우 작은 하나의 점과 같이 미세한 것은 아닐까.

바닷가의 모래알들도 각각 존재의 의미가 있고
하루살이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다.
조금 약한 이를 괴롭히려고 노력하기 보단
서로 세우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주 전체에 수학적, 윤리적, 정서적 규칙을
너무도 오래 전에 만들어 놓으신 분의 뜻을
실천하면서 사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하모니 2007.03.02 11:58  
  가곡을 들으며 이곳 회원문단을 둘러보는것 또한 큰 기쁨입니다.^^*
이곳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은 대부분 시인이나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는것
같은데 맞나요?^^
거침없이 써내려간 김형준님의 진솔한 글 읽기에 때론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오늘은 무슨 말씀 하시려나 하고 기대해 보기도 하네요.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미쳐 생각지도 못한 부분도 잘 끄집어 내어
표현 하시는것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김형준 2007.03.02 21:23  
  아, 하모니님 다녀 가셨군요.
저는 아직 등단을 하지 못(/안)한 아마추어 작가입니다.
이곳 회원문단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 중에는
등단을 하신 분들도 여러 분 계시고,
그렇지 아니 하신 분들도 꽤 됩니다.
제 글을 자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모니님은 어느 분이실까 궁금합니다.
저와 안면이 있으신 분인가요?
하모니 2007.03.03 06:11  
  저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이곳에까지 우연히 알게되어 들어
오게 되었는데 주로 클래식까페나 KBS1FM콩 라디오를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지휘법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가입한지는 1달 조금 넘었는데
회원님들께 가입인사도 못드렸네요...둘러볼것이 많다보니.ㅎㅎ
시를 참 좋아하고요...
그옛날 아마츄어 합창단원으로 연주회도 다니고 한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내마노 회원님들의 합창도 잘 들었구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곳을 더욱 훈훈하게 하네요*^^*
하모니 2007.03.03 06:16  
  그리고 김형준님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으니 어쩌죠?^^
회원문단글을 읽으면서 이제 많이 회원님들과 친숙해지는 느낌
입니다. 저는 글재주가 없어서 읽고 감상만 할래요~~ㅋ
많이 배워갑니다.
여러 회원님들의 글 속에서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와
더욱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윤택하게 하니 절로 흥겹고
기쁨가득 행복가득합니다.^^
김형준 2007.03.03 09:33  
  하모니님,
소개를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님에 대해 알게 되었군요.

저는요?
글쎄요,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우주를 파괴적 혼돈에 밀어넣지 않고,
그 오랜 시간동안 균형과 질서를 갖도록 해주시는
분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
늘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노력하는 학자 내지는 학생,
자유인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좀 다르기를 원하는 사람,

대충 그런 사람이 저랍니다.

늘 행복하시길....
김형준 2007.03.03 11:45  
  아,
그리고 제 먹고 사는 일은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학습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영어는 다른 무엇보다도
매우 깊고 아름다운 내 사랑의 대상입니다.
김형준 2007.03.03 12:21  
  영어 교육에 있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edge는
컨설팅 하는 일입니다.
각 사람의 실력과 능력과 취미와 형편에 따라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는 가에 대해
코치를 하는 일이지요.
김형준 2007.03.04 09:35  
  추구하시는 것을 이루세요.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인이 꿈꾸는 그것을 가꾸고 만들어나가는 사람의
삶은 늘 푸른 풀밭과도 같습니다.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면
삶이 방향을 잃어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것일까에
대한 회의가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시기 위해
all-in 하시길 바랍니다.
꿈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인간 역사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모니 2007.03.04 17:01  
  제겐 분명히 목표와 꿈이 있습니다.
귀한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면이 있으시다
했는데 역시...*^^*
김형준 2007.03.04 19:18  
  하모니님,
목표와 꿈에 대한 제 글은 하모니님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고, 모든 독자에게 드리는 글이랍니다.
아니면 그저 제 혼자의 중얼거림 내지는
독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모니님은 무얼 하시는 분일까요?
여성일까요, 남성일까요?
인생 여정에서 어디쯤에 계신 분일까요?
and so on and so forth.........
김형준 2007.03.04 22:35  
  내가 걷고 있는 길은 과연 날 어디로 데려다 줄까.
Highway to Heaven은 있는 것일까.
끊임없는 죄와의 투쟁은 내게 승리를 안겨다 줄까.
난 의인이 아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마감되는 날까지
난 의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불쌍히 여겨 주셔서
어린 아이와 같은 날 늘 용서해주시고 봐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작은 자이다.
작은 자는 늘 보호해 주는 이가 필요하다.
난 보호가 필요하다.
전능자의 사랑과 관심과 용서가 필요하다.
그의 사랑으로 인해
난 용기를 얻고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께 늘 감사를 드린다.
혹시 잘못된 길을 가는 경우
다시 올바른 길로 내가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빌고 있다.
난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영안이 환히 열려 있는 상태도 아니다.
보호와 사랑, 그리고 자비, 용서가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감사합니다!
김형준 2007.03.05 00:45  
  아픔이 오나 보다.
나이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이들이 있다.
물론 이들 중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은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홀로 산다.

나이가 많으면 서럽다는 말이
이젠 점점 실감이 나는 표현으로 맘 속에 들어온다.
나이가 더 많이 들기 전에
남의 인격을 보다 더 존중하는 훈련을 쌓아나아가고 싶다.
나이든 뭐든 핑계를 대어 다른 이들을
낮추어 보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지난 이는
모두 성인이고, 고로 성인으로서 정중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늘 아끼는 마음으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남성에게
존대말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그가 재수하고 있을 때에는
친근한 생각에 말을 편하게 하였었다.
그렇다고 말을 함부로 한 것은 아니다.
늘 부드럽게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젠 그에게도 존대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는
친근감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 반말을 섞어 쓸 때도 있을 것이다.
허나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가급적 늘 존대어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훈련을 계속해서 하다보면
보다 아름다운 언어 습관이 형성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람들은 다 자기에게 맞는 관계 형성 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단지 최대공약수를 구해서 그에 따르거나
비슷하게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모니 2007.03.05 04:59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누구에게 주시든 감사한 말씀입니다.~~
단순하게 대답하자면
저는 40대 중반의 가정주부입니다.^^
개인적인 얘기하기가 좀 쑥스럽네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우동 2007.03.05 08:54  
  헷갈리는 촌수는 쌔고 쌨습니다.
고금소총 얘기로
부자가 같은 기생을 두고 추근대니
기생이 재치로 간밤에 아비를 꿈꾸었다 하고 아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런 삼각관계의 촌수는 난장판입니다.

또 이런 촌수도 있습니다.
대학시절 법철학을 가르쳐 주신 이진우 변호사님은
몇년 전에 한스 켈젠 교수를 뵙고 증손자라고 소개했답니다.
이선생님은 황산덕교수로 부터 배웠고
황선생님은 오따까 도모오교수로 부터 배웠고
오다까선생님이 켈젠박사께 배웠으니
학문상의 계보로 따지면 얼추 맞는 말이고
그렇게 치면 나는 켈젠박사님의 고손자라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김형준 2007.03.05 09:32  
  아, 하모니님,
감사드립니다.
훨씬 더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함께 가서 따스한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I hope we will encounter
ach other more often down the road.
김형준 2007.03.05 09:36  
  정우동선생님,
증손자, 고손자....
우와! 그렇군요 학문의 길에도
선생님, 할아버지 선생님, 할아버지의 아버지 선생님....

대학 시절에 배우신 법철학의 스승님의 계보...
정말 오래된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계시는군요.
또한 그 당시의 선생님과 여전히 지근 거리에 계시거나
늘 그분의 근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니
선생님의 따스한 품성이 그대로 배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이 되어
그 사람이 정선생님처럼 저에 대한
회고를 하게 된다면 태어난 이유 중의 하나가
잘 실현되어졌다고 저 세상에서라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정문종 2007.03.06 04:37  
  I hope we will encounter. 이 말씀이 off-line meeting에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씀 이지요? off-line meeting = 탈선모임?(脫線모임)
김형준 2007.03.06 04:59  
  정문종님,
encounter는 '만나다', '마주치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곳 on-line상에서의 만남을 의미했습니다.
'each'에서 'e'가 빠져서 'ach'가 됐습니다.
typo인 것이지요.

탈선모임은 아직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신지요?
헌데 사시는 데가 제가 사는 서울과 너무 멀어서....

Meeting like-minded people is not easy,
but can't say 'never'.
김형준 2007.03.06 05:40  
  역시 on-line상에서의 만남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인연이 되면 노래부르는 어느 모임에서
탈선하여 만나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는 그저 '선상'에서 만나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김형준 2007.03.07 01:08  
  젊음을 하늘에 다 바쳤다.
하늘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셨다.
온갖 생명이 오케스트라석에 앉아 악기가 되었다.
하늘이 지휘석에 올라서 남풍을 보내 연주를 시작한다.
산과 바다와 들과 꽃과 나무가
카라얀도 만들어 내지 못했던 불후의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김형준 2007.03.07 02:46  
  암흑이 자그마한 가슴을 해체시키고 있었다.
노란 나비가 그 속에서 색깔을 잃고 허덕이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존재를 상실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늘 구멍만한 빛이 어둠의 휘장을 찢고 생명의 소리를 지를 때까지
김형준 2007.03.07 09:59  
  싫어서 버렸다. 발냄새 풍기는 벌레를
물자국 남기며 숲으로 들어갔다 바로 나왔다.
냄새가 사방에서 풍긴다. 썩은 시체의 냄새가
고함을 질렀다. 늙은 여배우의 오만한 태도를 버리라고.
혼자서 발성 연습한 거야라며 씩 웃곤 떠나간다.
큰 바늘이 한 칸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냄새를 풍긴다.
김형준 2007.03.07 20:42  
  거미야 이제 나오너라 용이 보잖다
양뿔에 매달려서 매미가 움직이고 있다
개미는 사마귀를 먹고 있다. 이미 텅빈 껍데기.
지진과 바다가 합작을 하여 쯔나미를 밀어낸다.
테러분자는 영원히 받을 큰 상을 생각하며 자폭한다.
호미로 감자를 캐다말고 엄마는 산에 있는 산삼을 숨긴다.
김형준 2007.03.08 05:30  
  밀알이 죽었다. 막내 아들 대학 학자금이 들어 있던.
황금보다도, 그 소중했던 첫사랑보다도 더 소중한 밀알이.
희망이 지옥에 갔다. 뜨거운 불 속에서 희망이 재가 되었다.
지독했던 추위 속에서 똑똑한 증손자 보리라 피 흘리던 희망이

어항 속에 있던 조약돌 다 쏟아 버렸다. 썩어진 추억들도.
음식물 찌꺼기와 널려 있는 쓰레기 속에 자비가 버림받았다.
강남에 집을 산 사촌의 잘 난체가 핵폭탄보다도 강한 반발을
신문지 글자 속에 파묻힌 파뿌리 영감이 뮤지컬의 주인공을 죽였다
김형준 2007.03.08 09:56  
  자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남도 인정해 준다면
슬퍼하는 것은 흉이 아니다. 일어서기 위한 서곡이라면
지혜가 없는 이는 남을 생각해 주지 못한다.
이기적인 욕심 속에서만 존재하는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
영원이라는 너무도 긴 시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마시고, 즐기고, 방탕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행위를
끊임없이 하다간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꺼지게 된다.
빛으로 오지 않으려면 차라리 있던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왜 빛이 필요한 곳에서 어둠의 나라를 확장하려고 기 쓰다 가는가.
김형준 2007.03.09 05:35  
  이웃이 미워 미치겠다고 조폭을 시켜 혼을 내주었다 한다.
결국 그는 조폭이 되었고, 조폭은 그를 이용했다.
돈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조폭 앞잡이가 되었다. 어딘가에 낄 수 있다는 이유로.
닥치는 대로 처치했다. 장애가 되는 모든 걸림돌들을.
친구도, 친척도 그에겐 그저 장작깨비처럼 보였다.
눈물은 그에게 너무도 사치스러운 감정의 결과물이었다.
찌르고, 자르고, 피를 뿌리고, 어둠 속에서 형제들과 결탁을 하고.
대낮에는 '나는 이젠 신실한 신앙인이요'하고 가증스런 미소를 짓고,
또 캄캄한 밤이 되면 다른 밤의 형제들을 제거하느라 혈안이 되었다.
결국 그도 밤의 제물이 되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말았다.
김형준 2007.03.09 11:20  
  박수 갈채라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평상시 점잖게 행동하던 자도 일단 박수의 맛을 보면
머리가 180도 남쪽을 향해서 곤두박칠 친다.
기가 막히게 잘 해도 양보의 미덕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은 하고 또 하고 또 하겠다고 덤비지를 않는다.
잘 하면 잘 할 수록 고개를 숙이게 된다.
더 잘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 수이고
겸손한 자가 칭찬을 받고, 교만한 자를 욕을 먹는 것을 안다.
설 익은 자들은 '나, 나, 나, 나, 나!'의 솔로를 한다.
나만 잘 난 모양이다. 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람이고
그들이 더욱 잘 하게 되어야 모임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훨씬 아름답고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되는 까닭이다.
조정을 할 줄 모르는 자들이 높은 권력을 쥐고 흔들다 보면
그 옆에서 아부하는 사람들의 달콤한 소리만을 듣게 되고
그것이 최고인 줄 알아 좁디 좁은 소견들만 갖추게 되어
보다 강력한 힘이 밀어 닥치게 될 때에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칼에 거꾸러 질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김형준 2007.03.09 12:00  
  겸손을 강조하는 열을 잘 받는 늙스구레한 남자가 있었다.
겸손해야 합니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입에서는 늘상 '겸손' 타령을 해 댄다.
워낙 달변이라서 듣다 보면 그렇게 해야지 하게 된다.
문제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동료들을 험담하고
전상천하 유아독존식으로 스스로를 최고로 부르고 있다.
그토록 강조하던 '겸손'은 이미 걸레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자기 자랑이 끝나면 다시 남들에게 '겸손해야 된다!'고 외친다.
김형준 2007.03.10 01:33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바램이다.
인정을 받고 싶은 것도 모두 원하는 바이다.
칭찬을 받는 것도 다름이 없다.

헌데 먼저 사랑을 하려는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는 별로 없다.
먼저 남이 잘 한 것을 인정하려는 이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에 인색한 것이 우리의 못난 현주소이다.

과연 우리는 바뀔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이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외 될까.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데 급급한 이들만 모인 사회는
불행한 공동체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회의 성원들은 골고루 만족감을 더 크게 누릴 수 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분에 넘친 축복을 받고도
나누는 것에 인생한 이는 이미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속에 있는 감옥에서 혼자 즐겁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참으로 즐거울 수 있겠는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픔과 슬픔의 연속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받았으면 반드시 주어야 하는 것이
우주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비록 처음 준 이에게 되돌려 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어떤 이, 특히 갚을 수 없는 이에게 주는 것이
맘과 영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모니 2007.03.10 05:15  
  지나친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만들기도 하지요
인정은 하려는 마음은 부족하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굴뚝같으니...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슬럼프에 빠지는
삶의 연속입니다.
때론 슬럼프가 성장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몇이나 있을런지.
귀한글..읽고 갑니다.
김형준 2007.03.10 17:27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중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은 '불안 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경제가 불안하고, 사랑이 불안해서
남보다 더 가지고 싶고, 남을 해치면서라도
내가 더 우월하고 싶은 그 마음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면이 있지만 결국은 공멸로 가는 길로 모두를 안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한 심정을 떨치지 못하게 합니다.

내가 잘 하는 것을 다른 이들도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착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전체적인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가 될 것이고,
서로를 보다 더 신뢰하고 아끼고 나누는 행복한 공간으로
지구를 변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형준 2007.03.11 02:50  
  별은 별이 아니다. 태양은 태양이 아니다.
별은 태양이고 태양은 별이다.
가까이 있는 별은 태양이고 먼 별은 별이다.
별에 거는 수많은 기대는 어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밝은 대낮에 별 볼 일이 없고,
태양이 버티고 있는데 멀리 있는 별이 곡예를 할 수 없다.
별은 밤에 노래를 하고, 태양은 낮에 합창을 한다.
별과 태양은 별개가 아니고 하나이다.
단지 거리의 문제이고,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문종 2007.03.12 00:41  
  색즉시공,,, 공즉시색,,, 일체유심조,,,
김형준 2007.03.13 14:12  
  다시 또 절에 가서 성경을 읽을 생각을 한다.
그 어여쁜 미친 아가씨는
이번에는 대웅전에 들어가서 읽고 싶단다.

해탈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도,
그 모든 것에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경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좋은 것이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말이다.
그 속 깊이 숨겨진 고귀한 의미를 파악하고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두가 아닐까.
제목